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토요일(5일)이면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8주기가 된다. 지난 2011년 타계했을 당시 잡스는 56세, 한창 일할 나이였다.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겠으나 그가 지금도 살아 있었다면 어떤 변혁을 불러일으키고, 또 어떤 첨단기기들이 더 쏟아져 나왔을 것인가.
디즈니의 CEO 밥 아이거는 지난달 애플 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잡스가 있었다면 애플과 디즈니의 합병이 시도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규모 1조2,000억 달러, 최대 IT기업과 콘텐츠 왕국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삭발한 야당대표가 무선 헤드셋에 면바지, 걷어붙인 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나와 경제정책을 발표했다. ‘어설픈 잡스 따라 하기’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모처럼 가족들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아이들은 휴대폰에만 파묻혀 있는 건 종종 볼 수 있는 광경. 밥값을 내는 가장은 “스티브 잡스가 이런 걸 만들어서-“라며 한탄한다.
사후 8주기가 됐지만 잡스는 여전히 현재형이다. 그의 이름은 여기저기서 보통명사처럼 튀어 나온다. 하지만 잡스를 이야기하면서 본질보다 그의 포스나 에피소드, 곁가지만 말하는 일은 흔하다.
우선 잡스 때문에 가족 간의 대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스마트 폰은 잡스가 처음 만든 게 아니다. 지난 1992년 IBM에서 처음 개발됐다. 첫 스마트 폰인 IBM 사이몬은 터치 스트린에 이메일과 팩스, 노트와 캘린더 기능이 탑재됐고, 앱도 사용할 수 있었다. 스마트 폰은 삼성이 잡스보다 6년 먼저 만들었다.
2007년에 처음 나온 아이폰은 애플 패밀리에서는 그 직전에 출시된 아이팟을 딛고 나왔다. 컴퓨터로 음악을 다운받고 CD로 굽는 게 유행이던 그 시절, 아이팟 전에 나온 애플의 컴퓨터 아이맥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아차” 했던 잡스는 이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뛰어 넘기로 하고, 주머니 속의 음악창고인 아이팟을 개발했다.
그런데, 휴대전화 회사들이 음악재생 기능이 있는 전화기를 만든다면? 아이팟은 설 자리가 없었다. 아이폰은 애플 집안에서 이런 출생의 배경을 갖고 있다.
241개의 특허에 이름이 올라 있는 잡스에게 최고의 발명품은 ‘애플’이었다. 특정제품이 아니었다. 지난 1976년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한 잡스는 생전에 이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으로 키워냈다. 혁신적인 기업인 잡스를 벤치마킹하려는 사람은 많으나 그가 추구했던 완벽함보다는 완벽주의의 부산물인 괴팍함 등 기행이 더 주목을 받는다.
스티브 잡스의 핵심 경영원칙은 선택과 집중, 단순화, 마케팅보다 제품 우선 등이 꼽힌다.
그가 영입했던 펩시 사장 출신의 잔 스컬리에 의해 쫓겨났다가 12년 만에 애플로 복귀한 잡스가 집중과 선택으로 애플을 되살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당시 애플이 생산하던 수십가지 제품을 전면 재검토한 그는 단 4종류의 컴퓨터로 승부를 걸었다.
디자인 책임자 조니 아이브와 함께 추구했던 단순화에 대한 집착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잡스가 추구했던 단순함은 전체적인 파악과 복잡함의 극복이 이뤄지지 않으면 가닿을 수 없는 단순함이었다.
잡스는 판매와 영업을 앞세우지 않도록 했다. 영업전문가인 스컬리가 양질의 제품보다 영업을 앞세워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바람에 애플의 기업문화가 바뀌고 회사가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고 봤다.
잡스는 한동안 CEO 투 잡을 뛰었다. 1997년 애플 CEO로 복귀한 뒤 낮에는 애플, 퇴근 후에는 픽사 CEO로 뛰었다. ‘토이 스토리’를 제작한 픽사는 잡스가 500만 달러에 사서 74억 달러짜리로 키워 디즈니에 판 회사. 이런 무리를 몸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일까. 잡스는 48살에 치명적인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무리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잡스는 자서전이 없다. 대신 타임지 편집장을 지낸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가 그의 공식전기로 통한다. 40회가 넘는 잡스와의 인터뷰와 적과 친구 등 100명이 넘는 주변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내놓은 이 책은 잡스의 전 생애를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은 당시 IT 업계 거물들 간의 개인적인 교유와 무수한 합종연횡 소식도 덤으로 전한다.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IT 세계는 수시로 무림의 고수가 출현하는 무협지처럼 흥미진진 하다. 당시 세계경제에 파장을 일으켰던 뉴스의 뒷이야기들을 손에 잡힐 듯 펼쳐 보인다. 아이작슨의 절제된 문체 때문에 감동을 더하는 이 책은 잡스가 만들었던 애플 제품들과 닮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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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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