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운타운에서 한국의 전통주가 익어가고 있다. 칼스테이트 롱비치 박선욱 교수의 연구소 겸 작업실이 바로 그 산실이다. 지난해 여기서 빚은 한국 전통주는 2,000여 리터, 술을 담그느라 쌀 1톤을 씻어 1,400 킬로그램의 고두밥을 지었다. 한국 전통주를 배우러 온 사람 200여명이 함께 빚었기 때문에 그 양이 엄청나다.
대학에서 브랜딩과 디자인을 가르치는 교수가 술 전문가가 된 것은 3년여 전 국제 술 학술대회를 준비 중이던 한국의 우리 술 문화원, ‘향음’의 의뢰가 계기가 됐다. 한국 술의 정체성을 확립해 세계시장 진출을 모색하던 ‘향음’이 미국의 브랜딩 마케팅 전문가인 박 교수에게 이 프로젝트를 의뢰한 것이다.
박 교수는 한국 술을 알기 위해 지역 특산 전통주를 빚는 전국의 크고 작은 도가 20여 곳을 찾아 다녔다. 이를 통해 학술대회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했지만, 술을 빚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옛날에는 김치 담그듯 집집마다 담가 먹던 게 술이었으니까. 집에서 내린 가양주는 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 맛이 다 달랐다. 한 집에서 내려도 내릴 때마다 조금씩 다른 맛이 났다.
양조가 신고제로 바뀐 건 일제시대 부터였다고 한다. “뭘 담가, 그냥 사 먹지”라는 양조정책은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술처럼 세수확보가 간명하고 확실한 품목이 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음식의 일부로 여겨지던 가양주는 밀주가 되어 버렸고, 지역 특산 전통주는 사라져 갔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지역 특산품으로 분류된 전통주는 일반 주류와는 달리 인터넷 판매가 가능할 정도로 장려되고 있다.
LA로 돌아온 박 교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미국에서 가양주를 빚어 보기로 했다. 우선 밀 보리 녹두 등을 재료로 ‘메이드 인 LA’ 누룩을 만들었다. 한국서는 닥나무, 연잎, 솔잎, 쑥 등이 누룩 밑에 까는 초재(풀재료)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야생 로즈마리나 유칼립투스, 세이지 등을 썼다. 좋은 누룩만 있으면 물과 밥을 섞은 후 열흘이면 가양주 탄생. 고두밥은 주로 텍사스나 태국산 찹쌀로 쪘다.
다운타운 도가는 지난 2017년 4월에 1번 주를 내린 후 지금까지 60번 주까지 내렸다. 한 병 내리는데 막걸리 4병이 든다는 청주도 빚었다. 갈수록 술맛은 순수해지고, 특이하게 캔털롭 향을 풍기는 가양주도 나와 호평을 받았다. “누룩의 녹두 때문이지 않을까 유추해 보지만 그 오묘한 발효 과정을 누가 알겠느냐”고 그는 말한다.
한국어는 공들인 것은 그냥 ‘만든다’고 하지 않는다. 단순히 객체로 여기지 않고, 함께 가는 존재로 격을 높인다. 염전의 소금은 ‘만든다’고 하지 않고 ‘소금이 온다’고 한다. 쌀은 ‘안치고’, 누룩은 ‘띄우고’, 술은 ‘빚는다’는 격이 있는 표현을 쓴다. “술과도 이런 소통이 있어야 좋은 술을 맞을 수 있으나 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다운타운 도가의 주인은 말한다.
지난 2018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 술 학술대회에서 박 교수는 세계시장에 내놓을 한국 전통주의 이름을 ‘술(Suul)’로 작명했다. “한국 술의 특징은 변화와 섞임, 호흡과 소통, 해학과 재치, 느슨함과 편안함”이라고 소개했다. 오는 11월에 한국 술의 학제적 고찰과 술 산업진흥방안을 주제로 고려대학에서 열리는 올해 술 학술대회에는 아예 조직위원장을 맡아 학술대회를 진행한다.
올 초에는 술에 관한 학술서적도 펴냈다. 고려대 출판문화원에서 나온 이 책은 박 교수와 우리 술 문화원 이화선 전 원장의 대담형식으로 한국 전통주의 이모저모와 한국 술의 브랜딩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책에 실린 주병(술병)의 컨셉 디자인들. 산학 협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칼스테이트 롱비치 디자인과 학생들이 한국의 주병 500여 종을 디자인해 이중 40여 점이 수록됐다.
한국 전통주에 매료된 박 교수는 다운타운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30여회에 걸쳐 그룹 웍샵을 갖고, 가양주 담그는 법을 전수했다. 외국인 수강생도 상당수였다. 캘리포니아 술 인스튜티트 (californiasuulinstitute.org)라는 학술단체도 등록한 그는 기회 닿는 대로 한국 전통주를 미국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한국 가양주가 한류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박선욱 도가’가 자리 잡은 LA 다운타운의 브루어리는 전에는 맥주공장이 있던 곳. 지금은 300여 아티스트들이 모여 사는 로프트형 주거지이자 공방으로 변모했다. 미국의 양조장 터에서 한국 전통주가 익어가는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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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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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3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술에 관해서는 연인들끼리 하물며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술마시는걸 이상하게 안보는데 마리화나를 피면 질겁을 하며 세상 말조라는등 한탄을 한다. 왜 일까? 어렸을때부터 머리속에 박힌 주입관념?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세뇌교육이란게 정말 무서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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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술은 못 안 마시지만 미국에서 한국 전통 술 을 만든다니 내가 어렷을때 어머님께서 술 빚든게 생각이 나며 아주 큰 박수를 보냅니다, 양주도 그들의 전통이 있지만 영양면에서 탁주만 하겠습니까 라는 내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