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를 맞는 내일, LA 필하모닉은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신년음악회(Viennese New Year with Zubin)를 연다. 매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본 딴 프로그램으로, LA필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같은 장소에서 1월3일 낮에 ‘살루트 투 비엔나’(Salute to Vienna New Year’s Concert)가 열린다. ‘미국의 슈트라우스 심포니’(Strauss Symphony of America)라는 단체가 해마다 북미 20개 도시에서 공연하는 신년 이벤트다.
이처럼 빈 필의 신년음악회는 지구촌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중화된 새해맞이 행사다. 매년 1월1일 빈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세계 90여개 나라로 중계되고, 사람들은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음악도시 빈이 왈츠로 물결치던 시절의 음악을 들으며 흥겹게 새해를 맞는다.
빈 필 신년음악회는 19세기 말 큰 인기를 누렸던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 아들들인 요한 2세, 요제프, 에두아르트)의 음악들, 그중에서도 ‘왈츠의 왕’으로 불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연주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2시간 반 동안 이어지는 이 음악회에서 사실상 가장 유명한 것은 앙코르 연주다. 여기서는 언제나 가장 인기있는 ‘푸른 도나우’가 연주되고 이어서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되는데, 마지막 행진곡에서는 청중이 다함께 경쾌한 2박자의 선율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것이 오래된 관습이다.
빈 필 신년음악회의 또 다른 유명한 전통은 매년 다른 지휘자를 초청해 포디엄에 세우는 것이다. 단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지휘자 선정이 워낙 까다로워서 세계적인 지휘자들도 이 초청을 큰 영예로 받아들인다. 또 매년 신년음악회 끝난 후 발표되는 다음 해 지휘자 이름은 언제나 음악계의 빅뉴스가 되곤 한다.
1980년대 이후 초청된 지휘자들은 로린 마젤이 10회로 가장 많고, 주빈 메타 5회, 리카르도 무티 5회, 마리스 얀손스 3회, 다니엘 바렌보임이 2회 맡았다. 오랫동안 서유럽 출신의 지휘자들만의 무대였으나 차츰 개방돼 2002년 세이지 오자와가 아시안으론 유일하게 초청됐고, 2017년 구스타보 두다멜이 최연소(당시 35세) 지휘자로 초청돼 화제가 됐었다. 이번 2020년의 지휘자는 보스턴 심포니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안드리스 넬슨스(41).
새해를 흥겨운 왈츠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신년음악회는 그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와 비슷한 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생겨났다. 하나같이 슈트라우스 가족의 왈츠와 폴카 일색이고, 아예 댄서들이 출연해 춤까지 추는 공연도 적지 않다.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번 LA필의 신년음악회 역시 빈 필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1부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3번, 2부는 전체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와 폴카 춤곡들로 꾸며졌다. 전통에 따라 아마도 앙코르에서 ‘푸른 도나우’ 왈츠와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행진곡이 연주될 때 메타가 청중을 향해 돌아서서 지휘하고, 청중은 다같이 박자 맞춰 박수치는 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그런데 왠지 좀 진부하고 거슬린다. 빈 필 신년음악회는 상당히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행사라는 점에서, 또 그 기원이 어두운 역사를 가졌다는 점에서 세계인의 신년행사로 적절한지 재고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이 음악회는 나치의 선전장관이던 괴벨스가 전쟁에 지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기획한 송년행사였다. 쉽고 단순하고 재미있는 왈츠 음악을 반복 연주함으로써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괴벨스의 목적과 당시 빈 필 단원의 절반이 나치 당원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행사의 의미를 되짚어보기에 충분하다.
또한 레퍼토리는 오직 빈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의 음악만을 택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정해져있어서 1991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로시니의 곡을 넣은 것에 단원들이 반발해 다시는 초대받지 못했을 정도로 배타적이다.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보다 혁신적인 프로그램으로 각광받는 LA필이 왜 갑자기 구시대의 감상적인 전통을 뒤따르는 것인지 좀 의아하다. 빈 사람들은 빈의 왈츠와 함께 새해를 맞으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자기네 전통을 살린 퍼포먼스로 새해를 맞이하는 전통을 세우면 어떨지, 그 자체로 훨씬 다양하고 재미있고 의미있는 한해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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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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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 여자의 의견이라 생각하며 읽고 넘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