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긴 미국인 학생이 칠판에 문장을 쓴다.
“시간이 없는데 싸워라도 해야지.”
학생들이 소리 내어 문장을 함께 읽는다. 열 명의 학생들을 보며 내가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서 어색한 부분 있나요?”
“싸워!” 왼쪽에 앉아있던 중국인 학생이 대답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맞게 쓸 수 있을까요?” “‘샤워’요!” “맞아요, ‘싸워’는 fight(싸우다)한다는 뜻이에요.” 우스꽝스럽게 주먹을 지르며 싸우는 몸짓을 해본다. “Shower는 ‘샤워’라고 써요.” 칠판에 ‘샤워’를 커다랗게 적어주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이번 학기부터는 한국어 수업을 맡게 되었다. 한국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본 적은 있지만, 미국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맡게 된 건 처음이다. 뜨내기 선생님을 믿고 따라와 주는 똘망똘망한 눈빛들을 훑어본다. 매일 보람차게 가르치고 있지만, 뜨내기 선생님으로서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크게 두 가지 있다.
첫째로 교과서에 나와 있는 한국 문화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게 된다. 지금까지 생활 문화와 자주 먹는 음식에 대해 다루었는데, 교과서에 나온 문화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며 느꼈던 문화에 차이가 있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는 명동 길거리 음식의 예로 알감자, 마약김밥, 떡볶이, 군만두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내가 명동 옆에서 회사를 다닐 때 봤던 건 키조개구이, 치즈가리비, 랍스터, 20cm 아이스크림, 용수염과자 등 한국인에게도 생소한 군것질거리였다. 나도 명동에 마지막으로 간 지 2년은 되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다른 최신 먹거리가 유행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교과서의 등장인물이 녹두빈대떡과 막걸리를 먹으러 광장시장에 가자는 약속을 하는데, 나는 20대 초중반 나이의 한국 학생들이 광장시장까지 녹두빈대떡과 막걸리를 먹으러 가는 걸 본 적이 아직 없다. 요즘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올릴 만한 예쁜 카페와 맛집 탐방을 다니는 게 유행하는 문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좀 망설여졌다.
교과서에 나온 음식문화와 2019년 20대 한국인들의 음식문화 간 차이를 줄여보기 위해서, 일단 교과서에 나온 음식을 먼저 보여주고, 명동에서 길거리 음식을 사먹고 맛집 탐방을 가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었다. 명동에 가 본적 있는 학생들은 손을 들라고 해서 교과서 및 영상과 자신의 경험이 어떻게 다른지 짧게 이야기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이런 식으로 교과서와 실제 문화 간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문화는 계속 변하는 거니까.
두 번째로 어떻게 하면 외국인의 입장에서 문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할지 생각하게 된다. 영어를 가르칠 때는 영어문법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웠으므로 별 문제 없었지만,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한국어 문법을 외국어로서 배워본 적이 없고 모국어로서의 감만 있어서 종종 학생들이 질문해 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난감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
한국어 ‘~(으)며’를 공부할 때였다. 한 학생이 ‘~와/과’를 써야할 맥락에 모두 ‘~(으)며’를 써 온 적이 있었다. 분명히 이 둘은 다른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바로 생각이 나질 않았다. ‘~으(며)’는 동작이나 상태를 나열할 때 쓰고, ‘~와/과’는 좀더 일반적인 의미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고서도 맞게 설명한 건지 헷갈려 한참을 찾아봤다.
뜨내기 한국어 선생님은 오늘도 좌충우돌 중이다. 오늘도 똘망똘망한 학생들의 눈빛에 용기를 얻으며.
<
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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