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길 산책 중에 종종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목격한다. 몸집이 참새마냥 왜소한 때까치가 제 덩치보다 10배 쯤 큰 까마귀를 야무지게 공격한다. 찍소리 못하고 꽁무니 빠지게 달아나는 까마귀가 멍텅구리 같다. 영역방호의 챔피언다운 때까치지만 비둘기 등 여타 새들에겐 덤벼들지 않는다. 미국사회에 편만한 흑인차별 풍조가 때까치에 전염된 것 같아 실소가 나온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특히 미네소타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관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사건 이후, 인종차별 이슈의 불길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흑인과 히스패닉이 차별받고 있음을 인정했고, 71%는 미국인들의 인종관계 행태가 나쁘다고 꼬집었다. 트럼프의 분리주의 인종정책에 반대한다는 응답자도 63%에 달했다.
플로이드 비극 이후 전국 주요도시에서 시민들의 항의시위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급파한 정체불명의 연방정부 진압군이 시위 청년들에 체루가스와 고무탄을 발사하며 일부를 강제 연행했다. 격분한 여성들이 “우리 아이들에 손대지 말라”며 스크럼으로 ‘엄마 장벽’을 만들어 시위대 전열에서 진압군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 엄마부대는 평화 시위를 정부가 야만적으로 진압하는 건 엄연한 헌법위반이라며 트럼프가 독재자라고 규탄한다. 아무런 표지 없는 전투복 차림의 진압군은 국토보안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무정부주의자들과 선동자들로부터 포틀랜드를 구하기 위해 파병했다고 주장하지만 시카고 등 다른 도시들은 트럼프에게 진압군을 보내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한편, 지난 20일 LA를 포함한 전국 25개 대도시에서 미국 교사연맹(ATF)과 국제 서비스 고용인노조(SEIU) 등 50여 노조 및 인권단체들은 ‘흑인생명을 위한 파업’에 나서 플로이드가 목 졸려 있었던 시간인 8분46초간 무릎을 꿇거나 묵념하거나 직장을 이탈했다. 이들은 인종정의 없이 경제정의도 없다며 모든 기업주들에게 인종차별정책을 즉각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시범게임을 가진 프로야구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게이프 캐플러 감독과 코치 2명은 미국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선수 3명과 함께 무릎 꿇었다. 프로농구팀 댈러스 매버릭스의 마크 큐번 구단주도 경기가 열리면 무릎 꿇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 토크쇼 호스트는 십자가 앞에 무릎 꿇는 크리스천들을 보면 그 행위가 꼭 모욕적인 건 아니라고 거들었다.
아시아계도 인종차별을 지난 15주간 전국적으로 2,100여 차례나 당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만 832건이 신고 됐다. 트럼프는 아직도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호칭한다(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바이러스’라고 응수). 그는 마스크를 처음 착용한 자기 얼굴사진과 함께 “여러분의 친애 대통령인 나보다 더한 애국자는 없다”는 글을 희떱게 트위트했다.
그는 한인들도 ‘꼭지를 돌게’ 만들었다. 지난 2월 공화당소속 전국 주지사 모임에서 “한국인은 끔찍한(terrible)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김정은과는 잘 지내지만 문재인 대통령과는 협상하기 싫다. 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해왔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돈(방위비)을 안 낸다”고 했다. 끔찍한 건 한국인이 아니라 트럼프 자신이다. 말하는 게 대통령답지 않고 정상배 같다.
한인들을 울분케 한 유명인사가 또 한명 있다. LA 다저스의 전설로 추앙 받는 토니 라소다 전 감독이다. 그는 2년전 다저스 구장에서 한 한인 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고는 “거기로 되돌아가는 게 어떠냐”고 조롱했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인 라소다는 한인이 많은 풀러튼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다. 그의 퉁퉁한 뱃속에 오만이 가득 차있는 모양이다.
대선이 다가오지만 트럼프의 재선 전망은 무척 흐리다. 첫 임기에 실적보다 실정(失政)을 더 쌓았다. 그의 유일한 질녀인 심리학박사 메리 트럼프가 삼촌의 소싯적 비리를 까발리려고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 제목이 “어쩌다 우리 가문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를 만들었나?”이다. 트럼프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첫 단계인 수신부터 결여된 정치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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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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