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껍질째 빚는 레드와인에 비해, 쓴맛이 적고 도수도 낮아, 생선회와 찰떡궁합이지만 음식 없이 마셔도 무리 없어
▶ 섭씨 7~13도일때 화이트와인 최적의 맛
초여름부터 화이트와인을 먹기 좋다. 화이트와인은 레드와인에 비해 도수가 낮고, 쓴 맛은 덜하며, 상큼해 가볍게 즐기기에 적당하다.
상큼함이 강한 화이트와인은 해산물과 고전적인 짝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천국 같은 요즘이다. 무엇보다 날씨가 훌륭한 덕분으로, 미세먼지도 ‘보통’인데다가 기온이 높더라도 습도는 낮아 햇볕을 피하면 불쾌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람이 시원하다. 해질 무렵이면 온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람을 들이는데, 화이트와인 한 잔 생각이 절로 난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어도 빛이 사그라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이 화이트와인을 즐기기에는 적기이다. 무엇보다 요즘의 한국의 여름이라면 음주 자체가 불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부담 덜어주는 상큼한 화이트와인
왜 화이트와인인가.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와인에 대한 간략한 사실 및 정보를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①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포도로 담근 술이다. 포도를 수확해 으깨어 발효시킨 뒤 숙성을 거쳐 병에 담아 출시한다. ② 병에 담은 뒤에도 숙성되므로 소위 ‘빈티지’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당장 마시기보다 10년이상 세월을 거쳐야 제 맛이 나오는 와인도 많다. ③ 음식과 먹으면 더 맛있는데 일반적으로 ‘동물의 고기에는 레드와인, 해산물에는 화이트와인’이라는 대원칙에 맞추면 처참한 실패는 막을 수 있다. ④ 한 병에 750㎖이고 도수는 10% 초중반이니 양은 절반이고 도수는 두 배인 20도 안팎의 소주와 비교하면 주량 계산이 쉽다.
지면이 넘치도록, 백 가지쯤 늘어 놓을 수 있지만 모두 한 점으로 모인다. 레드와인보다 여러 모로 편하다는 점이다. 일단 마시기 편하다. 명칭은 ‘화이트’ 와인이지만 엄밀히 말해 하얀색을 띠지는 않는다. 대체로 레몬의 옅은 노란색에서 짚의 황금색 사이의 색을 내는데 주로 청포도로 빚지만 핵심은 껍질의 배제이므로 적포도를 쓰는 경우도 있다. 레드와인에 비해 발효 과정에서 관여하는 당의 양이 적으므로 도수가 11~13.5도를 넘지 않고 10도 이하인 것도 있다. 11.5~16도, 혹은 그 이상 올라가는 레드와인과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도수가 낮으면 한 모금, 한 잔이 덜 부담스러울뿐더러 당연하게도 덜 취한다.
한편 화이트와인은 맛도 레드와인보다 덜 부담스럽다. 차와 커피의 쓴맛을 책임지는 탄닌이라는 성분이 포도의 껍질에 많으니, 껍질째 빚는 레드와인에서 자기 표정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껍질을 벗겨내고 담근 화이트와인에는 탄닌이 적고 그만큼 짜임새가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지만 상큼하고 부담 없이 다가온다. 한편 레드와인은 병에 담기 전에 오크(Oakㆍ떡갈나무) 등의 나무 통에서 숙성시켜 특유의 향과 맛을 불어 넣고 탄닌 또한 강화하지만, 화이트와인은 대체로 맛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 스테인리스 통에서 숙성을 시킬뿐더러 숙성 기간도 짧다. 그래서 음식이 있으면 좋지만, 없이 술만 마셔도 부담이 적다.
또한 화이트와인은 여름의 부담을 덜어주는 상큼함을 맛과 향, 양쪽에서 모두 지니고 있다. 크게 나눠 두 범주 과일의 맛과 향을 지니는데 첫 번째는 대표라 할 수 있는 시트러스류, 특히 레몬의 맛과 향이다. 두 번째는 핵과, 즉 한가운데에 씨가 자리 잡고 있는 과일 가운데서도 복숭아 같은 여름 과일의 맛과 향이다. 레몬과 복숭아의 맛과 향을 띠니 여름에 먹기 좋을뿐더러, 무엇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생선회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 활어회, 즉 숙성을 거치지 않은 생선살의 단조로움을 덜어내주는 데 화이트와인만큼 잘 어울리는 주류가 없다. 한국의 회 세계에서는 대체로 한두 쪽, 장식용으로나 쓰이지만 사실 레몬은 즙의 신맛과 껍질의 향긋함 모두로 해산물의 고전적인 짝이다. 이런 맛과 향을 지닌 와인이니 회와 어울리지 않을 수가 없다.
참으로 사소한 것 같지만 화이트와인은 따기도 대체로 쉽다. 대체로 코르크보다 트위스트 캡, 즉 돌려 따는 금속 마개를 씌우니 와인 따개가 필요 없다. 무거운 어깨로 퇴근해서 한 잔 마시려는 와인에 목마른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힘은 물론 기술을 요구하는 코르크 마개는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순조롭게 따는데도 약간의 노력이 들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해 코르크 마개를 빼내다가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힘든 하루였는데 코르크 너마저!”라는, 인생 전체를 향한 배신 및 좌절감이 들 수도 있다.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으로 가볍게
화이트와인이 적어도 여름에는 레드보다 낫다면 어떻게 찾고 골라야 할까.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은 와인과 분류 기준이 존재하고 관심이 있어도 선뜻 시도해보기 어려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리저리 헤치고 보면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으니 두어 가지의 기준을 정하고 이를 따라 학원의 속성반처럼 요약 및 정리해 살펴보자. 첫 번째는 구입처 및 가격이다. 이것저것 살피고 따져보기 전에 판매처와 가격을 알아야 일단 들여다 보기라도 할 수 있다. 요즘이라면 아무래도 와인은 대형마트에서 사는 게 가장 좋다. 별도의 코너를 마련해 놓고 지역이나 품종 등으로 분류해 놓아 들여다 보기 좋고 가격대도 대부분 편하다.
와인 한 병에 얼마 정도의 가격대를 고려하는 게 좋을까. 아무래도 다다익선의 세계인지라 수백만~수천만원을 우습게 넘기는 것들도 많지만 여름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화이트와인이라면 일단 병당 2만원에서 최대 3만원으로 잡는다. 물론 만 원, 혹은 그 밑으로도 살 수 있지만 맛이 너무 없을 가능성이 높고 3만원을 넘기면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지지만 최소한의 이해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돈이 아깝다고 느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할인 폭이 큰 와인을 고르는 것도 요령이라면 요령인데 종종 할인 이전의 가격을 넉넉하게 잡아 안 사면 손해 볼 것처럼 분위기를 잡는 와인도 있으니 주의한다.
가격대를 정했다면 산지와 품종을 함께 고려한다. 한 가지만 생각해도 머리 복잡해질 것 같은데 굳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따져볼 이유가 있을까. 당연히 있다. 무엇보다 와인이 처음 발원 및 발달했던 구대륙(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과 신대륙(미국, 호주,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 등)이 조금 다른 기준으로 산지와 품종을 구분하며, 경우에 따라 접근법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샤도네이와 더불어 화이트와인의 대표 품종인 소비뇽 블랑을 예로 들어보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비뇽 블랑을 고르는 상황이라면 일단 뉴질랜드산이 가장 확실하고도 안전한 선택이다. 상큼한 신맛에 레몬과 갓 깎아낸 풀의 향기 등이 신선한 느낌을 주며 여름 및 생선회 등의 음식에 잘 어울린다.
뉴질랜드가 가장 대표적이지만 이외의 지역이라도 신대륙이라면 소비뇽 블랑은 쉽게 고를 수 있다. 디자인은 천차만별이더라도 병의 딱지에 ‘소비뇽 블랑’이라는 품종의 이름이 알아보기 쉽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원지인 구대륙으로 넘어오면 같은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와인이더라도 품종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네들만의 분류 체계가 있으니 품종 자체가 아닌, 품종을 재배하고 와인을 빚은 지역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다. 예를 들어 구대륙, 특히 프랑스에서 빚은 소비뇽 블랑을 마시고 싶다면 재배 지역인 상세르나 푸이 퓌메의 와인을 찾아야 한다.
그나마 이들 지역은 소비뇽 블랑 외의 다른 품종을 섞지 않고 만들지만 두 가지 이상의 품종을 섞을뿐더러 그 비율까지 조례를 바탕으로 규제한다. 지키지 않으면 지역의 이름을 딱지에 붙일 수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당연히 나름의 이유는 있다. 와인이 포도의 품종은 물론이거니와 지형, 기후, 토질, 재배 방식 등에 따라서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즉 개성을 가진다는 개념 때문이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테루아르’라 불리는 개념으로서 같은 지역의 바로 이웃한 밭에서 나온 같은 품종이라도 와인은 다 다르다는 개념이 테루아르의 핵심이다.
테루아르의 개념이 이렇다 보니 같은 품종이라도 구대륙과 신대륙 와인의 맛은 확연히 다르다.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은 가볍고 상큼하고 복잡하지 않지만 프랑스의 상세르나 푸이 퓌메 지방의 와인은 맛의 표정이 좀 더 다채롭거나 짜임새가 두드러지는 한편 상큼함은 다소 떨어진다. 한편 레드와인에 일반적인 오크 숙성을 통해 좀 더 진하고 복잡한 맛을 불어 넣는 경우도 있다. 각자의 개성이 있고 그에 맞는 자리가 있으니 우열을 가릴 대상은 아니지만, 이 모두를 감안해 처음 마신다면 신대륙의 품종 기준으로 분류된 화이트와인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는 게 바람직하다. 칠레,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 등에서 소비뇽 블랑 및 화이트와인의 대표 품종인 샤도네이를 쉽게 접할 수 있으니, 이들을 충분히 즐기고 나면 아주 자연스레 각 품종에 대응하는 구대륙의 국가나 지역에 대해 관심을 품게 된다. 그때 슬슬 발걸음을 옮겨도 충분하다.
먹고 싶은 와인을 골랐다면 잘 마셔야 나에게도 와인에게도 예의이다. 음식은 같이 먹지 않아도 괜찮지만 온도는 지켜줄 것을 권한다. 품종에 따라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화이트와인의 최적 온도는 섭씨 7~13도이다. 이보다 더 높으면 상큼함의 ‘각’이 살아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보다 더 낮으면 맛의 잠재력을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우주의 별만큼이나 많은 게 와인이라면 비상시에는 규칙을 깨더라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예를 들어 가격대가 너무 낮아 맛이 없을 가능성이 너무 높은 와인이라면 좀 차다 싶게 마시는 것도 좋다. 온도가 낮아지면서 불쾌한 잡맛이나 알코올 느낌을 억눌러 주기 때문이다.
한편 냉장고 아닌 상온에 놓인 와인을 사와서 바로 마시는 상황이라면 첫 잔만큼은 눈을 질끈 감고 얼음을 더해 온도를 빨리 낮춰 마시면서 나머지의 온도가 낮아지도록 기다리는 것도 요령이다. 편의점에서 돌얼음을 사다가 첫 잔에 넣고, 나머지는 통에 물과 담아 와인 전체의 온도를 낮추는데 쓰면 딱 좋다. 와인 순수주의자라면 불경스럽다며 펄쩍 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미지근한 와인을 마시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고 감히 믿는다. 마트와는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편의점에서도 와인을 취급하니까 겸사겸사 활용하면 좋다. 한밤에 야식집에서 회를 주문해 놓고 갑자기 화이트와인이 생각나는데 쟁여 놓은 게 없다면 편의점이 와인은 물론 얼음으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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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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