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동네사람들과 흑백 TV 앞에 모여앉아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순간을 지켜보던 생각이 난다. 사실 착륙 장면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날의 들뜨고 흥분된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게 1969년 7월20일이었고, 지금 지구촌은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하느라 떠들썩하다.
20세기 이후 수많은 우주탐사선이 발사됐지만 사람을 달에 착륙시킨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1972년 아폴로 17호를 마지막으로 달 탐사를 중단할 때까지 미 항공우주국(NASA)은 총 24명의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냈고 이중 12명이 달 표면을 걸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달 탐사 붐이 일고 있다. 미국에서만 나사의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필두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 버진 갤럭틱의 ‘스페이스 투’ 등이 2024년까지 유인 달 착륙이 목표인 프로젝트들이다. 일본은 2030년, 러시아는 2031년에 달에 사람을 보낼 계획이고, 중국과 인도 역시 달 탐사에 나섰으며, 한국도 2030년 안에 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50년 전과 달리 현재의 프로젝트들은 달 탐사보다는 더 넓은 우주탐험을 위한 전진기지 구축의 목적이 크다.
유인 우주선의 역사는 일천하지만 지난 수십년간 지구에서는 수많은 무인 탐사선이 우주에 진수되었다. 수성과 금성 탐사를 위한 마리너, 메신저, 베네라, 마젤란이 있었고, 화성 탐사를 위해 바이킹, 옵저버, 패스파인더, 오디세이, 오퍼추니티, 큐리오시티를 보냈으며, 목성과 토성 탐사에는 파이오니어, 율리시즈, 보이저, 카시니, 뉴호라이즌스가 발사되었다.
이 많은 우주탐사선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보이저(Voyager) 1호와 2호다. 이들은 거대 행성인 목성과 토성을 탐사하기 위해 쏘아올린 우주선으로, 2호가 먼저 1977년 8월20일 발사됐고, 바로 이어서 1호가 9월5일에 지구를 떠났다.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떠난 두 보이저는 목표였던 목성과 토성과 그 위성들은 물론이고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탐사했으며 1호는 2013년 9월에, 2호는 2018년 12월에 태양계를 벗어나 끝 모를 성간 우주로 떠나갔다.
지구에서 여태껏 발사된 물체들 중에서 가장 멀리까지 갔고 가장 오랫동안 탐사를 계속하고 있는 보이저 1, 2호는 지금도 시속 3만마일로 날아가면서 매일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41년전 보이저를 쏘아 올렸을 때 이렇게 오래도록 항해를 계속하고 정보를 보내올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70년대 테크놀러지로 제작된 우주선이다. 당시로선 첨단기술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낙후된 소프트웨어와 명령어를 조종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이 구닥다리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니 과학의 힘, 아니 인간의 힘이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보이저에 매혹된 이유는 그런 과학의 경이나 숫자적 기록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싣고 있는 ‘타임캡슐’ 때문이다. 금박을 입힌 직경 12인치의 레코드판, 지구와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록한 이 타임캡슐은 혹시라도 성간 항해 중 외계 문명인을 만날 경우를 위해 제작한 것이다. 골든 레코드에 수록된 내용물은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 박사팀이 선정한 것이다.
지구와 인류의 역사 및 다양한 풍경과 활동을 보여주는 115개의 아날로그 이미지와 지구의 소리(바람, 파도, 천둥, 새소리, 동물소리, 심장박동, 웃음소리, 엄마와 아이의 키스, 모르스 등등), 여러 문화권의 음악과 지구인들이 보내는 55개 언어의 인사(한국어 “안녕하세요” 포함)가 1시간30분 분량으로 편집되어 담겨있다.
클래식 음악으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과 평균율 클라비어 2권의 제1 프렐류드와 푸가를 비롯해 베토벤의 5번 교향곡과 현악사중주 13번, 모차르트의 ‘요술피리’에서 ‘밤의 여왕’ 아리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의 주요 부분들이 실려 있다. 또 척 베리와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노래들과 일본, 페루, 중국, 인도, 뉴기니, 그루지아, 자바, 세네갈, 멕시코 등지의 민속음악들도 수록했다.
이 레코드를 실제로 지적 외계인이 발견해 내용을 해독할 확률은 거의 전무하다고 한다. 단지 미지의 우주 이웃에게 지구인의 사랑을 전하려는 시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사는 보이저의 동력이 다하는 2030년 작동을 멈출 예정이고, 그후에도 보이저들은 같은 속도로 계속 항해하여 약 4만년 후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별에 닿을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풍화작용에 따른 침식이 거의 없는 우주 공간에서 보이저와 레코드판의 수명은 10억년이 넘는다. 그 영겁의 어느 한 순간, 광활한 우주의 어느 한 공간에서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보이저는 내게 가장 특별한 우주 생명체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