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한다고해서 누구나 거장(비르투오소)을 추종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도 음악 주위를 늘 서성거리면서 음악을 사랑해 왔지만 특별히 누구다하고 꼭 집어서 편식하듯 한 연주자의 음악만을 집중적으로 들어본 적은 없었던 같다. 어느 정도 잘 치면 다 좋아보였고 큰 불만도 없었다. 그러나 연주로 밥 먹고 사는 프로들의 입장은 좀 다른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관객을 모아야하는 의무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 색다른 것을 보여주어야할 절대 사명감같은 것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즉 어린 시절부터 잘 나가고 음 하나로 촌철살인하는 연주실력을 보여주는 신동이라든가 또 무언가 남에게는 없는 테크닉, 개성, 창의성, 예술성 등 하나쯤은 자신만의 장기가 있어야 주목받고 또 연주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매우 까다로운 귀를 가지고 있는 청중 혹은 의뢰인(작곡가)이 있어 어떤 수준의 연주를 들려 줄 것을 요구한다면 과연 그 귀를 만족시킬만한 능력이나 테크닉 혹은 예술성을 모두 갖춘 연주인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대체로 잘 연주하는 연주인보다는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대가 혹은 거장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즉 자기 스타일의 연주에 최선을 다한 뒤 결과는 청중의 반응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연주인보다는 때때로 청중의 귀를 압도하는 그런 연주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파가니니가 그랬다고 하는데 요즘에도 그런 거장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지껏 들어본 소리 중에서 피아노 분야의 스비아토슬라프 리이터(Sviatoslav Richter 러, 1915-1997)가 아마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지워버릴수 없다.
음악 특히 연주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같은 악보를 놓고 얼마든지 다르게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음악의 자율성이며 동시에 음악에서 요구되는 예술성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거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테크닉상의 뛰어남 뿐아니라 예술성과 개성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주자를 가르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유명대회에서 1등한다고하여 평생 시들지 않고 대중의 관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연주자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대한 연주자 중에서는 콩쿠르 우승자나 명가 출신이 아니라 자율적인 노력이나 독학에 의해 스스로 탄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스비아토슬라프 리이터였다. 과연 그가 연주하는 쇼팽의 음악을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리이터의 쇼팽 연주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가장 좋은 음악은 때때로 가장 악마적이며 묘하게도 논란과 이중성을 동시에 불러오는 아이러니를 낳곤하는데 리이터의 음악은 가장 특별하면서도 자기 만의 세계 속에서 객관성을 새롭게 개척해 낸 가장 뛰어난 거장의 삶을 살아낸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이었다.
얼마전 조성진의 연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2번)을 듣다가 피아노 소리가 잘 들려오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파묻혀 조성진만의 섬세한 음향이 퇴색되어 버린 때문이었다. 건반에서 울려오는 섬세한 여운은 독주곡이나 쇼팽 연주때는 좋지만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2번)같은 작품에서 여운의 사치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리이터의 연주는 반대로 가장 강렬한 라흐마니노프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건반을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공력이 깃든 소리라고나할까. 물론 소리가 강렬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연주라고 볼 수는 없지만 리이터의 야생마같은 연주는 같은 강도에도 불구하고 내공이 깊은 고수의 장력이 다르듯 강하면서도 내면으로 펴저 울리는 여운이 무한한 감동을 준다. 한마디로 세기에 한 두명 탄생할까말까하는 피아노 연주라고나할까.
리이터는 독일계 우크라이나(구 러시아) 태생으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덕에 피아노의 기본기를 배웠고 15세때 부터 피아노 반주로 돈을 벌었다. 22세가 되어 저명한 피아노 선생(네이가우스)을 만났지만 그때 이미 그는 독학으로 스승조차 감탄할만큼 성장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27세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 6번을 초연하여 데뷰무대를 가졌는데 작곡가의 귀를 의심케할만큼 명연주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는 강렬함… 모든 것을 연소시키는 듯한 장렬한 맛을 남기는 피아니스트 리이터에 대해 혹자는 ‘세상에는 여느 피아니스트 그리고 리이터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는데 아무튼 리이터는 그만큼 다른 연주를 보여준 피아니스트였다. 그와 비교할 상대가 있다면 호로비치 정도겠지만 호로비치는 그의 전성기 대부분을 은퇴기로 소비해 버리고 말았다. 차이코프스키 콩쿨 당시 반 클라이번은 리이터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데 세기의 음반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연주(Sviatoslav Richter -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를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이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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