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가 하나의 그림이라면 단원들은 팔렛트, 지휘자는 붓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밑그림이 좋아도 물감이 시원찮으면 좋은 색채의 그림을 완성해 낼 수 없다. 명 지휘자 밑에 명 오케스트라가 있다. 반대로 좋은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에 따라 맞춤형 소리를 낼 줄 아는 오케스트라를 말한다 할 것이다. 지휘자라면 누구나 이런 오케스트라를 원하겠지만 명문 오케스트라라고하여 모두 이런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명문 오케스트라는 대체로 전통이 있고 지휘자의 계보도 화려하다. 그러나 전통이 있다고 해서 모두 최상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NBC 교향악단(1937-1954)은 토스카니니와 함께 생겨났다가 토스카니니와 함께 저물어간, 말 그대로 토스카니니 시대를 위해 존재했던 게릴라 부대였다. 역사와 전통은 없었지만 재정과 市場(관객)이 확실했기 때문에 맞춤형 오케스트라를 급조할 수 있었고 지휘자의 은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해체되고 말았지만 NBC는 미국 최초의 방송 교향악단이자 정상급 오케스트라이기도했다.
유럽에는 각 도시마다 방송국을 위한 교향악단들이 존재했지만 미국은 NBC 이전에는 방송 교향악단이라는 것이 없었다. 방송 교향악단은 청취자들을 위해 클래식 음악을 선사한다는 점 외에 현장 공연도 직접 들려 줄 수 있다는, 2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독일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avarian Radio Symphony )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직업을 잃은 연주인들에 의해 급조된 소위 외인구단이었다. 베를린 필이나 뮌헨 필과 같은 전통은 없었지만 오이겐 요훔이라는 뛰어난 지휘자를 만나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특히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베를린 필, 뉴욕 필 같은 한 도시의 명예나 한 사람의 지휘자를 위해 헌신된, 조련된 소리를 들려주기 보다는 자율적으로 성장해 나간 몇 안되는 악단이었는데 같은 도시의 뮌헨 필이 보수적이었다면 바이에른은 보다 진보적이고도 폭넓고 레퍼토리를 통해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 듯 짧은 시간 안에 뮌헨을 대표하는 교향악단으로 우뚝 섰다.
더욱 특이한 점은 이 교향악단을 거쳐간 객원지휘자들이 유난히 많았다는 것인데 그중 레너드 번스타인, 게오르규 솔티, 윌리엄 스타인버그, 오토 클렘펠러, 사이먼 래틀 등과의 연주에 있어서도 지휘자가 누구든, 맞춤형 최상의 소리를 들려줬다는 것이다.
지난 해 11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17년간 함께 했던 명장 마리스 얀손스가 심장병으로 타계했다. 세계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얀손스는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암스텔담 로얄 콘서게보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도 겸임한 바 있어 그를 추모하는 세계인들의 애도 물결은 더욱 거셌었다.
전세대의 지휘자 카라얀과 솔티, 번스타인 등이 사망한 가운데 물갈이가 진행 중이던 세계 오케스트라는 뮌헨 필의 첼리비다케, 뉴욕 필의 크루트 마주어, 베를린 필의 아바도 마저 타계하여 지휘자 가뭄 시대를 겪고 있다. 더욱이 한 시대를 이끌 만한 정상급 지휘자가 부재한 가운데 얀손스 마저 타계하여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마리스 얀손스(1943-2019)는 라트비아(구 소련)에서 태어난 관계로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에 있어서 뛰어난 해석을 보여 준바 있었다. 베토벤과 말러, R. 스트라우스 등 독일 낭만파 음악에서도 뛰어난 지휘 감각을 보여 세계적인 지휘자들만 초빙한다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에도 세 차례나 초청받는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얀손스의 최대 행운은 그의 마지막 17년을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 보낸 일이었다. 민주적이었던 그의 지휘 스타일은 자율적인 바이에른과 궁합이 맞았고, 늘 새로운 스타일 명연주를 통해 세계인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유태계 출신으로 얀손스는 지휘자였던 아버지에게 레닌그라드 필하모니를 이어받아 부 지휘자로 활약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69년도부터는 명지휘자 카라얀 등을 사사하기도했다. 1979년 오슬로 필하모니를 맡아 세계적인 악단으로 발돋움시켜 역량을 인정받았으며 이어 피츠버그 심포니, 로얄 콘서게보우 등을 연달아 역임하면서 세계적인 지휘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015년 부터는 로얄 콘서게보우를 사임하고 바이에른에만 전념했는데 지난해 지병이 도져 76세로 영면했다. 그의 지휘는 세부적이면서도 질감있는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데 특히 현장 녹음으로서,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역량을 엿볼 수있는 R. 스트라우스의 명작 ‘알프스 교향곡(Alpine Symphony)’이 유튜브에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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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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