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열리고 있는 모차르트의 ‘요술피리’(The Magic Flute)는 LA오페라 역사상 최고 히트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애니메이션과 무성영화를 섞어서 만든 퓨전오페라 프로덕션인데 볼 때마다 얼마나 깜찍하게 재미있는지 내내 정신줄 놓고 웃게 만든다. 오페라를 좋아하고 많이 보지만 이렇게나 재미있는 공연은 없었다.
베를린의 ‘코미셰 오퍼’(예술감독 배리 코스키)와 영국 극단 ‘1927’(공동감독 수잔 안드레이드, 폴 배릿)이 함께 만든 이 프로덕션은 2012년 베를린에서 첫 선을 보여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은 후 2013년 LA 오페라가 미국 초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세계 주요도시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돼왔으며, LA 오페라는 2016년 다시 한번, 이번에 세 번째로 무대에 올릴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별한 세트 없이 무대는 하나의 거대한 스크린, 이를 배경으로 애니메이션 영상과 라이브 퍼포먼스가 코믹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 자라스트로와 밤의 여왕, 파파게노와 파파게나가 귀엽고 절묘하게 등장하고 노래한다.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과 동화 같은 이야기는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톡톡 튀는 연출, 유머 넘치는 표현, 코믹한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작품이다.
‘요술피리’는 1791년 모차르트가 죽기 두달 전에 완성한 징슈필(Singspiel)이다. 독일의 민속음악극인 징슈필은 오페라와는 달리 노래 사이에 연극적 대사가 많은데, 이 프로덕션은 좀 지루할 수 있는 대사들을 모두 걷어내고 내용을 간단하게 자막처리 해버림으로써 음악만 남긴 것이 가장 큰 변형이고 혁신이다. 게다가 인물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벽에서 튀어나와 라이브 애니메이션과 완벽한 호흡을 이루는 열연으로 한 편의 매혹적인 공연예술을 만들어냈다. 고전 오페라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공연은 적지 않지만 이처럼 기존의 틀을 깨고 형식 자체에 파격적 변화를 준 작품은 처음이어서 오페라의 현대적 변신에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한다.
호주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배리 코스키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감독이다. LA 오페라는 ‘요술피리’에 이어 그의 더블빌 프로덕션 ‘디도와 아이네아스/푸른 수염 성’을 2015년 공연했고, 이번 시즌 개막작 ‘라 보엠’도 그의 연출작이다. 코스키는 고전작품 속에 숨어있는 인간성, 그 어리석음과 유연함, 유머와 페이소스를 찾아내 그만의 독창적인 시각과 현대적 감각을 덧입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유럽에 코스키가 있다면 미국에는 유발 샤론이 있다. 실험오페라단체 ‘인더스트리’의 예술감독인 그는 오페라의 혁명을 일으킨 ‘합스카치’(2015) 이후 21세기의 혁신적인 천재 연출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3년 동안 LA 필하모닉의 아티스트 콜래보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신선하고 도발적인 프로젝트들을 여럿 연출한 그는 바로 지난주 롱비치오페라의 임시 예술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현대오페라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유발 샤론 역시 올해초 독일에서 새로운 ‘요술피리’를 연출해 큰 화제를 모았었다. 베를린 스테이트 오페라의 초대로 만든 그의 프로덕션은 밀레니얼들이 좋아하는 망가 스타일의 인형극으로, 등장인물들이 로프에 매달려 움직이고 날아다니면서 노래하는 공연이었다. 이렇게 특이하고 비전형적인 프로덕션은 미국 내 오페라하우스들은 거의 초대하지 않기 때문에 구경하기 힘들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어쩌면 다음 시즌 롱비치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롱비치오페라는 사회적 이슈나 현대물을 주로 다루는 단체이고, 바로 그 때문에 샤론을 선임했기 때문이다.
배리 코스키와 유발 샤론, 현재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오페라 연출가로 유명한 두 사람은 콧대 높기로 유명한 150년 역사의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에 코스키는 최초의 유대인, 샤론은 최초의 미국인(그 역시 유대인) 연출자로 초대된 공통점도 있다.
클래시컬 음악계의 고민은 젊은 층이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을 외면하고 청중은 갈수록 노령화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달라지고 있는데 21세기의 오케스트라들은 아직도 지난 300여년간 작곡된 음악을 똑같이 재연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원인일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자주 연주되지 않으니 클래식 음악과 대중 사이의 간극은 계속 멀어만 간다. 이 간극을 기발한 방식으로 이어주는 코스키와 샤론 같은 재주꾼들이 더 많이 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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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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