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조상들의 드럼 비트부터 오늘날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인간의 정서와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저명한 민족 음악학자 브루노 네틀은 음악을 “소리를 매개로 느낌이나 정서 그리고 사상을 표현하는 예술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생 동안 나는 문학, 음악, 그리고 철학을 통해 나의 삶을 얻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음악은 철학적 사고를 키우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졸졸 흐르는 샘물소리, 갈대를 때리는 바람소리, 파도의 포말소리, 아련한 해조음 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원초적 생명을 느끼게 하지만 음악은 감각적 의사소통을 통해 철학적 영감을 느끼게 한다.
‘Highway 61’은 미네소타에서 루이지애나까지 미시시피강을 따라 이어지는 1,400마일 남·북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이다. 이 하이웨이는 미국의 심장인 동·서를 양분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미국의 대중 음악인 컨츄리·블루스·재즈가 바로 이 도로가 관통하는 내쉬빌·미시시피 델타·뉴 올리언스 도시들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Highway 61’ 출발지인 미네소타주 덜루스에서 출생한 밥 딜런은 고속도로 벨트에 있는 블루스·컨츄 리·포크·록앤롤 등 다양한 음악장르를 넘나들며 서정적인 운문을 통해 ‘문학적 팝송’(literary pop song)이란 새로운 창작을 선보이며, 최초의 싱어송 라이터로 64개의 앨범과 500개 이상의 곡을 직접 작사·작곡하여 노래한 전무후무한 창작력을 발휘한 이 시대에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뮤지션으로 새로운 장르의 포크락을 만들어 낸 미국 대중음악의 혁명가이다.
웅얼거리는 듯한 창법과 구르는 돌처럼 혀에 날개를 달아 노래를 부르는 자갈 음색의 노래 스타일(gravelly-voiced singing style)로 지배적인 팝송의 상업성과 대중성을 무시하고 그 시대의 유행과 관계없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표현하며 “세상아 떠들어라 나는 노래만 한다.” 를 선언하며 음색과 언어가 완전히 다른 품위있는 노래를 불렀다. 밥 딜런은 그 자신의 선택을 위해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대중과도, 그를 사랑하는 팬들과도, 심지어 그 자신의 음악적 출발인 포크송과도 결별하였다.
나는 잘 하는게 없다. 하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 지는 안다. 마이클 잭슨이 음악을 그림처럼 보게 했다면 밥 딜런은 음악을 책처럼 읽게 했다. 밥 딜런과 그의 음악을 사랑하건 말건 그는 나에게 특별하다. 고교 시절 처음으로 딜런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노래에 매료되었다. 거칠고 깔끔하지 않은 뻔뻔스런 목소리와 자갈구르는 목소리가 특히, 음색 자체가 나를 흥분시켰고 그의 독특한 향기가 나의 영혼에 달라 붙은 느낌을 받았다. 소리에서 위안을 찾은 청소년시절 나에게 그의 음악은 신의 출현과도 같았다.
딜런은 T. S 엘리엇처럼 표현하고 피카소처럼 목소리를 낸다. 초현실주의와 상징주의로 묘사된 그의 노랫말 대부분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웠지만 그의 감정을 차용하면서 무감각한 지각과 현실세상에 비로소 눈을 뜨게되었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물질세계 뒤에 숨어 거짓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비판하며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것을 노래에 넣어 매력적인 서정시와 멜로디를 통해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고 좋은 일이다. 진실이 아닌것을 말하는 것도 그것 역시 잘하는 일이고 좋은 일이다.” 그의 음악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머라이어 캐리는 나의 귀를 즐겁게 해 주었고 비틀스는 나에게 애들 사랑 놀음을 가르쳐 주었지만 밥 딜런은 나에게 영혼을 심어 주었다. 일상 속에서 매일 듣는 바흐·슈베르트·쇼팽 음악은 아름다움을 뿜어내며 나의 순수감성을 건드리지만 포크락의 창시자 밥 딜런의 하모니카와 기타 연주, 그리고 개성있는 독특한 음색은 나의 순수이성을 건드렸다. 그는 놀라운 문학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음악 창고는 성경을 위시하여 위대한 문호들의 사상과 철학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이 모든 과거의 언어들을 자기 시대 자신의 언어로 다시 뜨개질하며 음악세계와 문학세계를 하나로 엮었다.
그의 음악은 시대와 세대의 흐름을 떠안고 있으며 시대정신의 핵심 요소를 말하고 있다. 또한, 1941년 출생으로 노년기에 접어든 78세인데도 여전히 공연 투어를 하며 20-21세기 모더니즘의 가장 강렬한 분출의 역사를 쓰고 있다. 어둠속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다. 그의 음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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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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