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하얀 뭉게구름, 초록빛 들판, 높고 낮은 산등성, 크고 작은 건물, 도로와 장난감처럼 보이는 자동차. 상공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세상의 여느 곳과 별 다를 바 없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 검색대에선 단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최근에 중국, 한국, 이탈리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까?” 2020년 2월27일, 급속히 번져나가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온통 세상이 뒤숭숭한 때였다.
검색대를 나서니 키가 크고 마른 중년 남성이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그에게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고 하자 그는 내 짐을 받아들며 친근한 미소로 말했다.
“비행기 확인을 하고 와서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외교관과 국제기구에서 온 방문객을 전문으로 해서 이 일엔 훤하지요.”
공항 건물 앞에 나서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많은 흰색 택시가 눈에 들어왔다. 예루살렘의 세계은행 사무소가 왜 이 사람에게 택시를 문의할 것을 권유했는지 궁금해져 이곳에서 아무 택시나 타도 안전한지 그에게 물었다. “네,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팔레스타인이 사는 곳으로 가지 않아요. 서안지구(West Bank)의 라말라(Ramallah)에 가려면 이곳 택시 운전자는 먼저 예루살렘으로 데려다주고 그곳에서 다시 또 라말라로 가야 합니다. 저는 고객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모셔다드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오가는데 무슨 법적 제한이 있는지, 그에겐 무슨 면제권이 있는지, 차 뒷좌석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운전대에 앉은 그에게 물었다.
“법적 제한은 없지만, 이곳 택시 운전자들은 유대인이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가지 않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머물 아메리칸 콜로니 호텔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동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유대인 운전자는 그곳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순간 버지니아 북부에 거주한 지 20년이 지났어도 포토맥강 건너 메릴랜드에만 가면 길을 잃고 헤매는 나를 떠올리며, 친숙하지 않은 메릴랜드로 운전하는 것을 항상 두려워하는 나처럼 이곳 유대인도 그저 낯선 지역이 두려운 걸까 생각했다. 아니면 서로 상종하고 싶지 않을 만큼 두 민족 간의 감정의 골이 깊은 걸까?
어느덧 오렌지 빛 가로등이 훤하게 비치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그는 어둠 속에서 백열등 빛으로 우뚝 솟은 고층빌딩을 지적했다. “저기 저 건물이 라말라에 있는 밀레니엄 호텔이에요. 당신이 일요일부터 머무를 곳이지요. 예루살렘에서 단지 20km 떨어져 있지만,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검문소를 거쳐야 해서 꽤 오래 걸리고 번거롭지요. 당신은 세계은행 셔틀을 타고 갈 테니 문제가 없겠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검문소마다 운영 일정이 다르고 매우 까탈스러워서 때로는 검문소를 통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항공편을 예약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총 네 공항이 있지만, 운영이 중단된 지 오래되었고 모든 입출국은 이스라엘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오렌지 빛 가로등이 늘어선 밝은 도시로 진입하며 말했다. “이 길 왼쪽이 팔레스타인이 사는 동 예루살렘입니다. 1967년에 일어난 ‘6일 전쟁’을 알고 있습니까? 전쟁이 있기 전에 동예루살렘은 요르단 땅이었는데 전쟁 후에 이스라엘에 속하게 되었지요.”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라고 답하는 그의 목소리엔 어떤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이니치 (Zainichi)로 불리는 재일한국인처럼 그들의 부모로부터 감정을 숨기도록 훈련받았을까? 자이니치는 식민지 시대에 일본이 징집한 한국인과 그 후손이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한국인의 일본 시민권을 박탈했고, 그 이후로 재일한국인의 권리는 제한되어 왔으며 심지어 일본에서 나고 평생 일본에서 살아왔어도 외국인처럼 추방될 수 있다. 그에게 또다시 묻기 전에 차는 호텔 앞에 다다랐다.
예루살렘에서 이틀 반, 라말라에서 닷새 반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예루살렘에 들어서며 벌써 이곳과 구한말의 조선과 반복되는 역사의 닮은꼴을 본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때이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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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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