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 이보다 더 관심 갖는 일도 드물 정도로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행복에 큰 비중을 둔다. 대개는 원하는 것을 얻거나 이루고 싶은 것을 성취했을 때 행복하다. 문제는 그때의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더 높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몰입의 상태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이것이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주장이다. 몰입이란 좋아하는 활동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깊숙이 빠지는 것으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그는 몰입을, 어떤 일을 하는 동안 시간의 흐름과 공간과 자아마저 잊어버리게 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능력과 수행 작업의 수준에 따라 무기력, 지루함, 편안함, 걱정, 자신감, 불안, 각성, 몰입의 단계로 구분한다. 나는 어떤 단계에 머물고 있을까.
많은 현대인이 능력도 일의 수준도 낮은 무기력 상태에 있으면서 향상시킬 의욕마저 없다는 게 그의 걱정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볼지 혹은 남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는 않을지 두려워하는 사람이나,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진정한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성향이 있으면 사소한 것에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그 일이 자신의 바람과 얼마나 일치되는가를 따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무엇이든 작업 그 자체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몰입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몰입할 만한 활동을 찾으면 불필요한 생각이나 걱정을 덜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때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인가가 절실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썼다. 현실을 잠시 외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만한 게 없어 보였다. 일종의 심리적 도피수단이었을지 몰라도 그 시기에 고통을 잊고 지낼 수 있었던 건 글 쓰는 일에 전념하면서부터였다.
글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곤 했다. 내가 글을 안 썼더라면 그 힘든 시기를 어찌 견뎠을까 싶으리만치 나는 글의 힘에 기대었고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이 능력과 과제 수준의 균형을 말한다면, 내 경우는 상황이 절실할수록 몰입하기가 쉽다는 걸 경험한 셈이다.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줄만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글쓰기는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있었다. 나를 지탱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 독서와 글쓰기.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의미에서 영어로 ‘플로(flow)’라 표현하는 몰입을 체험한 기간이었다.
상황이 절실하여 몰입하게 된 경우는 그때뿐만이 아니었다. 직장생활하며 전산실 관리 책임을 맡았을 때였다. 전공과 관련도 없는데다가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나에게 맡겨진 일이었다. 수십 년 동안 수작업으로 하던 생활기록부와 성적처리를 처음 도입된 컴퓨터로 작업하던 시기였으니, 교사도 기계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전산을 전공한 교사들이 실무를 맡았다 해도 책임을 맡은 내가 기초도 모르는 채 관리할 수는 없는 일. 생각 끝에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젊은 수강생들과 함께하는 수업이 녹록할 리 없었다. 나이 들어 굳은 머리로 공부하려니 강의를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와서 복습하려면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학교 업무를 생각하면 마음만 급하지 실력은 제자리걸음이라는 불안감에 결국 계획을 바꿨다. 하루에 같은 수업을 연이어 두 번씩 듣기로 한 거였다. 첫 시간에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바로 다음 시간에 반복해서 들으니 어렵던 것들에 재미가 붙어서인지 차츰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은 의욕을 불렀고, 한 단계씩 올라가며 원하던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몰입에는 단계별로 분명한 목표가 필요하다. 목표를 이루고 못 이루고 보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때 정신을 집중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능력보다 약간 높게 설정한 목표가 집중력을 높일 수도 있었겠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한다는 절실함도 한 몫 했으리라.
세상 어떤 일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듯이 몰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또한 지나치면 독이 된다. 의미 있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목표를 정하여 몰입할 수 있다면, 인생을 좀 더 열정적으로 즐기며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라. 오늘도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몰입하며 행복을 느끼는가.
<
김영수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적성에 따라서 몰입 대상이 다를수 있습니다. 글쓰는것, 악기 다루는것, 탁구치는것 등등... 저는 아직도 그 몰입대상을 찾아서 헤메는 단계입니다만...
난 어쩐 일인지 국민 학교때부터 한번도 가난할 거라 생각을 한적이 없었든것같다, 지금도 사막에 내동댕이 쳐 있드라도 별 문제 없을거라 생각하며 지내고있다, 좀 느리드라도 주위를 살피고 절대로 포기없이 꾸준히 노력하는편이랄까, 난 가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말도 생긴것도 집안도 그리 나뿐환경이아닌데도 못살겠다고 엄살을 떠는걸보면 도저히 눈뜨고 봐주질못하겠드군요, 그리고 난 그들에게 나를보라 하고싶습니다 말도 환경도 문화도...도무지 어느하나 당신들보다 나은게 없는데도 지금 잘 지내고 있지않느냐고, 이또한 나의 긍정이고 자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