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와 다산의 해라는 쥐띠해가 출발하자마자 궤도를 이탈했다. 지구촌이 풍요는커녕 미증유의 온역에 휘둘리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재앙이 파죽지세로 번지면서 모든 사람이 납작 엎드려 있다. 발원지인 중국에선 이미 사망자가 2,400명을 훌쩍 넘었다. ‘가능성을 넘어 개연성(possibly, even likely)’이 있다던 미국 내 확산우려도 이젠 확실성(surely)이 대세다.
요즘 한국 뉴스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종일관한다. 한동안 잘 버티다가 지난주부터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정부도, 국민도 멘붕 상태다. 마스크가 ‘머스트’다. 사람들이 나다니지 않아 도심이 휑하다. 학교도, 교회도 문을 닫았고, 식당, 시장, 극장, 경기장 등도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다. 노상 단체시위가 금지됐고 졸업식, 결혼식도 연기되기 일쑤다.
유증상자들이 기피대상이 돼 죄수처럼 집에서 감옥살이를 한다. 밥도 폐쇄된 방에서 혼자 먹는다. 괴질 폐렴이 처음 발생한 중국 우한 지역의 한인 수백 명이 특별기로 본국에 호송돼와 정부기관 건물에 2주간 집단 수용됐었다. 중국정부는 아예 우한시를 통째로 폐쇄해버렸다. 이웃 도시로 빠져나가려는 주민들을 공안이 탈옥수마냥 무자비하게 때려잡는다는 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위험하거나 불리해지면 남부터 손가락질하는 성향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우한폐렴 사태도 생명위협 외에 고약한 해악을 촉발시켰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 의식이다. 한국에선 우한 교민들이 입주할 건물 앞에서 마을 주민들이 한 때 트랙터로 길을 막고 수용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다행히 그 현수막 문구는 이내 ‘환영합니다’로 바뀌었다.
미국에선 코로나바이러스 자체보다도 외국인 혐오병폐가 더 빠르게 확산되는 모양새다. LA의 한 아시안 여성은 최근 지하철에서 백인 승객으로부터 “모든 질병이 중국에서 들어온다”는 등의 면전 악담을 10여분 간이나 들었다. 그녀는 태국 이민자였다. 역시 LA의 한 중학생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료 학생들에게 몰매를 맞았다고 아태계 인권단체가 밝혔다.
뉴욕의 지하철역에서도 마스크를 쓴 한 아시안 여성이 괴한으로부터 “병든 짐승”이라는 욕설과 함께 폭행당했다. 인디애나 주에선 몽(Hmong)족 베트남 여행객 2명이 모텔에 투숙하려다가 거절당했다. 다른 모텔에 찾아갔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단다. 뉴욕 차이나타운의 한 식당 업주는 평소 하루 매출이 평균 100석이었지만 요즘은 20~30석으로 격감했다고 하소연했다.
한 자리에서 18년째 영업해온다는 그 식당업주는 ‘2달 전 예약’이 관행일 만큼 성업을 구가했지만 지금은 예약취소 전화가 쇄도한다며 손님이 70~80%나 줄어든 속내엔 외국인 혐오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차이나타운은 물론 뉴욕 전체가 바이러스 청정지역인데도 많은 단골들이 중국인 및 중국적인 것과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며 발길을 끊는다고 덧붙였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파괴력은 역대급이다. 인명피해는 차치하고 지구촌 경제를 단숨에 옥죄고 있다. 한국 여당은 코앞의 총선과 2년 뒤 대통령선거를 걱정한다. 일본도 올여름 도쿄 올림픽을 제대로 열 수 있을지 조바심이다. 민초들의 신경도 날카롭다. 운수 나쁘게 바이러스에 걸리면 팔자에 없이 ‘방콕’하며 ‘혼밥’을 먹어야 한다. 더 나쁘면 세상을 하직할 수도 있다.
지난주 캘리포니아 주하원이 2차 세계대전 직후 강제 수용됐던 일본계 시민 12만여명에게 사과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당시 연방정부가 일본인들을 오지에 격리 수용시킨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따위 괴질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들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폭격한 일본군을 편들어 부역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외국인 혐오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일본인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문제의 강제수용 행정명령에 서명한 2월19일을 ‘회억의 날(Day of Remembrance)’로 기념한다. 바로 그날 주하원을 통과한 사과 결의안의 발의자인 앨버트 무랏스치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도 78년 전과 똑같이 중남미 난민들을 강제 수용한다”고 비판했다. 역사는 되풀이 되지만 인종차별과 혐오로는 결코 문제를 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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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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