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편지를 잘 쓸 줄 모른다. 쓴다는 일 자체가 본래적으로 나에게는 만만한 도전은 아니지만 특히 편지 쓰기가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루신의 단편 ‘고독자’에 나오는 편지는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는데, 연수라는 고독자가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는 하나의 글이라기 보다는 마치 장엄한 아다지오처럼 음률적 영감을 가득 피어오르게 했다. 편지란 이렇게도 쓸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혁명이 시작되기 직전 여명의 시절, 중국 개화기의 어느 지식인의 절망이 피토하듯 그려진 글로서, 팬데믹으로 가라앉은 요즈음 그 때의 감명을 -나의 편지로 슬쩍 대치해-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K 형. 형과 헤어진도 벌써 수 년이 지났군요. 그동안 단 한 차례도 소식을 전하지 못했소. 형이 몇 년 전 나에게 기별을 했던 일을 잘 알고 있소. 그동안 답장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형을 잊었기 때문이 아니라 편지 한 장 쓸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요. 형에게는 거짓말로 들리겠지만 그렇게 비루한 삶을 연명해 왔던 것이 사실이오. 그때는 정말 잠잘 시간 조차 나에겐 과분한 여유였던 것 같소. 삶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아닌가 보오. 예전에는 내가 늘 이해 받지 못하는 그런 인간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소. 그것은 내가 이해받지 못했던 존재가 아니라 그럴만한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요.
이제와서 그것을 깨달은 지금, 나는 정말 패배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오. 사실 나는 가당찮은 미사려구를 섞어가며 형께 여러차례 답장을 썼었소. 다만 그것을 끝내지 못하고 우체통에 넣을 용기가 없었을 뿐이요. 나는 왠지 편지 쓰는 일 조차도 마치 ‘슬픈 영상’같은, 이제와서 상처에 대해 말하는 것 조차 나에게는 사치겠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내비추는 것만 같아 아마 참을 수 없었던 것 같소.
형은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무척 궁금했을거요. 알다시피 나는 여전히 외톨이에 불과하오. 그러기에 나는 형이 늘 그립기만하오. 형과 대화하곤 하던 그 선술집을 기억하오. 사실 형을 앉혀 놓고 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때가 허다했소. 형은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허다한 시간을 혼술로 때우곤 했겠지요. 그러나 형, 그때는 내가 숨도 제대로 쉬지도 못할 만큼 각막했던 상황이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소. 사실 나는 그 당시 한 마리의 송충이에 불과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소. 상처에 흐르는 피를 말로 쏟으면서 생에 대한 긍정을 단 한 순간도 버리지 않았고 또 모든 믿음을 상실했던 그런 허수아비말이요. 나 역시 삶을 원했고 하루를 버티는 기적 속에서도 낭만을 사랑하고, 흔들리는 유명(幽明)의 불빛 속에서 아름다웠던 형의 유쾌한 공갈, 언어의 유희, 촌철살인의 명언들에 깊은 희열과 위로를 느꼈었오.
아무튼 형, 이후에는 아마 소식을 전하지 못할거요. 형이 나에게 감사하게 있음을 잘 알고 있소. 또 형의 나에 대한 연민도 이해하오. 그러나 형, 이제는 잊어주시오. 이제는 형의 길로, 나는 나의 길을 걸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오. 내가 삶을 힘들어 하고 또 포기를 생각하던 때나 지금이나 인생은 달라진 것이 없오. 지금와서 고백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는 인간은 어차피 살 만한 가치는 없었다는 것이오. 설혹 다르다 해도 현실과의 타협점은 없소. 형의 격려를 잊지 못하오. 그러나 형, 이제 더는 형의 염려가 필요 없어 졌소. 나도 이제는 편해졌기 때문이요. 내가 미쳤거나, 형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소. 형의 자유이기 때문이요.
그저 나는 문득 요즘 내가 이 순간까지 왜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남아야했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오. 그것은 내가 갑자기 감상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을 속에 붉게 물든 저 패잔병의 잔해처럼, 사라지는 음악과 회한…떨어지는 낙엽이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산다는 모습이 무의미하고 왠지 서툰 한 장의 낙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오직 형의 모습을 다시 한번 추억하려 애쓰고 있을 뿐이요. 저녁이 내리고, 여름 햇볕 속에서 사람들이 가을을 예감하듯 서신을 적고 추억과 멍든 상처와…그리고 죽음을 생각할 때… 그러나 형, 그것들이 이제와 나에게는 왠지 恨이 아니라 인생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만 같소. 살면서 상처와…아픔이 없었다면 하나의 저녁 놀이 저토록 붉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 않겠소. 저무는 저녁이 있고 또 사라지는 가을이 있기에 우리는 이 순간을 그처럼 열렬히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소. 고독과 가슴에 흐르는 상처들 말이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던, 인생은 어차피 해답이 없는 것 아니겠소. 그저 사라질 뿐인 가을 햇살처럼 나도 이제는 이 모습 그대로 걸어가려하오. 형, 설혹 이번 삶이 아니다 하더라도 우리의 만남이 그렇게 쉽게 잊혀지진 않겠지요. 삶은 정말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않은, 잔인하고 또 그리운 모습인 것만같소. 저 멀리…슬픈 소야곡의, 흐르는 그 모습이 가슴 아프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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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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