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에 노벨 평화상, 문학상 및 과학상 수상자 11명이 발표되었다. 2019년까지 총 917명의 개인과 24개 단체가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노벨상 위원회의 수상자 선정 배경에는 늘 빠지지 않는 수식어 즉 ‘최초’ ‘획기적 발견’ ‘큰 공헌’ 등의 단어가 포함돼있다. 특히 과학상 수상자들은 ‘독창성’과 ‘인류에의 기여’란 두가지 큰 업적으로 우리 삶의 질 향상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공헌을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두번이나 수상하여 방사능의 유해를 알린 퀴리 부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이다. 혈청 치료요법 연구를 통해 디프테리아, 파상풍 등의 치료법을 발견하여 1901년 수상한 에밀 폰 베링은 전염병 면역 치료의 새 시대를 열게 했다. 1923년엔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이, 1945년 페니실린이 각각 발견되며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되었다. 인슐린과 페니실린은 지금 현재에도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 1930년 인간의 혈액형이 4가지로 구분되면서 생명을 살리는 수혈이 시작 되었고 1962년 모든 생물의 기본 정보가 담긴 DNA의 분자 구조가 세상에 알려지며 과학 수사 및 혈육 찾기 등 여러 분야에서 크나큰 도움을 주고 있다.
1905년 결핵균, 1966년 고형암 유발 바이러스, 1997년 감염을 일으키는 프리온, 2005년 위궤양과 위염을 가져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이 모두 노벨상 수상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이렇듯 지금은 당연하게 활용되고 있는 기술들이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을 통해 개발되었으며 인류의 생활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20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미스 미국 미주리 대 교수와 그레고리 윈터 영국 분자생물학연구소 교수는 세포를 조작해 원하는 항체만 생성시키는데 성공했고, 이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약이 바로 세계 최초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Humira)이다. 지금까지 치료약이 없어 진통제에만 의존했던 류마티스 관절염 등 면역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이 약은 지난 한 해 매출이 21조2,000억원으로, 현재 전 세계 단일 의약품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약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노벨상과 거리가 멀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국가의 발전전략은 과학과 기술에 바탕을 둔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임에도 안타깝게도 노벨 과학상(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분야에서 한 명도 수상하지 못했다. 1901년 설립부터 2019년까지 노벨 과학상 수상자 총 616명 중 아시아에서는 일본 24명, 중국 3명, 그리고 인도 2명이 수상하였다.
한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비 투입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반도체, 원자력, 조선, 자동차, 전자 등 첨단산업에서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는데 어째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느냐는 질문은 당연하다. 과학자들은 대한민국의 노벨 과학상 부재의 원인을 단기성과 중심의 연구정책, 이익 창출과 연관된 연구, 그리고 노벨상 시즌을 제외한 국민들의 무관심 등이라 지적하고 있다.
우선 과학의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훌륭한 스승들이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문 발전에 기여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몫을 다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획일적 문화를 중시하는 사회 환경의 변화도 필요하다. 남이 안하는 짓을 해도 흉보지 않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을 질책하지 말고 오히려 권장해야 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겠다.
필자는 2005년 물리, 화학 및 경제 분야 노벨상 선정위원을 임명하는 스웨덴 왕립 과학학술원 총재 린드스텐(Jan E. Lindsten) 박사와 함께 만찬을 하면서 노벨상 수상자 선정 과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분야 별로 수천 명의 후보 중에서 압축하여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한 사람의 수상자 선정 과정에 노벨상 상금 만큼의 비용이 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대화 중 과학 및 공학 기술의 개발에는 절대로 정치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정치는 과학과 기술의 가시적 및 단기적 결과만을 요구하여 거시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벨상은 목표가 아닌 결과임을 직시하고 비록 늦기는 했지만 새로운 각오로 기초 과학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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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일리노이대 명예 석좌교수 조지 메이슨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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