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공휴일이 머지않아 하나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인들에겐 생소한 ‘6·19 기념일’이다. 통상 ‘준틴스(Juneteenth)‘로 불린다. 6월(June)과 19일(nineteenth)을 합친 말이다. 준틴스의 연방공휴일 지정을 미국인 60% 이상이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45개 주정부와 워싱턴DC 정부가 준틴스의 ’존재 의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지난 19일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은 준틴스가 내년부터 시 공휴일로 지정돼 ‘모름지기 도래한 노예제도 철폐’를 기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에 이틀 앞서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이날을 주정부 공무원들의 유급휴일로 선포하고 내년에 정식 주 공휴일로 격상하겠다고 밝혔다. 뉴햄프셔주는 지난해, 텍사스주는 이미 1980년, 이날을 주 공휴일로 각각 선포했다.
전국에서 가장 빨리 선수를 친 텍사스주는 기실 준틴스의 발원지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제도를 철폐시킨 후 텍사스주 흑인노예는 25만여명으로 급증했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남부 지주들이 노예들을 몰고 대거 이주해온 탓이다. 로버트 리 남군 사령관이 북군에 항복한 후에도 텍사스주 남군 잔병들은 여전히 준동하고 있었다.
급기야 북군의 고든 그랜저 장군이 기병대 2,000여명을 이끌고 텍사스주 갈베스턴으로 진군했다. 그는 1865년 6월19일(준틴스!) 중심가 건물의 발코니에 우뚝 서서 거리를 메운 군중을 향해 “서부지역 노예들도 동부지역 노예들처럼 완전 자유인이 됐다”고 선포했다. 미국의 치부였던 노예제도가 링컨의 철폐선언 후 약 2년 반만에 전국적으로 종언을 맞는 순간이었다.
노예의 질곡에서 벗어난 흑인들은 그 후 매년 6월19일 준틴스 축제를 벌였다. 이들의 자녀가 늘어나자 축제도 커지고 범위도 확산됐다. 갈베스턴에서 멀지 않은 휴스턴에선 흑인 목사들과 유지들이 10에이커의 땅을 매입해 준틴스 전용 축제장인 ‘노예해방 공원’을 개설했다. 전국 각지에서 자녀와 함께 ‘준틴스 성지’인 갈베스턴을 순례하는 노예 출신 흑인들도 많았다.
갈베스턴에선 이날 퍼레이드, 음악연주, 미인대회 등이 열리지만 대다수 흑인들은 독립기념일(7월4일)처럼 가족단위 바비큐를 즐긴다. 실제로 이날은 ‘준틴스 독립기념일,’ ‘자유의 날’ 등으로도 불린다. 자유를 달라고 절규하는 흑인영가 ‘모두 소리높여 노래하자’(일명 ‘흑인 애국가’)가 이날의 주제가다. 글렌 캠벨의 1960년대 히트송 ‘갈베스턴’은 준틴스와 관계없다.
거의 150년간 ‘그들만의 축제’로 타인종의 관심 밖이었던 준틴스가 최근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흑인 생명도 귀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시위 덕분이다. 흑인들의 생명권 쟁취투쟁이 기존의 자유 쟁취투쟁과 자연스레 접목됐다. 올해 준틴스 날에도 뉴욕, 워싱턴DC, 애틀랜타 등 대도시에선 축제보다 BLM 시위가 대세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거들었다. 하필이면 준틴스 날, 흑인차별의 모델 도시였던 털사(오클라호마)에서 대규모 선거유세 집회를 열려다가 여론의 뭇매를 얻어맞고 하루 연기했다. 연방상원은 6월19일을 ‘준틴스 독립기념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이미 2018년에 채택했다. 나이키·타깃·베스트바이 등 굴지의 기업들이 이날 고용인들에게 유급휴가 혜택을 주고 있다.
준틴스의 6월은 흑인들에겐 상서롭겠지만 우리에겐 한 맺힌 달이다. 한민족 최대비극인 6·25 사변(‘준피프스: June twentyfifth’이 터졌고, 그 후 북한동포들이 흑인노예들처럼 질곡의 삶을 70년째 이어오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한 1987년 6월10일의 민주항쟁(‘준텐스: June tenth’)과 또 다른 준텐스인 1926년의 6·10 독립만세운동도 많은 희생자를 냈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에겐 4·29 폭동만한 설움이 없다. ‘에이프릴나인스(April twentyninth)’다. 흑인 부랑자 로드니 킹을 집단구타한 백인경관들이 무죄로 풀려나자 흑인들이 애먼 한인업소들을 방화하고 약탈했다. 최근 BLM 과격시위에서도 적지 않은 한인업소가 당했다. 흑인들의 준틴스 정신이 같은 역경 속의 한인들에게 형제애로 승화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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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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