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Atlas)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신이다. 제우스와 티탄과의 전쟁에서 티탄 편에서 섰다가 패하자 하늘을 짊어지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어깨로 천구를 떠받치고 있는 그 유명한 이미지 때문에 서구문화권에서 아틀라스는 세계지도를 뜻하는 명사로 사용되고 있고, 대서양(Atlantic Ocean)이 그 이름에서 유래했다.
오페라 ‘아틀라스’는 현대 작곡가 메리디스 몽크(Meredith Monk, 76)가 작곡한 독보적인 작품이다. 1991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초연한 이 오페라는 20세기초 모험으로 가득 찬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프랑스 여인 알렉산드라 데이빗 닐의 생애를 상징적, 환상적으로 묘사한 음악극이다. 그녀는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여행한 후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인도로 갔다가 중국, 네팔, 시킴을 거쳐 그때까지 외부인들에게 금단의 땅이었던 티벳을 1924년 비밀리에 방문한 선구자로서 훗날 불교에 관한 책을 다수 번역하고 저술했다.
그를 소재로 한 오페라 ‘아틀라스’는 그 여인의 삶보다 더 신비하고 독특해서 초연 이후 근 30년 동안 다시는 공연되지 못했다. 작곡가, 가수 겸 배우, 연출가, 안무가, 영화감독이었던 메리디스 몽크 자신이 직접 노래하고 춤추고 연출한 데다 악보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 오페라의 이정표로 평가받은 이 작품을 누구도 다시 무대에 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악보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18명의 출연자 모두가 대사가 거의 없이 목소리의 특이한 발성만으로 노래하는, 이제껏 세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오페라였기 때문이다. 음의 고저와 강약, 톤과 텍스처, 리듬과 비브라토만을 사용해 스토리를 이어가는 드라마였으니, 오늘날 사람이 내지 않는 소리, 기이하게 반복되는 포효와 단말마의 비명 같은 자연에서나 들을 수 있는 원시적인 소리가 3시간 동안 가슴을 울리는 독창적인 오페라였던 것이다.
이 특이한 오페라의 녹음을 UC 버클리의 한 학생이 듣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300년 동안 같은 형식을 답보해온 오페라의 현대화 가능성을 꿈꾸게 되는데, 그가 바로 21세기의 가장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천재 연출가로 각광받는 유발 샤론(Yuval Sharon, 39)이다. 실험오페라단체 ‘인더스트리’의 예술감독인 그는 2013년 유니언스테이션 기차역에서 펼친 ‘인비저블 시티즈’로 주목받기 시작, 2015년 오페라의 혁명을 일으킨 ‘합스카치’(Hopscotch)로 LA를 넘어 세계를 놀래켰다. ‘합스카치’는 관객이 극장에 앉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리무진을 계속 갈아타고 이동하면서 LA 다운타운의 건물들과 장소, 거리, 터널, 옥상, LA 강변 등지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연달아 감상하는 ‘움직이는 오페라’였다.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오페라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은 샤론은 곧바로 LA 필하모닉의 초대 ‘아티스트 콜래보레이터’로 영입됐고, 2017년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우’를 수상했으며, 2018년 콧대 높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에 ‘로엔그린’ 연출자로 초대됐다. 150년전 바그너가 창설한 바이로이트에서 미국인이 프로덕션 연출을 맡은 일은 그가 처음이었다. LA에서 공연되는 그의 작품을 리뷰하기 위해 뉴욕타임스, 월스트릿 저널, 심지어 유럽의 음악 비평가들까지 날아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유발 샤론이 LA 필의 3년 레지던시 초대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계획한 것이 젊은 시절부터 꿈꿔온 ‘아틀라스’의 재연이었다. 지난 3년 동안 기발하고 창의적인 공연을 매 시즌 3개씩 발표해 청중을 매료시켜온 그는 드디어 지난 11~14일 최후의 역작 ‘아틀라스’를 무대에 올렸다. 놀라운 일은 그가 몽크의 도움으로 악보를 만든 것으로, 이제는 누구나 공연할 수 있게 된 것을 음악계는 큰 업적이라고 치하하고 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과연 유발 샤론!”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객석 맨 앞의 좌석 4줄을 들어내 오케스트라 피트를 만들었고, 무대 전체가 꽉 차도록 반경 36피트의 초대형 구가 설치돼있었다. 디즈니홀 무대를 변형시켜 완전히 새로운 공연장으로 만든 것이다.
지구이기도 하고 태양이기도 하며 우주선과도 같은 이 아틀라스가 천천히 돌아가면서 비행기가 되고 기차도 되었다가 사막, 정글, 극지방, 도시, 디지털 세계를 지나 마침내 지구를 벗어나면서 관객들은 알렉산드라와 함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그것은 한 인간의 자아발견이고 영적모험이며 동시에 인류의 멈추지 않는 탐험이었다. 조명이 꺼졌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 것도 전 인류의 역사를 다 겪기라도 한 듯이 지구 전체에 대한 애정과 아픔,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류에 대한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대가 단순했던 메리디스 몽크의 ‘아틀라스’가 진화하여 시공간이 얽힌 4차원의 오페라가 되었다. 유발 샤론의 ‘아틀라스’는 현대 오페라의 또 하나의 이정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