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착하냐 악하냐는 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철학적 질문의 하나다. 이에 관해 오랫동안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기독교의 입장은 확고하다. 창세기 6장에 따르면 야훼가 “인간의 사악함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 생각의 전부가 계속 악하다”고 평하는 구절이 나온다. 이어 그는 세상이 타락했고 모든 육신이 타락했으며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찼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인간을 만든 것조차 후회한다.
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바친 제사를 받은 야훼는 다시 물로 인간을 죽이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서도 “인간의 마음은 젊어서부터 악하다”고 말한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 악해지는 인간을 또 죽여 봐야 뭐하겠느냐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이런 기독교의 인간관은 16세기 종교개혁이 일면서 더 심해졌다. 마틴 루터는 인간이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부인하고 오직 신앙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장 칼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으로도 부족하고 인간의 구원 여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으며 누가 구원받을 것인지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했다.
그를 추종하는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 연방헌법이 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의 3부로 나누고 가장 중요한 입법부는 상하원으로 가르고 지방 정부와 연방 정부 권력을 다시 분리한 데는 이런 인간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이런 인간에 대한 비관을 정치 철학의 바탕으로 삼은 사람은 근대 정치학의 비조 토마스 홉스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의 생명과 목숨을 뺏는 것을 서슴지 않는 존재로 보고 그런 곳에서는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homo homini lupus)이며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며 짐승 같고 잔인하고 짧을”(solitary, poor, brutish, nasty, and short)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누구도 이런 상태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절대 권력자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고 그것이 국가의 출발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사상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사람은 장 자크 루소다. 시계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곳곳을 방황하던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착하게 태어난 인간이 잘못된 사회제도와 관습 때문에 악에 물들어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어디에나 사슬에 묶여있다”는 말은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제도를 고침으로써 인간을 교화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은 ‘구체제’를 때려 부순 프랑스 대혁명의 원동력이 된다. 혁명 지도자인 로베스피에르는 루소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 그의 책을 성경처럼 매일 읽었다. 그러나 루소의 생각과는 달리 제도를 뜯어고쳤음에도 이상사회는 오지 않았고 혁명 정부의 살육과 광기는 구체제를 능가했다.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졌고 혁명의 혼란은 나폴레옹이 절대 권력을 장악하면서 가까스로 진정됐다.
지난 1주일 미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주장에 의구심이 일 수 밖에 없다. 도대체 미니애폴리스의 그 백인 경찰은 무슨 생각으로 숨을 쉴 수 없다는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조여 죽게 한 것일까. 그는 그렇다 치고 옆에 있던 3명의 동료 경찰은 어째서 그 상황을 수수방관하다 이 지경을 만들었을까.
이런 무자비한 인권 유린에 대해 미 전국에서 항의 시위가 일어난 것은 백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인권 유린에 항의하다 아무런 죄도 없는 상점 유리창을 부수고 물건을 훔치며 불을 지르는가 하는 것이다. 두 달이 넘는 폐쇄 조치로 기진맥진 하다 가까스로 영업 재개 허가를 받고 부푼 가슴으로 문을 열러 나왔던 피해 상점 주인들은 다시 절망으로 빠져들고 있다. 항의 시위 군중 사이에 끼여 있다 상점을 턴 인간들은 시위를 이용한 잡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폭력 시위와 약탈은 아무리 경찰의 공권력 남용이 미워도 어째서 경찰은 필요한 존재인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한 루소가 아니라 성경과 홉스가 옳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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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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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8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인간은 야생동물처럼 태어나서 환경과 교육과 자기성찰을 통해서 공존공영의 도리를 배워가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그 도리를 깨치지 못한다. 남을 해치기 위해서 간교함을 부린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동물들보다도 못하다. ‘개만도 못하다’ 라는 말이 달리 나왔겠는가.
창세기 6장으로 건너 뛰신 것 같지는 않고.. 창세기 1장부터 시작하자면 분명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졌고.... 만물의 영장이라 감당하지 못할 무게를 가지고 태어나고.... 이 모든 것이 악의 본질이라면 하나님이 악의 원인이요 성경도 악의 터전일진대.... 그래도 인간은 악인 것인가... 새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기뻐할 일이 아니라 슬퍼해야 겠네...
일부 골수 백인들 사고에 젖어들면 본인도 백인이 될 거라는 착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게 놀라울 뿐
인류역사를 보면 주로 강대국들의 멸먕은 내부에서부터 일어납니다. 미국도 처음엔 참신한 민주제도로 시작은 좋았는데 이 제도의 헛점이 슬슬 들어나고 이 헛점을 이용해 권력과 부를 잡은 무리들이 미국을 썩게 만들고 있죠. 중공과 이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을 둘로 가르고 러시아와 내통하고있는 트럼프가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