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사디나에 있는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한인들도 많이 찾는 남가주 명소의 하나다. 정확한 명칭은 ‘헌팅턴 도서관, 미술관, 식물원’(The Huntington Library, Art Museum, and Botanical Gardens)인데 보통 줄여서 ‘헌팅턴 라이브러리’ 혹은 그냥 ‘헌팅턴’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이렇게 길게 붙여진 이유는 희귀한 고문서 1,100만점이 소장된 도서관, 유럽과 미국 미술품 수만점을 전시한 미술관, 10여개의 주제별 정원이 조성된 120에이커의 식물원이 방대한 207에이커 부지에 펼쳐져있기 때문이다. 일반사람들은 대부분 정원을 구경하러 찾아가지만 학술연구를 위해 도서관과 미술관을 찾는 학자들이 연간 1,700여명에 이르고, USC와 칼텍과 연계한 역사 및 과학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헌팅턴이 올해로 창설 100년을 맞았다. 이것은 크게 기념할만한 일로, 남가주에서는 게티 뮤지엄(1954)와 LA카운티미술관(1965)보다 한참 앞서고, 뉴욕의 휘트니 뮤지엄(1930)과 구겐하임 뮤지엄(1937)보다도 먼저 지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개인 콜렉션으로 설립된 문화예술교육기관으로는 아마도 미 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일 것이다.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1919년 철도와 부동산재벌이었던 헨리 E. 헌팅턴과 아라벨라 헌팅턴 부부가 설립한 곳이다. 전 세계를 다니며 희귀도서들을 수집한 헨리 헌팅턴은 두 번째 아내 아라벨라의 영향으로 예술품 수집에도 열정을 기울여 방대한 소장품을 이루게 되었다.
이 역사에서 무척이나 흥미를 끄는 사람이 아라벨라 헌팅턴(1850-1924)이란 여인이다. 그녀는 헨리 헌팅턴의 삼촌인 콜리스 헌팅턴의 아내였으나 남편이 죽고 난 후 조카와 재혼하여 숱한 화제를 뿌린 인물이다. 출생과 배경이 미스터리인 아라벨라는 19세때 고향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 존 워샴이라는 중년남자와 결혼해 그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은 것으로 돼있다. 하지만 워샴과의 결혼은 위장일 뿐, 사실은 유부남이던 철도재벌 콜리스 헌팅턴의 정부였고, 아들(아처 밀튼 헌팅턴)도 헌팅턴의 친자라는 설이 유력하다. 콜리스는 그의 아내가 죽자마자 1884년 아라벨라와 결혼했고 아들도 입양했다.
아라벨라는 결혼하면서 자기가 살던 집을 존 D. 록펠러에게 팔았는데 지금 모마(MOMA) 미술관의 정원이 된 곳이다. 또 두 사람이 건축하고 살았던 뉴욕 핍스 애비뉴 57번가의 저택은 1906년 티파니 컴퍼니가 구입해 아직도 그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점을 운영하고 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온 바로 그 저택이다.
아라벨라는 1900년 콜리스가 죽자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업을 벌였으며, 죽을 때까지 검은 옷을 입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남편 사후에도 헌팅턴 가문과의 관계가 이어지면서 남편의 조카였던 헨리 헌팅턴과 자주 접촉하게 되었고, 급기야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계속 부인했으나 결국 헨리가 이혼하고 숙모와 함께 파리로 날아가 1913년 결혼하면서 세기의 불륜은 세기의 로맨스가 되었다.
아라벨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구축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은 여인이었다. 당시 미국 최대 재벌이었던 두 명의 헌팅턴을 남편으로 두었던 덕분에 파리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카르티에, 티파니, 부셰론 같은 보석상들에게서 유럽 왕실의 보석 콜렉션을 사들였고, 18세기 프랑스 장식미술품과 회화 수집에 열을 올려 미국과 유럽 화단의 큰손으로 불렸다. 쇼핑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미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세관에 낸 세금이 매번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는데, 1910년 입국 때의 기록에는 4만8,000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나온다.
그녀는 1924년 죽을 때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귀속된 것을 제외한 모든 재산과 미술품, 가구, 장식품 일체를 아들에게 상속했고, 아들은 어머니의 콜렉션과 귀중품의 상당 부분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샌프란시스코 뮤지엄, 예일대학 미술관에 기증했다. 엄청난 양의 보석 콜렉션은 통째로 해리 윈스턴이라는 무명의 보석상이 사들였으며, 그는 아라벨라의 보석을 해체하여 모던 스타일로 만들어 팔면서 세계적인 보석상으로 발돋움했다.
엄청난 부를 가진 한 여인의 허영과 수집벽이 방대한 도서관과 뮤지엄의 토대가 되었다. 미술사를 보면 세계의 많은 뮤지엄들이 의도했건 안했건 한 개인의 물욕과 소유욕에 의해 태동되었다. 그래도 아라벨라는 생전에 남편과 함께 재단을 세우고 소장품을 기증했으니 감사해야겠다.
지난 9월초 대대적인 센테니얼 축하행사를 가진 헌팅턴은 앞으로 1년 동안 다양한 전시, 공연, 대담, 교육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100년 역사를 기념한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