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명, 8살)가 줄리아 박 씨네 집에 온 것은 지난 3월이었다. 이혼한 어머니가 돌볼 수 없는 형편이 된 노아는 20대 형이 잠시 돌보다, 라티노 위탁가정을 거쳐 한인가정으로 오게 됐다.
위탁가정이 흔히 받는 질문은 “제 자식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아이까지- ” 라는 것이다. 줄리아 박 씨가 위탁양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인가정상담소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하면서였다. 이때 들은 학대받고, 방치된 아이들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10대 딸이 먼저 위탁가정을 찬성하고 나섰다. 남편도 거들었다. 아이들이 편히 쉬고, 마음껏 먹고, 학교에 가게 해주면 되는 것이니 너무 부담스럽고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위탁아동은 학교가 끝나도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들이다. 우선 가서 씻고, 먹고, 쉴 수 있는 곳만 되어준다면 … 전업주부인 그녀는 ‘위탁엄마’ 역을 해 보기로 했다.
위탁양육은 입양과는 다르다. 일정기간 돌보다 법원결정이 내려지면 원한다고 더 돌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원은 아이의 뜻과 형편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머물 가정을 결정한다. 위탁이 입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 위탁가정이 되려면 함께 살 다른 가족들의 동의가 필수다. 무엇보다 부부의 생각이 맞아야 한다.
노아가 집에 처음 왔을 때 우선 호칭에 대한 선택을 주었다. 아줌마, 선생님, 이모, 엄마 중에서 고르도록 했다. 노아는 이모를 택했다. 그런데 막상 이모라고 부르지를 않는 것이었다. 알고 봤더니 속으로는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아줌마가 싫어할 까봐 차선으로 ‘이모’를 택한 것이었다. 노아가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아저씨였던 남편은 자연히 아빠가 됐다.
노아는 어둡고, 상처가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 많이 밝아졌다. 엉망이던 피부도 깨끗해 졌다. 남한테 옮길 이야기는 아니지만 노아는 세세한 속 이야기를 모두 한다. 어려웠던 엄마와의 이야기까지.
순하고, 참 잘 먹는 노아가 눈치 보지 않고 양껏 먹을 수 있게 냉장고는 좀 넘칠 정도로 채워 놓는다. 위탁아동의 먹거리, 입는 것, 용돈 등은 카운티 아동보호국에서 지원된다. 방학 때 캠프도 두 곳 다녀왔다. 애프터스쿨을 보내고 있고, 집안에서 피아노 소리를 자주 듣게 되자 배우고 싶어 해 피아노 교습도 보낸다. 여기에 드는 돈은 가정상담소가 기부금이나 골프대회 등을 통해 조성한 기금에서 장학금으로 도와준다.
노아가 온 후에 불편한 점? 당연히 있다. 불쑥 나가서 외식도 하고, 주말에는 동반 외출도 잦던 이들 부부는 이런 자유를 누리기가 힘들게 됐다. 8살짜리 아이를 혼자 두고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딸이 곧 대학기숙사로 떠나게 되면 더 어려워질 것이다.
노아에게 많이 부족한 것은 남에 대한 배려와 감사이다. 아이가 혼자 살아남아야 했고, 스스로 보호막을 쳐야 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모자라는 점은 일러준다. 그러나 내 자식처럼 따끔하게 야단을 치지는 못한다. 혹 상처라도 받을까 염려돼서다.
다행인 것은 노아의 아버지가 노아를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노아 부모는 양육자격이 없다고 판단해서 사회에서 키우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아버지는 요즘 부지런히 전화하고 선물도 보내면서 아들과 친해지려 애쓰고 있다.
줄리아 박 씨는 삼촌과 조카 사이라는 14살과 한 살 난 중국아이 둘을 급하게 돌봐준 적이 있다. 힘들었다. 중국말만 들어봤을 아기는 울기만 하고, 14살 삼촌은 한인가정의 집밥을 먹지 못했다. 일주일 머무는 동안 한끼 빼고는 모두 외식 하거나 패스트푸드 투고를 해야 했다. 역으로 왜 한인 위탁가정이 필요한지 절감한 순간이었다.
한인가정상담소에 따르면 LA카운티의 위탁아동은 3만5,000여명. 한인아동은 100명 가까운 것으로 추산된다. 가정상담소가 한인 위탁가정 캠페인을 펴기 시작하면서 자격을 갖춘 한인 위탁가정은 60여 곳으로 늘어났다. 위탁아동 중에 12명은 입양으로 이어졌다.
위탁아동은 부모가 돌보지 못해 사회의 시스템이 돌보게 된 아이들이다. 18살이 넘어 이런 보호 장치마저 해제되면 마약중독이나 홈리스로 풀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부모 됨의 엄중함이 새삼 느껴진다. 부모가 키울 수 없게 된 이런 아이들을 위해 한인가정상담소는 9월7일부터 위탁가정 한국어 교육과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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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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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줄리아님의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입니다. 어느날 누군가의 삶에 훅-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놀랍고 부럽기도 합니다. 내가 아이의 삶으로 들어갈 때 아이도 내 삶으로 들어와서 어쩌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겠구나...라고 머리에서는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저런 용기를 배우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