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친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은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할까?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집콕 세월이 봄도 그냥 보내고 6월이 되고 있다. 뉴욕시도 곧 1단계 경제 정상화에 들어간다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사회라는 도덕적 기준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살라는 지침이 더 익숙해졌다.
아침에 앰뷸런스 소리에 눈뜨고 밤에 앰뷸런스 소리를 들으며 잠자던,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 한국 트로트 열풍이 한국민은 물론 해외한인들에게도 불어왔다. 많은 한인들이 춤과 노래, 화려한 퍼포먼스가 있는 한국 TV의 ‘미스터 트롯’을 보면서 그 불안한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사실, 트로트는 오랫동안 대우를 받지 못했다. 1930년대의 초창기 트로트는 일본 엔까와 비슷한 형태로 태동, 일제 식민지 상황과 걸맞게 슬프고 애조 띈 노래였고 60~70년대 팝, 포크음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는 완전히 밀려났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체험한 노인들이 듣는 노래가 되었다.
그런데 80년대를 지나 90~2000년대에 주현미, 김연자, 장윤정, 박현빈, 홍진영 등 가수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경쾌한 리듬과 댄스, 솔직한 대사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13년 이애란의 ‘백세인생’, 2017년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 2019년 2~5월 미스 트롯 경연대회가 트로트를 부활시키더니 2019년 톱스타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하는 등 트로트가 대세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왜 트로트를 들어?” 하는 사람이 있지만 요즘의 트로트는 더 이상 수준 낮은 신파가 아니다. 이번에 ‘미스터 트롯’을 보면서 사랑, 이별, 칠전팔기, 은혜, 효, 배신 등을 소재로 한 트로트가 수천~1만곡 이상으로 많은데 놀랐고 가사들이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콕 짚는’ 주옥(?)같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단순한 가사에 반복적인 박자가 누구나 금방 따라 부를 수 있다는 것도.
뉴욕 한인 중에는 출연가수들의 사연과 절절한 마음을 공감하며 힘든 코로나19의 공포를 견디었다는 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이 프로만은 보고 또 보면서 자신의 치매를 잊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본인 역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는 임영웅의 감성깊은 무대를 보며 60대 중반에 돌아가신 엄마를 보내던 70세 아버지 모습을 떠올렸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그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혼자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삶의 애환을 다루면서 한국인은 결코 슬픔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도 느꼈다. 원래 흥이 많은 민족이지만 트로트에는 울면서도 웃는다. 힘든 날 견디면 좋은 날 올 것이라는 긍정적 마인드가 담겨있다.
트로트가 뜨면서 요즘 한국방송국마다 트로트 연예무대를 꾸미고 있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내려오면 밥 먹을 돈도 없었다는 이들이 오랜 무명생활을 끝내고 광고를 찍고 출연할 곳이 많아졌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데 비슷한 내용에 똑같은 얼굴 겹치기 출연, 식상한 내용이 가수의 진을 빼놓고 보는 사람도 채널을 돌리게 만든다.
이제 트로트는 고속도로 휴게소 카세프 테이프 판매대에서만 들리는 노래가 아니고 칠순잔치 행사에서 만수무강을 빌면서 부르는 노래만도 아니다. K트로트가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려면 지금처럼 찻잔속의 태풍이 되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로 모든 공연장이 문을 닫고 집콕 생활이 늘면서 TV와 컴퓨터만 끼고 사는 요즘, 오랜만에 이곳에서 태어난 20대부터 노년까지 함께 보면서 즐거워하는 장르가 생겼다. 진정한 대중음악이 되려면 지나친 유흥과 잔재미에 치우치면 안 된다. 심금을 울리는 트로트의 장점을 소중하게 간직하게 한다.
코로나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학생이 ‘진또배기’를 부르며 이를 해소하고 한창 일할 나이의 장년이 ‘막걸리 한 잔’을 부르며 마음을 푸는 때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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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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