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NFL시즌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흑인 쿼터백들의 약진이라 할 수 있다. 약진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흑인 쿼터백들이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고 있다. 가히 흑인 쿼터백들의 ‘황금시대’라 부를 만하다.
그 선봉에 서있는 선수가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쿼터백 라마 잭슨이다. 만 22살로 프로 2년차인 잭슨은 올 시즌 주전자리를 꿰찬 후 NFL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규시즌을 단 한주 남긴 현재 레이븐스의 성적은 13승2패로 NFL 최고승률이다. 잭슨은 올 시즌 15경기서 무려 36개의 패싱 터치다운을 성공시키고 러싱도 1,206 야드나 기록했다. 웬만한 주전 러닝백들 보다 더 많이 달렸다. 그만큼 강한 어깨와 빠른 발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MVP는 따 놓은 당상이다.
잭슨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던 전문가들조차 예상을 뛰어넘는 그의 활약에 놀라고 있을 정도다. 어린 라마 잭슨이 이처럼 순식간에 재능을 꽃피우며 수퍼스타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레이븐스 존 하버 감독의 과감한 결정 덕이었다. 하버 감독은 잭슨에 팀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간파하고 올 시즌 그를 주전으로 내세우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면서 팀을 잭슨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으로 아예 바꿔버렸다.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팀들의 쿼터백은 대부분 흑인들이다. AFC 웨스트 선두인 캔자스시티 칩스의 패트릭 마홈과 AFC 사우스 선두 휴스턴 텍산스의 드션 왓슨, 그리고 NFC 웨스트의 시애틀 시혹스를 만년 강호로 만든 영리한 쿼터백 러셀 윌슨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올해 드래프트된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한국계 흑인 카일러 머리를 비롯해 팀의 주전으로 뛰고 있는 흑인 쿼터백들은 10명이 넘는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흑인 쿼터백들의 이 같은 활약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NFL 전체 선수들 가운데 흑인 비율은 70%로 절대적이다. 하지만 풋볼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꼽히는 쿼터백의 비율은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낮았다. 20세기에 실시된 80번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된 흑인 쿼터백 수는 모두 합해 22명에 불과했다.
스포츠 사회학자들은 포지션별 인종구성의 불균형을 ‘스태킹’(stacking)이라 부른다. 특정 인종의 선수가 특정 포지션에 과도하게 많거나 너무 적은 현상을 이른다. NFL에서 스태킹이 가장 두드러진 포지션이 바로 쿼터백이었던 것이다.
이런 불균형 현상 속에는 흑인들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고 있었다. 쿼터백은 필드의 야전사령관이라 불린다. 순간순간 경기의 흐름을 판단하고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민첩한 판단력과 리더십이 요구된다.
하지만 흑인 선수들은 몸으로 뛰는 일은 잘해도 머리는 백인들만 못하다는 편견에 오랜 세월 피해를 입어왔다. 쿼터백으로 뛰는 경우에도 은근히 차별을 받았다. 한 경제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같은 실수를 할 경우 주전에서 밀려날 확률이 흑인 쿼터백의 경우 백인보다 2배가량 높다.
서서히 진행되다가 한 순간 물꼬가 터지면서 급속히 빨라지는 것이 변화다. 흑인 쿼터백들이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속도가 바로 그렇다. 뉴잉글랜드의 탐 브래디나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드루 브리스 같은 전형적인 포켓 패서형 쿼터백들의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들도 있을 정도다.
쿼터백으로서 흑인 선수들의 실력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본래부터 그들의 자질은 출중했다. 다만 오랜 세월 그 능력과 실력을 보여줄 정당한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피부색은 물론 성별과 학력 등 인간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요소들은 여전히 넘쳐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쿼터백들의 활약은 스포츠와 관련해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모든 이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질 때 한 사회의 잠재력은 극대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문화학자 에디 글러드 교수는 “누가 필드에 설 것인가를 오로지 재능과 능력에 따라 결정할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하게 되고 결국 그 조직은 승리하게 된다”며 공정한 기회와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뒤집어 말하면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고 방치하는 조직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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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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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내 강력범죄의 90% 이상이 특정 인종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고 있는지? 한인사회의 대표언론으로써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