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은 미국에서 19세기 초반 처음 등장했다. 1863년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을 하기 30~40년 전부터 북부에서는 노예제도가 상당히 폐지된 상태였다. 자유인이 된 흑인들에게 백인 목사나 정치인들은 ‘귀향’을 권했다고 한다.
조부나 아버지가 노예로 끌려오기 전 살았을 서부 아프리카 본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었는데,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너희’는 이 땅의 소속이 아니라는 것, 결코 ‘우리’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민자를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미국 본토박이를 자처하는 앵글로색슨 개신교도들은 1840년대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구교도들이 대거 밀려들자 위협을 느꼈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신대륙의 종교자유를 타파하려 한다는 음모론이 나돌면서 미국태생 개신교도들은 비밀결사대를 조직했다. 결사대에 관해 물으면 무조건 ‘모른다’고 말한다 해서 ‘모른다(Know-Nothing)‘ 당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들은 독일과 아일랜드에서 온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미국사회를 전복하려드는 위험한 존재라며 “돌아가라”고 협박했다. 1855년 미국당(American Party)으로 개명하고 몇 년 정당 활동도 했던 이들은 가톨릭, 외국인, 이민자 배척을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이후 시대의 변천에 따라 유태인, 중국인 등 아시안, 히스패닉, 무슬림으로 공격대상을 바꾸며 미국의 반이민 정서는 이어져 왔다. 이민의 나라, 미국은 역설적으로 반이민의 유구한 전통을 가진 나라이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수사는 유색인종과 이민자를 향한 미국의 도도한 인종차별사의 상징이다. 백인만이 진짜 미국인이라고 믿는 인종주의자들이 거리에서, 상점에서, 식당에서 툭하면 내뱉는 말인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그 말을 했다.
국경의 열악한 난민수용 실태 등 트럼프 행정부의 비인간적 반이민 정책을 맹비난한 민주당의 초선 ‘4인방’ 여성하원의원들을 향해 트럼프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험한 말을 했다. 유색인종인 이들은 모두 미국시민이다. 파장은 크고, 의미는 깊다.
지난 14일 새벽 5시 27분 트럼프가 ‘진보적 민주당 여성하원의원들’을 겨냥하며 조롱과 공격의 트윗을 날린 후 워싱턴은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워졌다. 여성의원들은 즉각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트럼프를 호되게 비판했으며, 민주당 다수 연방하원은 트럼프 발언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럴수록 트럼프는 기고만장해 “돌아가라” 발언의 강도를 높이고, 초지일관 트럼프에 대한 지지층의 인기는 높다. 17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2020 대선 첫 캠페인에 나선 트럼프를 향해 지지자들은 “돌려보내, 돌려보내”를 외치며 열렬히 화답했다.
그들의 의식에서 미국은 분명하게 둘로 갈라져 있다 - 백인과 유색인종. 트럼프는 지난 선거에서도 이번에도 ‘백인’을 선택했다. 소수계 표에 연연하지 않는다. 트럼프 진영 2020 대선 전략은 ‘백인의 나라, 미국’으로 맞춰질 것이다. 미국을 다시 하얗게, 그래서 다시 위대하게로 요약될 것이다.
21세기의 특징은 세계화이다. 상품, 서비스,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든다. 그 결과 심화된 것은 경제적 불평등. 가진 자들은 세계를 돌며 소득을 불리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갈수록 형편이 쪼그라든다.
인건비 싼 중국이나 동남아로 제조업이 대거 몰려나가면서 일자리 잃은 러스트 벨트의 백인들은 불안과 불만이 목까지 차올랐다. 근본적 문제는 소득갈등. 버니 샌더스 등 좌파는 소득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성토했다. 반면 트럼프는 분노하고 미워할 표적을 내세웠다. 잘 살던 우리가 왜 이렇게 됐나?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서. 범죄? 멕시칸들이 몰려와서. 테러? 이슬람 때문 등등.
트럼프는 국가 정체성을 들고 나왔다. 상대적 박탈감에 젖어 있던 저소득 저학력 백인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고 충동했다. ‘과거’는 소수계 눈치 볼 것 없이 백인이 주도하던 시절. 그들이 트럼프에게 열광하는 이유, 트럼프가 백인표에 올인하는 배경이다.
“우리가 세계를 리드하는 이유는 세계 모든 나라 구석구석으로부터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의 힘이다. … 우리가 행여 새로 오는 미국인들에게 문을 닫는다면 세계에서 우리가 갖는 리더십은 곧 잃게 되고 말 것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다른 민족들은 또 다른 곳에서 모여들어 미국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다 함께, 다양성으로 미국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20 대선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 듣지 않으려면.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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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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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종의 주류를 이룬 남가주에 살아 한번도 차별대우를 안받었으니 아랫댓글처럼 안이한 말이 나온다. 한번 트럼프를 맹종하는 알라바마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교외지역에있는 호프집에 들어가서 한시간만 당신에게 Go Back to your Country, *****! 란 말을 안들으면 나도 조용히있겠음.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이민자가 미국에 이득이되는 자인지 아닌지 조사해가며 차별안한다. 그저 생긴게 까만 머리/눈에 동양인이면 노랑 원숭이로 보일뿐. 이처럼 무식한 보수를 따르지말고 모든 인간평등을 믿는 백인 진보와 함께하길.
무차별적으로 이야기 한것이 아니다. 세금내지 현금으로 인하면서 각종 미국혜택을 받는 불법 이민자나 미국에 불만이 가득한 자들에게 돌아 가라고 한것이다. 일반 이민자를 겨냥 한것은 한번도 없었다. 911 테러가 테러리스트가 한것이 아니라고 하는 정치인을 비난 한것은 잘못이 아니다. 미국에서 살려면 미국을 위해야 한다. 이유는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무차별적인 인종차별을해야 인종차별이다. 정치인으로 뽑아준 미국을 위해 일하지 않고 본국이 걱정되면 본국으로 가서 정치 하는것이 어떤가 하는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다.
오랫만에 한국일보에서 재대로된 칼럼을 봅니다. 참 웃기는 일이죠. 생각없이 무조건 트럼프따르는 한인들은 마치 일본식민지 시절 친일파들이 외친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국은 백인들의 나라가 아니죠. 원본을 따지자면 백인들의 총칼에 희생된 원주민들의 땅인거죠. 공화당의 보수라는건 이런게 아니죠. 규제를 줄이고, 세금 줄이고, 경제는 자유 경제로 돌아가게 하고, 인종 차별은 민주공화 상관없이 배재 하는건데, 트럼프가 완전 망치고 있습니다.
Think of it as adopting children, screening and accepting tenants, getting accepted into college. You do NOT want to accept dumb bricks into college and you're certainly NOT going to accept a career criminials, mentally ill crazy lunatics into your apartments as tenants.
틀린말이 아니다.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meaning, follow the conventions of the area in which you are residing or visiting.하지만 못배우고 매너꽝에 무식한 이민자들이 질서 없이 지내 나라에서 살듯이 초를치고 다니니, 중이 절이 싫으면 다시 돌아가야한다. 트럼프가 한국이나 일본을 대놓고 씹는적은 아직은 못봤다.Another reason why he wants to selectively choose specific immigra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