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이다. 베르디의 27개 오페라 중에서도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이 작품은 그러나 1853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참담하게 실패했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현대 오페라’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평범한 구시대의 멜로드라마일 뿐인 ‘라 트라비아타’는 초연 당시 충격적인 컨템포러리 오페라였다. 그때까지의 오페라는 대부분 신화와 전설, 고대 그리스로마의 영웅이나 사건들, 왕가의 역사물과 희곡을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작곡가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데다 주인공이 화류계 여성이라니, 당시의 오페라 팬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이었던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시도였던 ‘라 트라비아타’는 그로부터 약 30년 후 일어난 베리스모 오페라의 효시가 되었다. 베리스모는 볼품없는 현실, 특히 하층이나 서민의 생활을 소재로 한 사실주의 오페라로, 푸치니의 ‘라 보엠’과 비제의 ‘카르멘’이 대표적이다.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는 파리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실존인물 마리 뒤플레시스를 모델로 창조된 인물이다. 코르티잔(상류사회 남성들의 공인된 정부)이었던 뒤플레시스는 아름답고 우아하고 지적이며, 작가 예술가 정치가들이 모여드는 살롱에서 재치있게 대화를 이끌던 매력적인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23세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뒤플레시스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람 중에는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와 피아니스트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가 있는데, 그녀의 사후 뒤마 피스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유명한 ‘동백꽃 여인’이다. 이 작품은 희곡으로 각색되어 연극무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852년 파리에 갔던 베르디가 이 연극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오페라로 만든 것이 ‘라 트라비아타’다.(한국에서 ‘라 트라비아타’가 오랫동안 ‘춘희’란 제목으로 불린 이유는 원작 ‘동백꽃 여인’의 일본식 번안에 따른 것이다)
그때 베르디는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동거 중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을 음악가로 성공하도록 이끌어준 후원자의 딸과 결혼했으나 4년만에 아내와 두 아이를 모두 병으로 잃었다. 그리고 수년 후 만난 주세피나와 서로 깊이 사랑했지만 장인과의 관계 및 사회의 지탄이 두려워 결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베르디에게 ‘동백꽃 여인’은 ‘사회적 인습과 상황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두 연인의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왔고, 열정적으로 ‘라 트라비아타’를 써내려갔다고 전해진다. 훗날 베르디와 주세피나는 17년만에 결혼식을 올렸고 주세피나가 죽을 때까지 38년 동안 해로했다.
‘트라비아타’란 이탈리아어로 ‘버려진 여자’ 또는 ‘바른길을 벗어난 여자’라는 뜻이다. 베르디가 이 오페라에서 전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비극적인 사랑만은 아니었다. 오페라를 통해 언제나 사회적 약자 편에 섰던 그는 여기서도 버려지는 여주인공의 운명과 아픔에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를 창조했다. 매춘부나 다를 바 없는 비올레타를 고귀한 품성을 지닌 여성으로 묘사했고, 아울러 당시 파리 사교계의 향락문화와 황금만능주의, 가족이기주의와 사회적 위선을 고발한 것이다. 그러니 룰루랄라 오페라를 즐기러 온 19세기 관객들에게는 큰 충격이고 거부감이 심했을 것이다.
예술사가 언제나 그랬듯 인습을 깨는 새로운 시도는 당대에 인정받기 어렵다. 지금 현재도 우리 시대의 작곡가들이 쓴 오페라는 거의 공연되지 않고 있고, 드물게 공연되어도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보기에 거북하고 이상한 작품이 얼마 후에는 ‘라 트라비아타’처럼 인기 오페라가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춘희’처럼 여러 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다양한 시대 배경으로 연출한 프로덕션이 계속 나올지도 모른다.
LA 오페라가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오는 22일까지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하고 있다. 이번 무대는 마르타 도밍고(플라시도 도밍고의 아내)가 연출한 1920년대의 화려한 아르데코 시대가 배경인 프로덕션이다. 여주인공 한 사람의 기량이 너무나 중요한 이 프리마 돈나 오페라에서 비올레타 역은 2017년 오페라 콩쿨 ‘오페랄리아’에서 우승한 신예 아델라 자하리아가 노래한다. 이 역은 소프라노가 리리코, 스핀토, 드라마티코, 콜로라투라 등 다채로운 창법과 음색을 모두 구사해야할 뿐만 아니라 화려한 창부이면서도 고귀한 품성을 지닌 비련의 여인을 실감나게 연기해야 한다. 전성기 때 ‘라 스칼라’에서 최고의 비올레타였던 마리아 칼라스가 슬럼프에서 재기하려 했을 때 재기작으로 ‘라 트라비아타’만을 고집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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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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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La Traviata. It opened a beautiful new world to me when I heard it first time when young. It was not accepted well when it came out in old European moral tradition, not because it was too modern music, I believe. Beauty in music and in morals is in different doma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