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3분 거리라고 나오는데 10분이 지나도록 오질 않네. 나는 하염없이 스마트폰만 내려다본다. 리프트 (LYFT) 택시 이야기이다. 화면에 뜬 드라이버 인적사항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중동계 악센트의 그는 시스템이 문제가 있어 잘 작동이 안 된다며 미안하지만 다른 드라이버를 이용해 달라고 한다.
아니, 그새 더 선호하는 장거리 손님 정보가 떴나? 하며 다른 운전자 서치를 시작 하자니 곧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아직 새 운전자를 안 정했으면 자기가 다시 와도 되냐고. 물론이라고 하니 이내 검은색 포드 포커스를 몰고 2분 뒤 그가 도착했다. 이마에 난 두세 개의 주름살이 그의 나이를 50대 중반이라고 말해준다.
10분 거리의 목적지로 가는 동안,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운전자는 미안하지만 운전하면서 본사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날 내려주고 나서 하라고 하려다 이내 나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서로 도와야지 까탈스러우면 뭣에 쓸까. 수화기 밖 녹음된 기계적 메시지에 대고 ‘테크니컬 서비스!’를 반복해 외치는 그의 표정엔 피로감이 묻어나는데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전화는 연결이 안 되었다.
시스템이 잘 작동이 안 되면 스마트폰을 껐다 켜보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슬쩍 아는 체 해줬더니 그것도 벌써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300달러 주고 산 모토롤라 스마트폰은 정말 ‘싸구려 쓰레기!’라며 그는 부아를 낸다.
그는 힐끗 백미러로 나를 쳐다보며 어느 나라에서 언제 왔냐고 물어본다. 17년 전, 사우스 코리아. “오, 뷰티풀!”하는 그로부터 어딘지 모르게 한국 사람들을 진심으로 인정해 주는 느낌을 받으며 나도 감사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이름은 아미르로 수영장의 또 다른 굉장히 핸섬한 젊은 이란인 라이프 가드와도 같은데, 자기는 이란에서 23년 전에 이민 왔다고 한다. 우리 어릴 때, 그러니까 1970년대 말 무렵, 자꾸 조국이 못살 때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독자들은 식상하겠지만, 사우디나 이란 같은 중동의 석유부국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 부러움 그 자체였다.
열사의 사막기후에도 굴하지 않고 낮에는 에어컨 바람 속 숙소에서 자고, 기온이 내려간 저녁에 일어나 날밤을 새우며 열심히 건설공사를 진행해 그곳 지도층들에게 한국인들은 정말 독종이라는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덕이기도 했지만, 그 나라들은 우리나라 건설사들에게 정말 많은 일감을 안겨준 고마운 나라, 아주 잘사는 넘사벽의 나라였다.
1979년 회교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회교혁명으로 전복된 팔레비 국왕 재위 기간 중 이란제국은 한국에게는 정말 큰 돈줄이요, 대형 공사 발주국이었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싸이의 세계적인 히트곡 ‘강남 스타일’로 이제는 세계가 알아주게 된 한국의 부촌 강남의 제일가는 중심가를 테헤란 시장의 1977년 방한을 기념해 ‘테헤란로’로 명명했을까.
그에 관해서는 이곳의 이란인들도 잘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그들도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척 세운다. 한 국가의 은혜를 그렇게 오랫동안 제일 소중한 이름으로 기억해 주는 나라는 아마 거의 다른 사례가 없을 것이다.
나를 태운 아미르의 리프트 택시는 내 사무실에서 잘 가꿔진 가로수가 늘어선 로컬 길을 따라 매물 평균가격 1,200만 달러로 미국 주택 평균가격 전국 최고가를 자랑하는 우편번호 94027의 대지 1에이커 이상의 실리콘밸리 최고급 주택지 ‘애써튼’을 통과하고 있다.
1979년 팔레비 왕정 붕괴당시 이란을 빠져나온 왕족과 고위 관료들도 많이 살고 있다는 그 타운을 지나자 바로 히스패닉들의 서민 동네의 길거리 전경이 펼쳐지고, 이내 목적지인 오토 디테일링 샵에 도착했다. 180달러를 주기로 하고 아침에 맡긴 나의 오래된 머세이디는 하루 종일 내부 카펫 스팀 청소를 비롯, 빈틈없는 수준급의 세차를 마치고 완전히 새 차처럼 샤방샤방 변신해서는 날 기다리고 있다. 엊그제는 같은 동네의 미캐닉에서 워터파이프 누수로 엔진이 과열되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450달러를 쓰기도 했다.
인기 절정기에 당당히 해병대에 입대해 23세 때인 1969년엔 목숨을 걸고 월남전에까지 참전한 것으로 알려져 내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호남출신의 애국 가수 남진 형님이 부른 노래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귀로의 차안에 은은히 울려 퍼진다. 나는 나지막이 따라 불러본다.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그대여 나머지 설움은 나의 빈 잔에 채워 주~’ 10년 넘은 오랜 연식으로 나의 충실한 발 역할을 해주는 내차 머세이디… 이것 고치면 저것 고장 나고.. 잊을 만하면 돌아가며 여기저기 고장 나 1년 평균 수리비가 1,500달러 정도는 족히 들어가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이별을 고할 수도 없는 일.
나에게 인생이란? 오래된 머세이디를 묵묵히 고쳐 보듬어 가며 말없이 앞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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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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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독자의 애정으로 관심을 갖고 읽어 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늘 좋은글 잘읽고 있습니다. 실리콘 밸리에 아들이 살아서 더욱 반가운 느낌이네요. 수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