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이기대 해안길
생태계 잘 보전된 군사보호구역, 1997년 개방으로 시민 품으로 험한 해안 걷기 좋은 길로 정비...2022년엔 국내 첫 ‘트램’ 달려
▶ 절벽 밑 거센 파도가 부서지고 스카이워크선 오륙도가 한눈에 “바다·절벽·도심 조화 아름다워” 호주서 온 관광객 입에서 탄성
임진왜란 의로운 기녀 이름 유래, 구리광산 등 아픈 역사 흔적도
부산 남구 용호동 이기대 해안길 중 하나인 동생말에선 광안대교와 해운대 마린시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부산시에서 이기대 해안길은“한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 회자될 만큼, 이 지역에선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통한다. [부산=전혜원 기자]
부산 남구 오륙도 스카이워크에선 날씨가 좋을 경우,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이기대 해안길 초입에 활짝 핀 들국화 [부산=전혜원 기자]
해식동굴에 이어진 구름다리 [부산=전혜원 기자]
유리바닥으로 설치된 스카이워크 [부산=전혜원 기자]
절벽을 따라 연결된 해안길 등은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부산=전혜원 기자]
지난 22일 오후 부산 남구 용호동 이기대 해안길. 가을 햇살은 따뜻했다. 시원하면서도 강한 바다 바람은 잠시 걷다 생긴 땀을 바로 식혀줬다. 이기대 해안길 초입 오륙도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에 다다랐다. 35m 해안절벽 위에 설치된 이 시설은 유리로 된 바닥이 15m 정도 바다 위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덧신을 신은 방문객들이 살얼음 위를 걷듯 유리 바닥을 조심조심 걸었다. “너무 무섭다”, “유리가 깨지면 어떡하나”하면서도 휴대전화 등으로 인증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스카이워크를 걷고 난 많은 방문객들은 이내 해안 절벽으로 길이 나 있는 이기대 해안길로 향했다.
부산 남구 용호동 이기대(二妓臺). 부산 사람들도 ‘한번도 안간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다’할 정도로 걷기 열풍을 주도한 부산의 절경 해안길이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이자 강원도 속초 통일전망대까지 걸어갈 수 있는 770㎞ ‘해파랑 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곳은 1997년 시민에게 개방되기 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힘들었다.
해안길의 깎아지른 절벽과 그 절벽 사이로 난 길을 보고 있던 금발의 호주인 관광객 론(73)씨는 “이곳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풍광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온 부인도 “바다와 절벽, 도심(이기대에서 보이는 해운대 마린시티 고층건물과 광안대교 등)이 이렇게 아름답게 어우러진 곳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탄성을 자아냈다.
군사보호구역에서 수변공원으로오륙도를 뒤로 하고 이기대 해안길로 접어들자 해안길 아래 절벽 밑으로 거센 파도가 달려 들었다. 해안길 아래 비탈 쪽에는 해안 경계에 이용되던 초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과거 이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이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군 부대가 간첩 침투를 예방하기 위해 경계 근무를 섰던 곳이다. 일부 구역에는 해안 경계용 철책이 그대로 보존된 곳도 있다. 부산 남구 관계자는 “우리나라 분단 현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이 군사보호지역은 1997년 해제 조치됐고, 이후 일반인이 드나드는 것이 자유로워졌지만 길이 험해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산 남구는 2005년 시민들이 편안하게 해안 절경을 즐길 수 있도록 이기대 일부 구간에 5개의 구름다리를 설치한 데 이어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30억원 가량을 투입해 이기대 해안길 3,950m 구간에 나무 데크 등을 설치하는 연안정비 사업을 펼쳤다. 지금의 명품 해안 절경길이 태어난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이기대 해안길은 수변공원으로 탈바꿈, 지속적인 관리를 받으면서 군사보호구역에서 공원으로 ‘재생’, 즉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오랫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막힌 탓에 이기대는 청정 해안이자 분지형 자연 습지의 다양한 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특히 이곳 자연 습지는 많은 반딧불이가 서식, 생태 학습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공룡 발자국도 발견돼 공원으로 정비하면서 공룡 모형을 만들어 두기도 했다. 이기대 해안길을 걸으며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마린시티의 고층 건물군의 풍광은 압권이다.
해안 절벽에다 다양한 볼거리로 최근 이기대와 오륙도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구름떼다. 관광안내소 관계자는 “주말이면 5,000~6,000명 정도 찾아오고, 평일에도 3,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단체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줄지어 주차난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기대(二妓臺), 일본과의 악연 간직하다
이기대 해안길을 걷다 보면 폐광된 구리광산 흔적을 곳곳에 볼 수 있다. 이 일대가 과거 구리광산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순도 99.9% 구리를 채광했다 한다.
수탈 현장이다. 갱도는 모두 5군데가 있다. 1호 갱도는 오륙도에서 시작하는 이기대 입구의 반대 쪽 끝 섶자리에 있고, 나머지는 해안길 중간중간에 있다. 서울에서 온 김정식(63)씨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 식민지 시절의 아픈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묘한 기분과 함께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포진지도 남아 있다. 일본이 러일전쟁 후 조선인을 동원해 16년 동안 만든 길이 45m, 폭 14m 높이 3m 규모의 인공동굴이다. 한때 부산시와 남구는 일본군 포진지의 관광 자원화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현재는 안전상의 이유로 접근할 수 없다.
이기대의 명칭 유래도 일본과의 악연에서 기인한다는 설이 있다. 향토 사학자 최한복(1895~1968)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이곳에서 연회를 열었다. 이때 수영지역의 의로운 기녀가 자청해 연회에 참가, 술에 취한 왜장을 안고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고 해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원래 의기대(義妓臺)가 옳은 명칭이지만 이후 이기대가 됐다 한다. ‘동래영지(東萊營誌, 1850)’ 등에는 “좌수영에서 남쪽으로 15리에 있으며 위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 부른다”라는 기록도 있다.
도심재생 교통수단 트램과 만나다군사보호구역에서 명품 수변공원으로 재생한 이기대는 도심재생 교통수단의 상징으로 통하는 트램과의 연결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내년부터 전력 공급 케이블 없이 배터리만으로 달리는 무가선(전기선이 없는 선로) 저상 트램인 ‘부산 오륙도선’을 착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트램이 될 ‘부산 오륙도선’은 2022년부터 운행에 들어간다. 세계 최초로 전 구간 100% 무가선으로 운행한다.
지난 1월 국토부 공모를 통해 선정된 ‘부산 오륙도선’은 전체 5.2㎞ 길이다. 이중 부산 남구 도시철도 경성대ㆍ부경대역에서 이기대를 연결하는 1.9㎞ 구간이 시범 구간으로 먼저 만들어진다. 도심에서 10분 정도면 축구장 270개 정도의 크기(193만㎡)의 이기대 공원에 갈 수 있다. 부산 남구 측은 “친환경인 트램 도입으로 공원 접근 과정에 미세먼지를 줄이고, 인근의 교통문제도 풀면서 자연스레 도시재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이기대 일원에서 열린 제36회 오륙도사랑 걷기축제에서는 참가자 전원에게 트램 모형의 간식도시락이 제공되기도 했다.
박재범 남구청장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동시에 아픈 역사를 생각하면서 찾는 사람들의 감성을 치유하고 재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공간이 바로 이곳 이기대”라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심재생 교통의 상징인 트램을 타고 와 치유와 재생을 만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꾸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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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권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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