8.15 관련 책을 읽다보니 ‘천인침’이란 단어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천인침(일본어:千人針 센닌바리)은 태평양전쟁 중 일본과 조선에서 유행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일제는 조선인 청장년 약 20만명을 강제징집했다.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 제도로 4,500여명의 전문학교 및 대학생을, 기타 특별지원 형식으로 조선인 청년을 일제침략전쟁에 끌고 간 숫자가 총 36만 명에 달했다.
이에 전쟁에 참여한 사람의 무운장구를 빌기 위해서 여러 사람의 정성을 모아 함께 기원하는 행위인 천인침은 말 그대로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1,000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다. 단순히 봉제선을 이어 만들기도 하지만 ‘무운장구’나 ‘필승’ 같은 구호 문자나 호랑이 문양 또는 일장기의 모습을 함께 새겨 넣기도 했다. 이것을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매고 있으면 총탄이 피해가는 힘을 지닌 부적이었다. 여기서 ‘천’이라는 숫자는 ‘호랑이가 하루 밤에 천리를 오고간다’는 속담에 따른 것이라 한다.
일본에서 건너온 이 천인침은 아들을 전장에 보내는 조선인 어머니에게도 전해졌다. 예로써, 서병기가 강제동원 될 당시 어머니가 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마을 여성으로부터 한 땀씩 수를 받아 만든 센닌바리 ‘무운장구’(武運長久) 복띠 사진이 기록에 전해지기도 한다.
‘소화 15년 판조선사정(1939)’에 수록된 사진에는 조선인 아낙네들이 우물가에 마주 서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이는 일본 군국주의 동원 체제의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매일신보(1944년 8월12일자)에 실린 ‘단성의 천인침, 여학생들이 학병에게’ 제하의 기사도 있다.
“경성부내의 여학도들이 더운 여름 근로 작업하는 중에 틈을 내어 정성껏 만든 학병 오빠에게 보낼 센닌바리가 총독부 학무국 안에 있는 조선장학회에 연달아 들어와서 관계자들을 감격시키고 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정성껏 한 바늘씩 뜬 다음 천 명이 다 못되는 남은 것은 거리로 가지고 나가서 땀을 흘려가면서 지나가는 부인들에게 청하야 한 바늘씩 얻어서 전부 완성시킨 것이다. 군국여성의 사무치는 열성과 의기로 뭉친 이 센닌바리에 관계자들은 감격하는 터인데 장학회에서는 이것을 조선신궁에 가지고 가서 참배하여 학병의 무운장구를 기원한 후 근근 조선 내 각 부대에 있는 학병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허무맹랑하다고나 할까. 일본의 무모한 침략 야욕은 전장에 나가는 군인의 삶과 죽음에 자신들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천인침을 몸 안에 품고 간 수많은 아들들이 전장에서 산화되었다, 일본인은 태평양전쟁당시 185~250만명이 전사했다.
올 봄 코로나19 발병 초기, 미국에서 마스크와 세정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코로나19 감염예방에 기댈 것은 마스크 밖에 없었지만 아무리 약국을 돌아다녀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었다. 마스크 품귀현상을 빚던 봄, 수제 마스크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커피 필터를 넣어서,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필터를 끼운 수제 마스크를 만들었다. 마이클스를 비롯 마스크 천을 파는 곳이 늘어나고 이 기회에 재봉틀을 장만하여 마스크를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서투른 바느질에 손가락이 찔리기도 하지만 나이든 부모님, 제발 코로나 19 피해가시라면서 직접 마스크를 만드는 딸들이 많았다.
비말이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막는 마스크만 잘 쓰면 85~95% 감염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95% 쓰면 6만6,000명의 목숨을 구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워싱턴 대 보건통계학과 알리 모크다드 교수는 미국은 올 12월초가 되면 코로나 19 사망자가 29만5,000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외출 시 마스크를 대부분 쓴다면 12월초 사망자 전망치의 22%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천인침은 천명의 마음에 기대어 전장으로 나갔지만 돌아온 이가 극소수니 죽음의 동반자였다면 마스크는 직접 바이러스를 막아 생명을 지키는 삶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마스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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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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