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정치, 어떻게 작동하나
▶ 9 법관의 자격과 임명 및 독립과 권력
뮤엘 앨리토 대법관이 참석한 가운데 한인 2세인 마이클 박 판사의 취임식이 열리고 있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정작 이 나라에 대해서 속속들이 모르는 게 많다. 특히 미국의 정부와 정치 시스템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백악관과 행정부는 물론 의회, 사법부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아는 것은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미국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이를 위해 본보는 연방 교육부 기관에서 30여년 몸을 담았던 박옥춘 박사(현 조지 메이슨대 겸임교수)의 글을 모두 12차례 연재해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편집자 주>
지난해 연방 항소법원 판사에 임명된 마이클 박 변호사가 선서를 마친 후 판사복을 입고 선임 판사들의 박수를 받으며 판사석에 합석하고 있다.
# 법관의 자격
연방법원 판사가 되기 위한 자격을 규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주 판사의 자격도 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연령이나 피선거권 같은 일반적인 기준이지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대법관을 비롯한 종신직 연방판사의 자격기준으로 법과대학원 졸업장이나 법률분야 학위를 법이나 규정으로 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복잡한 임명과 인준과정을 거치는 동안 연방판사 후보자의 자격은 교육과 법률분야에서의 경력 뿐 아니라 사적인 기록과 배경까지 철저하게 조사 검증된다. 미국 변호사협회는 최소 12년의 변호사나 검사 등 법조계의 경험을 자체 연방판사 자격기준의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다. 연방 파산판사와 치안판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학 학위를 가져야 한다.
# 법관의 임명절차
헌법에 대통령은 상원의원의 자문과 승인을 거쳐 연방판사를 지명한다고 되어있다. 따라서 많은 경우 연방판사의 공석이 생길 경우 대통령은 임명될 판사의 근무지가 속해 있는 주 상원의원의 추천을 받아 지명을 한다.
많은 주의 상원의원들은 연방판사 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그들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에게 추천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대통령은 연방 법무부나 싱크탱크 등 다른 채널을 통해서 추천된 후보자를 지명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지명을 받기 위해서 추천된 후보자는 백악관과 연방 법무부 관계자들, 그리고 해당 주 상원의원과의 인터뷰, FBI 배경조사 등을 통해서 그의 자격을 충분히 증명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통령은 공석인 연방판사 지명자를 발표하고 상원 법사위에 통보한다. 지명자는 그의 자세한 교육배경과 자격 그리고 활동 및 경력 등을 묻는 상원 법사위의 질문지에 대한 답을 작성 제출해야 한다. 미국변호사협회도 자체 상설기구인 연방판사 지명자 자격평가위원회를 통해서 지명자의 법률적 지식과 경력, 지적 능력 및 성품 등을 평가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고 상원 법사위에 통보한다.
상원 법사위원회는 질문지 답과 다른 자체 조사 자료들을 검토한 후 청문회를 개최하고 지명자를 상원 본 회의에서의 인준을 위해 추천할 것인지를 투표로 결정한다. 법사위에서 본회의에서의 인준 추천을 의결하면 그 결정은 상원 본 회의에 통보된다.
# 상원에서의 검토와 인준투표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임명되는 모든 정부 공직 지명자의 인준은 상원 본회의에 상정된 후 일정시간이 지나야 그 지명자에 대한 토론과 검토를 종결하고 인준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행정부 장관급 지명자, 연방 대법관과 순회항소법원 판사 지명자, 그리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지명자에 대한 토론 및 검토는 30시간, 부장관급 이하 행정부 직책 지명자, 대부분의 대사, 연방 지방법원 판사 지명자에 대한 토론 및 검토는 2시간이 지나면 토론과 검토의 종결을 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
지명자에 대한 토론과 검토의 종결이 가결되면 지명자에 대한 인준 투표를 실시한다. 후보자의 인준이 가결되면 상원은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통보하고 대통령은 임명장에 서명을 한다. 새로 임명된 판사는 직무하게 될 법원에서 선서를 마친 후 직무를 시작하게 된다. 법사위 청문회 및 인준추천 미팅, 상원 본회의에서의 토의 및 투표과정은 모두 C-SPAN을 통해 TV로, 그리고 상원 웹 사이트를 통해 방영된다.
# 법관의 독립
연방 헌법이나 주 헌법은 재판과정에서 법관의 절대적 독립과 권한을 보장한다. 뿐만 아니라 법관이 외부나 내부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재판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제공해준다.
연방판사는 일단 선서를 하고 취임을 하면 하원의 탄핵과 상원의 유죄판결을 받지 않는 한 해임될 수 없는 종신직이다. 해고나 재임의 염려 없이 소신껏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다.
# 법관의 보수
또 법관의 보수는 재직동안 감소되지 않을 뿐 아니라 퇴직한 후에도 재임 시에 받던 보수를 그대로 평생 동안 받는다. 보수 수준도 연방대법관의 경우 대통령을 제외하고 부통령을 포함한 어느 정부관료 보다 높다.
연방 지방법원 판사의 보수도 행정부의 장관을 포함한 각료, 연방 은행총재, 그리고 상원이나 하원보다 높다. 비록 연방 법원판사의 보수가 대형 로펌 파트너들에 비하면 상당이 적지만, 지금처럼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이 발달되지 않았던 건국 초기부터 법관들의 기본 보수를 다른 정부 관료 직에 비해 높게 책정해 왔다는 사실은 법관을 재정적 영향이나 유혹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생각된다.
# 법관의 서열
또 모든 연방 법원판사는 제도적으로 동등한 위치이다. 상급법원 판사라고 해서 하급법원 판사의 재판과정이나 결정에 어떤 방법으로도 간여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단 하급법원의 판결이 상급법원에 항소되면 새로운 재판을 거쳐 그 판결을 번복할 수는 있다.
또 같은 법원 안에 부장판사나 다른 판사보다 호봉이 높은 선임판사 같은 제도나 관행도 없다. 판사로서의 재임 기간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모든 판사는 자신이 속해 있는 법원의 재판에 동등하게 참여할 뿐 아니라 보수를 포함한 처우 면에서도 동일하다.
각 법원에는 법원장(Chief Judge, 대법원장은 Chief Justice라고 부름)이 있지만 법원의 행정관리를 위한 직책이지 다른 법관들의 상관이 아니다. 사법부의 상징적 우두머리인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지명으로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된다. 대법원 판사가 아니더라도 대법원장에 지명될 수 있다. 그러나 항소법원장이나 지방법원장은 공석이 생기면 해당 법원에서 65세 이하의 판사 중 가장 근무기간이 많은 선임 판사가 맡게 되고 임기는 7년이다.
이런 모든 판사의 동등한 위치와 대우도 재판과정에서 내부로 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장치도 판사의 비리나 비행을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 사법 농단 있을 수 없어
1789년 미국 법원이 수립되고 판사가 임명된 이래 230여 년 동안 15명의 종신직 연방판사(대법원 판사 1명, 지방법원 판사 14명)가 하원에서 탄핵으로 기소되었다. 그중 8명이 상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해임되었다. 230년이 넘는 미국 사법역사를 고려하면 이 숫자는 어느 환경이나 제도 속에서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또 15명 판사의 탄핵도 모두 판사 개인의 권력남용이나 비리 때문이었다.
미국 사법역사에는 정치권력이나 사법부 내부 권력으로 부터의 영향에 의한 사법농단 같은 사건은 없었다. 미국 법원은 국가 정치세력과 부처들 간의 합법적이고 균형 있는 권력 행사의 최종 보루로서 그리고 국가 사회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한 법치의 사령탑으로서, 헌법으로 부터 부여받은 그의 책무와 역할을 건국 초부터 현재까지 큰 오점 없이 수행해 오고 있는 것이다.
●박옥춘 박사
1978년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욕 주립대 조교수, 미 국방부 육군연구소 선임 심리 연구원, 미 교육부 교육과학원 책임 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조지메이슨대 겸임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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