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서예전(Beyond Line: The Art of Korean Writing)은 오랜만에 한인들이 마음껏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전시다. 수준 높은 한국의 글씨예술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왕의 서예부터 노비의 한글문서까지 총망라하여 전시돼있는데 한 바퀴만 돌아보아도 얼마나 공들이고 정성을 쏟은 기획전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아시아 미술부의 스티븐 리틀 부장과 버지니아 문 큐레이터가 4년 동안 수없이 한국에 발품을 팔며 전국각지에서 모아온 작품들이다. 하나하나 내용도 훌륭하지만 레스닉 파빌리온의 널찍한 공간에 깔끔하고 품격있게 디스플레이 해놓은 것이 특히 보기 좋다. 해머빌딩 내 우중충한 한국중국미술실에 비하면 얼마나 시원하고 쾌적한지…
약 90점에 이르는 유물이 주제별, 연대순에 따라 8개 섹션(선사시대, 도구와 재료, 불교서예, 왕실서예, 양반서예, 한글의 등장, 추사 김정희, 근대초기, 현대서예)으로 나뉘어있는데,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크게 압도당한 작품이 있다. ‘광개토대왕비 탁본’이 그것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이 뛰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힌 광개토왕의 위업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때 배웠지만 실물 크기의 비석 탁본을 눈앞에 대하는 감격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높이가 6.35미터, 너비 1.35~2미터나 되는 탁본 4쪽이 전시장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며 걸려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왕을 지낸 200여명 가운데 ‘대왕’으로 불리는 이는 세종대왕과 광개토대왕 둘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만 광개토대왕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이 좀 이상했다. 전시를 보고 돌아와 공부를 좀 하게 된 계기다.
광개토왕(374~412)은 고구려의 제19대 임금이다. 17세에 왕위에 올라 39세로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끊임없이 인접 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한반도의 작은 나라를 동북방의 패권국으로 변모시킨 한국사 최강의 정복자로 꼽힌다.
그가 이끄는 고구려군은 거의 백전백승을 거두었다. 백제와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고, 왜와 백제 동맹군이 신라를 공격했을 때는 5만 대군을 파견하여 격퇴시킴으로써 신라의 조공을 받는 보호국이 되었다. 북으로는 거란을 정벌하여 소수림왕 시절에 잡혀갔던 1만여 백성을 되찾았고 숙신, 후연, 동부여를 하나씩 토벌하면서 동북 국경지대를 안정시켰다. 내치에도 힘쓴 그는 나라 곳곳에 많은 절을 짓고 성을 창건하여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하였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는 내용이 기념비에 새겨져있다.
광개토대왕비는 아들 장수왕(98세까지 장수)이 아버지의 업적을 찬양하고 강대국 고구려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414년에 세운 것이다. 3층 높이의 자연석 4면에 1,775개 글자가 정방형 예서체로 새겨져 있다. 그 가운데 150여 자는 판독이 어렵지만 한국 고대의 비문 중 그 내용이 거의 완전하게 전해지는 유일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훌륭한 비석을 많은 한국 사람이 본 적도 없고 잘 모르는 이유는 압록강 너머 중국의 지린성 지안시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425년간 고구려의 수도였으나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중국 땅이 되었고, 광개토왕의 존재 역시 역사에서 거의 잊히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은 압록강 가에 큰 비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오랫동안 금나라 황제의 비로 알려져 있었다.
이것이 고구려왕의 비라는 사실이 발견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비가 소재한 지역은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시조의 성지라는 이유로 350년 넘게 봉금됐다가 1876년 해제됐는데 그때 중국의 금석학자들이 들어가 광개토왕릉비문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를 만주의 일본군 밀정이 탁본해서 일본으로 반출했으며, 일본은 5년간 비밀연구를 통해 내용을 조작한 비문 해석을 1888년 발표했다. ‘임나일본부설’(왜가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또 조선 식민지 정책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본이 얼마나 비문을 훼손하고 조작했는가 하는 점은 아직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비석이 발견된 후 여러 학자와 기관들이 탁본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비면이 적잖이 훼손되었다. 1,600년 동안 자연마모된 것에 더하여 표면에 가득 낀 이끼 제거를 위해 불을 질렀고, 비면에 석회를 발라 본을 뜨는 등 훼손이 계속되자 중국 정부는 1982년 둘레에 비각을 설치하고 최근에는 유리로 비각을 둘렀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찾아봐야 할 우리의 유적이다.
오는 9월29일까지 계속되는 한국서예전에는 귀중한 국보급 유물들이 가득 전시돼있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해외 최초로 한국의 글자예술을 조명한 이 전시가 라크마를 10년 지원하는 ‘현대 프로젝트’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재벌들이 이런 일에 좀더 적극 나서준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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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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