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실의 역사속 와인
공기 중 초산균의 작용으로 와인이 부패해지는 이유 밝혀
▶ 섭씨 60~65도 저온살균법 발견, 발효원리 넘어 질병 연구도 매진…탄저병·닭콜레라·광견병 백신 개발
옐로우와인(Yellow Wine)으로 불리는 뱅 존(Domaine Maire & Fils, Arbois Vin Jaune과 Chateau-Chalon Vin Jaune). 지역명으로 나뛰레(Nature)라 불리는 사바냉 품종 100%로 만든다. 620㎖ 클라블랭(Clavelin) 병에 담긴다. [한독와인 이승현 제공]
※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출판인으로서 옮길 말은 아니지만, “와인 한 병에는 세상의 그 어느 책보다도 더 많은 철학이 담겨 있다.” 이 명언은 철학자나 문학가가 한 말이 아니다. 프랑스 시골 마을의 한 아버지가 도시로 유학 간 아들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아들에게 건강을 위해 와인을 자주 마시라고 권하기까지 했단다. 이 사람은 루이 파스퇴르의 아버지 장 파스퇴르다.
장은 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한 프랑스 동부 쥐라산맥 기슭에 자리한 돌(Dole)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죽 가공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파스퇴르를 유학 보내기 전까지 쥐라의 아르부아(Arbois)에서 함께 지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파스퇴르는 공부보다는 그림을 좋아했다. 어느 날은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장이 보기에도 솜씨가 놀라웠다. 장은 파스퇴르의 재능을 내심 흐뭇해하면서도, 아들이 학업에 힘써 교사가 되기를 원했다. 파스퇴르는 아버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도시로 유학을 간 그는 브장송대학을 거쳐 고등사범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땄다. 그는 디종 리세(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여기서 잠시, 파스퇴르가 성장기를 보낸 지역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르부아가 속한 쥐라 지역은 독특한 와인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셰리 와인처럼 일부러 와인에 효모막을 번식시켜 6년 3개월 동안 그대로 두고 산화시켜 만드는 뱅 존(Vin Jaune), 포도를 그늘에서 말려 당도를 높인 뒤 발효해 만드는 스위트 와인 뱅 드 파이유(Vin de Paille), 포도즙에 와인 양조 후 남는 찌꺼기를 증류한 브랜디(Marc)를 섞어 만드는 막뱅 뒤 쥐라(MacVin du Jura), 그리고 스파클링 와인 뱅 푸(Vin Fou)와 옅은 로제 와인 뱅 그리(Vin Gris) 등. 이름조차 생소할뿐더러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유니크한 와인들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몇 년 전 필자는 그곳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마치 판타지 세계에 차원 이동한 듯 발걸음을 옮기는 곳곳이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고 푸근했다. 뱅 존에 졸여 요리한 ‘코코뱅존’을 맛보았을 때는 닭백숙의 향과 맛이 느껴져, 아릿한 향수를 느끼기도 했다. 그날 식탁에 오른 지역 특산품인 콩테 치즈와 함께 어우러진 뱅 존의 향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공을 넘어온 아지랑이처럼 코끝에 맴돈다.
이방인에게조차 잊히지 않는 기억을 선사한 이 지역의 독특함은 내력인 듯하다. 아르부아가 속한 부르고뉴-프랑슈-콩테 지역은 빅토르 위고, 귀스타프 에펠과 같은 예술가를 대거 배출했다. 그러고 보면 저 혼자 불쑥 튀어나온 천재란 없는 법이다.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던가. 어린 시절 갯바위 위에 서서 수평선을 보며 그 너머를 동경하던 어느 수영 선수처럼 말이다.
파스퇴르 또한 지역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이 분명하다. 화학자의 길에 들어선 파스퇴르는 와인과 관련한 연구에 몰두했고, 프랑스 와인 산업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덕분으로 프랑스가 원산지 보호제도(AOC)를 시행한 1936년에 아르부아는 샤토네프뒤파프 등과 함께 원산지 명칭을 최초로 부여받는 영광을 안았다. 그런데 도대체 파스퇴르가 와인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마도 독자들 가운데에는 레드와인의 병 바닥에 가라앉은 모래알 같은 까만색 찌꺼기를 본 분이 있을 것이다. 그 결정을 주석이라고 하는데, 술 주(酒) 돌 석(石)이라고 쓰는 탓에 글자 그대로 술에서 나온 돌로 오해하기 쉽다. 실은 주석산에 칼륨이나 칼슘이 결합해 생기는 결정이다. 주로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보관하면 생기는데 인체에는 해롭지 않다. 이런 와인은 디켄터를 이용하거나 조심스럽게 찌꺼기를 걸러내고 마시면 된다. 요즘은 와인을 병입하기 전에 냉동 안정법(cold stabilization)이라 해서, 이 결정을 제거하고 출시한다.
주석산이란 말을 꺼낸 김에 머리 아픈 얘기를 좀 하자면, 와인에는 주석산(Tartaric acid)과 사과산, 젖산 등 여러 산 성분이 포함돼 있다. 이들 산 가운데 주석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와인에 중요한 성분이다.
파스퇴르는 와인의 성분인 주석산의 정체를 최초로 밝힌 논문을 1848년에 발표했다. 와인의 주석산과 거울쌍이성질체인 라세미산(racemic acid)의 차이를 밝혀낸 논문으로, 파스퇴르는 현미경으로 두 물질의 결정을 관찰하다 주석산과 라세미산이 마치 오른손과 왼손처럼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지만 분자의 대칭구조가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이유를 몰라 답답해하던 과학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준 발견이었다.
이 연구로 이름을 날린 파스퇴르는 스트라부스 대학 화학교수를 거쳐, 프랑스 알코올 산업의 중심지에 위치한 릴 대학의 화학교수 겸 학장으로 재직한다. 이 덕분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안정된 상태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파스퇴르의 연구실로 한 양조업자가 찾아왔다. 그는 맥주와 와인이 식초처럼 시큼해져 팔 수 없게 됐다며 그 원인을 밝혀달라고 파스퇴르에게 부탁했다. 파스퇴르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발효는 효모가 일으키고 산패(酸敗)는 초산균이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또한 와인을 발효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나는 젖산 발효는 젖산균이 작용해서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다만, 오늘날 와인양조에서 젖산 발효는 긍정적인 과정으로 여기는 데 반해, 파스퇴르는 이를 부정적인 작용으로 여겼다고 한다.
1863년에는 프랑스에서 수출한 5억 프랑 상당의 와인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부패해 프랑스 와인의 신뢰도가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나폴레옹 3세는 파스퇴르에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의뢰했다. 파스퇴르는 공기 중의 미생물이 작용해 와인이 부패했음을 밝혀냈다. 당시에도 이미 발효의 화학적 원리는 알려졌지만, 발효나 산패는 효모ㆍ젖산균ㆍ초산균이 작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을 믿고 있었다. 파스퇴르가 이를 뒤집는 발견을 한 것이다.
여러 모로 학계를 놀라게 한 그는 내친김에 우유, 식초의 오염과 산패에 대해서도 연구해 그 까닭을 밝혔다. 이 연구는 훗날 자연발생설을 아예 부정하는 단계로 발전해 과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해법을 찾을 차례였다. 파스퇴르는 처음에 와인을 가열해 미생물을 사멸시키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미생물을 사멸시키는 동시에 와인의 알코올과 풍미마저 날려버렸다. 풍미와 알콜을 보존하면서도 살균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방법이 바로 저온살균법이다. 섭씨 60~65도 정도로 일정 시간 가열하면 웬만한 미생물을 없애면서도 와인의 알콜과 풍미를 지킬 수 있었다. 저온살균법을 이용하면 우유와 맥주도 장기 보관과 장거리 운송이 가능했다.
파스퇴르는 그동안의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정리해 마침내 ‘와인 연구(Etude sur le Vin)’(1866년)라는 책을 출간했다. 과학계에서는 파스퇴르를 기리는 뜻에서 그가 발견한 저온살균법을 파스퇴라이제이션(Pasteurization)이라 칭했다.
와인의 발효와 부패의 원리는 생물체의 질병 원인을 찾는 데도 적용됐다. 1865년 누에병이 유행해 프랑스 양잠업이 위기에 처한 일이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파스퇴르에게 그 원인을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파스퇴르는 와인의 산패 이유가 미생물의 작용 때문이듯, 생물체가 병에 걸리는 이유도 세균 때문임을 알아냈다. 그는 병에 걸린 누에를 폐기하고, 미생물이 살 수 없게 깨끗한 환경을 만들면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하여, 프랑스 양잠업을 위기에서 구했다.
파스퇴르는 더 나아가 인간과 고등동물에게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에까지 눈길을 돌렸다. 사실, 파스퇴르가 발효의 원리를 넘어 질병의 원인을 연구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어린 딸이 고열에 시달리다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비통에 잠긴 그는 딸이 왜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를 알고 싶어, 백신 연구에 매진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백신은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를 치료하기 위해 처음 개발했지만, 그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파스퇴르다. ‘소’를 뜻하는 라틴어 ‘vocca’에서 유래한 말로, 파스퇴르가 제너의 업적을 기리고자 ‘vaccine’이라 칭한 것이다.
파스퇴르는 뇌출혈로 쓰러져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연구를 이어간 끝에 동물 전염병인 탄저병과 닭콜레라, 광견병 백신을 개발했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파스퇴르의 공적을 기리고자 모금 운동을 전개해 파스퇴르연구소를 설립했고, 그를 초대 연구원장으로 추대했다. 파스퇴르는 “백신 실험의 성공은 프랑스의 성공이다”라는 말을 남겨 자신의 성공을 조국 프랑스에 돌렸다. 이렇게 개발된 백신은 한 가정을 넘어 전 세계의 인류를 질병에서 구했다.
사실 파스퇴르의 조국 사랑은 각별했다.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파스퇴르는 4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입대를 자원했다고 한다. 물론 그는 입대를 거부당했다. 나이도 많았지만, 뇌출혈로 인해 몸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프로이센에 전쟁 보상금을 물어야만 했다. 그러나 파스퇴르는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 독일의 본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까지 반납했을 정도였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말도 남겼다.
이러니 파스퇴르를 사랑하지 않을 프랑스인이 어디 있겠는가. 파스퇴르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거행됐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시민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고 하니, 프랑스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노트르담대성당에 묻혔으나, 나중에 파스퇴르연구소 지하에 이장되었다 한다.
지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파스퇴르가 그러했듯 코로나19 백신도 만들어지리라 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파스퇴르의 말은 이제 수정돼야 한다. “백신 실험의 성공은 인류의 성공이다.” 그리고 필자 역시 이제는 동의할 수밖에 없겠다. 과연, 와인 한 병에는 세상의 그 어느 책보다도 더 많은 철학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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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 시대의창 대표(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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