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왼쪽부터 김동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아래 왼쪽부터 김수원(랜드연구소 정책분석가),앤드류 여(가톨릭대 정치학 교수),남태현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북한은 16일, 남북대화의 상징과도 같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했던 바로 다음날 발생한 사건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한인들에게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도발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 지역 한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경제난 화살을 외부로 돌리려는 것”
●김동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결국 김여정이 예고한대로 됐다. 북한은 지금까지 남북합의에 따라 실시해온 개성, 금강산 및 휴전선 일대의 비무장화와 기타 긴장완화 조치들을 철회하고, 다시 군사 요새화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년간의 남북관계 개선의 노력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러나 전쟁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은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한미동맹관계를 약화시키고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내부 경제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면서 내부결속을 노리는 것 같다. 그러나 남북협력의 결과물들을 파괴하고 긴장을 조성한다고 해서 북한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전쟁억제 태세를 강화하고, 한편 남북협력관계 회복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신중하게 모색해야 한다.
“대규모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야”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
북한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지금이 긴장을 고조시키기에 좋은 시기일 수 있다. 도발의 강도를 높이며 점차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킬 수도 있지만 한 번에 대규모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현재 미국은 대북 제재 해제를 고려하고 있지 않고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도 없는 만큼 한국에서 요구하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은 현실성이 없다. 지금처럼 북한이 자극적인 발언(harsh rhetoric)을 계속한다면 앞으로 대화를 재개하기도, 남북이 함께 사업을 진행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이번 행동의 주체로 등장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뒤를 이를 후계자로서 공적을 쌓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다음 미국정권과 협상 위한 목적”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은 한국이나 미국이 제재조치를 완화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북한의 이러한 도발은 종종 내부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됐으며 이번에는 경제협력 제안을 거부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불만으로도 볼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긴장상태는 더욱 고조될 것이다. 북한은 협상을 앞두고 유리한 입지를 고수하기 위해 이러한 압박 카드를 사용해 왔으며 김정은과 김여정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목적은 오는 대선에서 바이든이 이기든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든 않든 협상의 레버리지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남북연락사무소 파괴는 시작일 뿐이다. 북한은 남북대화의 상징을 폭파시키면서 비무장지대로 군대를 옮기고 북한 주민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서해에서 군사 행동에 나서는 등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다. 그런 다음 미국을 상대로 장거리 미사일, 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는 핵미사일 등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여주며 압박해 나갈 것이다.
북한의 다음 도발은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립 75주년을 맞아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며 이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이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길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다음 정권을 상대로 대화재개가 이루어질 경우 더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겠다는 의도다.
"한국, 이번 위협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김수원(랜드연구소 정책분석가)
북한은 김여정을 통해 남북연락사무소 공격에 대한 암시를 서울에 전달했으나 한국이 이러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국의 국방력이 최근 몇 년간 약화된 반면 북한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기존의 군사력도 강화시켰으며 2018년 체결한 남북군사합의(CMA)도 폐지할 계획이다. 이제 한국은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국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고 강력한 대응을 발표했으나 말뿐이 아닌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북한의 추가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6.15 기념사에서 북한이 대화의 문을 닫지 말길 바란다고 강조했으며 여야 정치인들은 대북특사를 자청하고 나섰지만 정작 바로 다음날 북한은 남북대화의 상징인 연락사무소를 파괴했다. 결국 서울과의 관계개선에 관심이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이제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 지배층내 김여정 영향력 높아질 듯” ●앤드류 여(가톨릭대 정치학 교수)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파괴는 문재인 정부가 바라는 남북관계 개선의 과정을 정치적으로 어렵게 만들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20주년 다음날 연락 사무실을 파괴하는 것은 상징적일 수 있지만, 북한의 행동은 여전히 국내 정치에 있어 매우 중요할 수 있다. 특히 대담한 행동과 발언 등은 김여정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북한의 지배 계급에서 그녀의 영향력(profile)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약속 지키지 않는 한미에 불만 표시” ●남태현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도발’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예고된 행동으로 북한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과 미국에 불만을 표했을 뿐이다. 김정은이 추진하는 경제개발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최근 불거진 대북전단지 살포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이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 만큼 북한은 계속적으로 미국을 자극하기 위한 엄포사격에 나설 것이며 이는 11월 대선 이후 새로운 협상의 조건을 구축하기 위한 사전포석이 될 것이다.
군사행동을 예고한 만큼 무력충돌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쟁 이후 그러한 위험상황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위험한 선택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은 만큼 이번에도 역시 긴장을 고조시키는 정도에서 한반도 위기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긴장해소를 위한 해법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만한 미국의 카드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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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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