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발레 클래스에 몇 달 보낸 적이 있다. 프리스쿨에서 제공하는 클래스 중의 하나였는데, 그때 다른 엄마들로부터 수없이 들은 말이 있다.
“왜 남자아이에게 발레를 시켜요?”
그런데 그거 혹시 아시는지, 발레가 원래 남자들의 춤이었다는 거.
발레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프랑스를 거쳐 러시아에서 만개한 춤이다. 피렌체의 카트린 드 메디치가 앙리 2세와 결혼한 이후 프랑스 궁정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특히 ‘태양왕’ 루이 14세는 20년 동안 매일 연습하며 수많은 작품에서 주역으로 춤을 추었고, 1661년 왕립 발레아카데미를 설립했을 정도로 발레를 사랑했다. 영화 ‘왕의 춤’(Le Roi Danse, 2000)을 보면 발레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17세기 궁정문화가 상세하게 그려지고, 작곡가 륄리가 극작가 몰리에르와 함께 코미디 발레와 프랑스 오페라를 처음 만드는 과정도 묘사된다.
그런데 귀족사회의 전유물이던 발레 공연에 여성은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노출이 금지된 옷차림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일이다.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서는 다양한 발동작 테크닉도 보여줄 수 없고, 귀족여성이 무대에 올라 춤추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발레리나가 등장한 것은 18세기 이후다. 왕립무용학교를 통해 전문무용수들이 배출되면서 발레가 차츰 대중화되었고 여자들도 발레를 배우게 되었다. 화려한 테크닉을 보여주기 위해 치마 길이는 점점 올라갔으며 그에 따라 발레리나의 위상 또한 올라갔다. 19세기 초 토슈즈(point shoes)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푸앵트 기술이 처음 나온 이후 발레리나들의 테크닉과 인기는 날개 돋친 듯 솟아올랐고 그때부터 발레가 여자들의 춤처럼 인식돼온 것이다.
한편 프랑스에서 화려하게 꽃피웠던 발레는 1789년 대혁명으로 왕실이 붕괴되고 왕립아카데미의 운영이 한동안 중단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때 프랑스의 무용수들을 데려가 품은 곳이 러시아였다. 서유럽 문화를 동경하고 모방했던 러시아 황실은 돈을 아끼지 않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최고 수준의 교사, 안무가, 댄서를 초빙하여 발레를 열렬하게 육성시켰고, 마침내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클래식 발레의 최강국이 되었다.
그 러시아 발레의 시작이자 중심에 237년 역사를 가진 ‘마린스키 발레’가 있다. 발레 좋아하는 사람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발레를 선보이는 무용단이다. 이 마린스키가 지난 달 미국을 방문, LA 뮤직센터와 OC 시거스트롬센터에서 조지 발란신의 ‘보석’과 마리우스 프티파의 ‘라 바야데르’를 각각 공연했다.
이 공연이 특별했던 건 발레리노 김기민이 주역무용수 1군에 이름을 올리고 찾아와 한인들의 기대를 한껏 모았기 때문이다. 그는 2년 전에도 OC 무대에서 ‘셰헤라자데’의 황금노예를 춤춘 적이 있는데 얼마나 기막히게 잘하던지, 힘찬 테크닉과 표현력, 작렬하는 카리스마에 끝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었다. 이번 LA 무대에서 ‘보석’ 루비의 주역을 맡아 빨간 의상을 입고 등장한 김기민은 과연 불꽃처럼 정열적이면서도 경쾌한 몸짓,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탄력있게 튀어오르는 강렬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김기민(27)은 오랫동안 폐쇄적이던 마린스키에 2011년 아시안 최초로 입단한 발레리노다. 열아홉살 나이에 들어가자마자 2개월 만에 주역을 꿰찼고, 1년 만에 정단원으로, 3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초고속 승급했으며, 이듬해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한국인 발레리노 최초로 수상했다. 요즘 세계 주요발레단에는 거의 모두 한국인 단원이 있을 정도로 한국 발레가 성장했지만 김기민은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이다.
그는 열 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세살 위의 형과 함께 발레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 형제가 각종 스포츠를 섭렵했는데 다른 운동을 제쳐두고 스스로 발레를 선택했다고 한다. 처음에 반대하던 아버지도 두 아들의 재능을 본 후 적극 지원함으로써 오늘의 마린스키 스타 김기민과 한국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완이 탄생했다.
공연 후 리셉션에서 잠깐 만난 그는 무엇보다 성숙함이 돋보이는 예술가였다. 조성진과 김연아 등 이른 나이에 정상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성숙한 사고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김기민 역시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 와있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거기에 도달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 지를 정확하고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자신 외에는 경쟁자가 없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보다 더 나은 나를 찾고자 노력할 뿐 남과의 비교는 없는 것이다. “모두가 다른 댄서일 뿐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 순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춤을 표현했다면 그것이 최고의 춤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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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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