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월, 8월. 그리고 9월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공식철회를 발표했다. 100만, 한 때는 200만 이상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홍콩 시위. 무더운 여름 석 달 내내 계속되어 왔던 이 시민 저항 운동은 그러면 이로써 잦아들고 말 것 인가.
‘범죄인 인도법안’- 그러니까 인권운동가, 종교인 등을 베이징의 공산당국이 제멋대로 송
환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이 법안 반대가 홍콩 시위의 시발점이었다. 당국이 그 법안 공식철회를 결국 발표한 것이다. 그러니….
기류는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분노했다. 분노는 확산되고 더 깊어졌다. 진정성이란 것은 찾을 수 없다. 뻔뻔하기만 한 당국. 거기다가 폭력에, 위협에, 속임수로만 일관하고 있는 베이징. 분노가 쌓이면서 홍콩 시민들의 행진은 결국 민주화 시위로 변모하면서 5대 요구사항 제시와 함께 이제는 ‘광복(光復) 홍콩’을 외치게 된 것이다.
이 시위기간 동안 홍콩 시민들이 새삼 절감한 것은 중국공산당 정권의 기만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적 속성이다. 그래서인가. 범죄인 인도법안 공식철회가 발표됐으나 ‘이는 속임수 일뿐, 최악의 사태는 머지않아…’가 현장의 분위기인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베이징은 6주를 관망하며 기다렸다. 홍콩 사태를 베이징은 3개월 동안 관망해왔다. ‘홍콩 구원’이란 명분을 쌓기 위해 사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는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년의 날을 데드라인으로 사태종식을 위해 모종의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예일 글로벌’의 진단이다.
한(漢)지상주의를 대대적으로 고취시키며 공산당 최우선원칙, 더 나가 시진핑 1인 독재체제 선전선동에 혈안이 돼있다. 그런 마당에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방치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또 이게 전례가 돼 자유화 요구가 중국본토로 확산되는 사태는 더욱 그렇다.
때문에 베이징은 홍콩사태 진압결정을 머지않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 진압방법은 어떤 형태가 될까. 하나는 정보전과 비밀 공작을 통한 시위세력 와해작전이다. 다른 하나는 톈안먼 식의 군 투입방식이다.
중국공산당은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적용해 온 지난 20여 년 동안의 홍콩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싱크 탱크를 동원해 홍콩을 중국본토 체제에 바로 흡수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예일 글로벌’은 밝혔다.
그 메시지가 그렇다. 홍콩사태의 예후는 장기적으로 볼 때 암담하기만 하다는 것으로 들린다.
관련해 새삼 또 다른 질문이 떠올려진다. 인구 14억의 거대 공산세력의 권부 베이징에 맞서 저항하고 있는 7백여만 홍콩 시민들,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는 것이다.
‘21세기 신 냉전의 발화점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파이낸셜 타임스의 진단이다. 경제적 관심사가 정치에 우선한다. 사고, 팔고, 쇼핑에만 열중했다. 그게 지난 한 세대의 흐름이었다. 그 흐름에서 벗어났다. 가치관이, 정치가 더 중요하다. 그 새 흐름의 전위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홍콩이란 지적과 함께 내린 진단이다.
그 연장에서 볼 때 홍콩 시위는 일종의 ‘문명의 충돌’로도 비쳐진다. 그리고 그 저항운동의 속내를 비집고 들여다보면 어른거리는 것은 ‘거대한 영적 전쟁’의 모습이다.
“‘God Bless Hong Kong’이란 문구가 든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Sing Hallelujah to the Lord‘ 등의 찬양을 부르며 평화 시위에 들어갔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형성하기 시작 했다. 주변의 수많은 비 기독교인들도 속속 동참하면서 거대한 인간 띠는 30여 마일에 이르렀다…” 2019년 8월 23일 홍콩 시위의 한 삽화다.
30년 전 1989년 8월23일 발트지역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지나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이르는 길을 따라 거대한 인간 띠가 만들어졌다. 손에 손을 잡은 사람들의 행렬은 600㎞가 넘었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도 200만 명이 넘었다.
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럼으로써 진압을 위해 투입된 소련의 탱크를 막아냈다. 결국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냈다. 그 ‘발트의 길’을 재현해 낸 것이다.
전체 인구의 12%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 기독교인들이 시위를 주도하다 시피하고 있다. 그게 홍콩 시민저항운동의 한 주요 측면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하나가 됐다. 교회들이 나서 시위자들을 돕는다.
뭐랄까. 30년 전 진압군에 쫓긴 학생시위대들을 몸으로 막아 준 무명의 수많은 베이징 시민들. 그 역할을 홍콩에서는 교회가 도맡았다고 할까.
“베이징을 당혹하게 하는 것은 종전의 방법으로는 홍콩주민들을 겁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외신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권력은 공포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독재 권력일수록 공포의 의존도는 더욱 높다. 그런데 권력이 뿜어내는 그 공포를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평화로운 행진에 나서는 홍콩 시위대의 모습에 망연자실, 진압경찰은 물론 공산 당국자들도 당황해 하고 있다는 거다.
“내일이라도 군부대가 투입돼 거리는 조용해 질 수 있다. 그렇다고 베이징이 승리한 것으로 보면 오산이다. 홍콩의 자유정신은 바이러스가 돼 혈관을 타고 전 중국대륙으로 번질 수 있다.”
스스로의 갈보리의 길을 각오하고 있는 홍콩의 시위자들. 그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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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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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나서면 실패한다. 문명 충돌이 되기 때문에.
홍콩 시민 들이여 모든 자유를 삶의 질 행복을 발전을 포기하지 말지어다....대한민국이여 남 북이 통일로 쭝국 릴본으로부터의 보복을 이기고 미국의 은근한 간섶으로부터 자유롭고 행복하게 잘 일본보다 중국보다 잘 살지어다...화이티~~~잉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