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나가면 계단이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상자를 두손으로 받혀드니 계단을 오를 때마다 손의 각도가 내려와 상자의 모서리가 허벅지에 와 닿는다. 상자와 더불어 계단을 들고 가는 듯 다리 끝이 무겁다. 상자 안에는 도안이 새겨진 색깔별 두터운 종이와 각양각색 팬과 색종이, 가위, 풀 등이 아이들의 숫자 만큼씩 담겨 있었다. 왁자지껄 아이들의 함성과 소음으로 가득한 쉬는 시간. 낯선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탐험가가 된 듯, 긴장과 호기심이 팽배해 질 무렵,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아이들은 자동 반사적으로 책상에 앉아 낯선 나를 본다. 아니 상자를 본다. 초등학교 축제를 한달여 앞두고 시작된 프로젝트에 발론티어 교사로 참여하게 된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 수업을 1지망부터 3지망까지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교실로 이동하여 자신만의 작품들을 만들었다. 목탄으로 자화상 그리기, 목공으로 물고기 모양 원목 꾸미기, 냅킨 아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 중의 하나인 ‘한각이 90도인 신기한 삼각형 만들기’. 그곳엔 ‘미술 속 수학 이야기- 에셔의 폭포와 펜로즈 삼각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수업이 모두 마감되어 할 수 없이 2지망과 3지망에 썼던 나의 수업에 참여한 아이도 있었다. 그런 아이는 눈빛으로 내게 이야기하곤 했다. ‘이걸 왜 만드나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나는 펜로즈 삼각형을 다 만든 후에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한 폭포를 보여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아이들은 맘에 드는 색의 종이를 고르고, 그곳에 인쇄된 도안을 자르고 붙여 펜로즈 삼각형을 만들어갔다. 2차원의 세계에서는 정삼각형이 한각의 크기가 60도이지만 3차원 공간에서 90도인 삼각형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아이들은 물었다. ‘이게 어떻게 삼각형이예요? 어떻게 보면 삼각형이 되요?” 나는 펜로즈 삼각형을 들고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펜로즈 삼각형의 끝을 들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는 입체에서 삼각형을 찾아내는 순간들.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이며 탄성이 들려왔다. “아! 정말 삼각형이 보여요!”
펜로즈 삼각형(Penrose triangle)은 1934년 스웨덴의 화가 오스카르가 처음 쓰기 시작했고, 이후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고안하였다고 한다. 네델란드의 초현실주의 화가 M.C 에셔의 1961년 석판화 작품인 폭포(Waterfall)는 로저의 펜로즈 삼각형에 바탕을 두고 작업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네델란드에 여행을 왔던 펜로즈가 에셔의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작품 전시를 보고 난 후, 3차원 공간에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2차원에서는 가능한 삼각형을 고안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펜로즈 삼각형이라고 한다. 예술가와 예술가 사이의 영적 교감을 넘어 판화가인 에셔와 수학자인 로저 펜로즈의 영적 교류는 서로가 서로의 작품과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펜로즈 삼각형을 다 만든 후 아이들에게 에셔의 폭포를 재현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에셔의 폭포는 외부로 부터 유입되는 물길이 없음에도 물레방아가 돌아가게끔 그려져 있고, 펜로즈 삼각형의 삼각 막대기 세개를 연결해 놓은 방식으로 폭포를 그렸다. 결국 에셔의 폭포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어긋나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그림 속에 재현에 놓았고, 그림 안에 펜로즈 삼각형을 담아내며 역설적인 상황을 판화 양식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반면 아이들에게 보여준 동영상은 에셔의 폭포를 시각적 차이를 극복한 원근법을 이용, 물길이 거꾸로 흐르는 듯 만들어 물레방아가 돌아가게끔 제작되었다. 아이들은 물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모습에 흥미로워하며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실제 높이로 낮아지는 물길이 실은 상승하는 물길로 시각적 착각을 일으켰던 것이다.
아이들이 만든 펜로즈 삼각형은 축제 날 학교 강당 입구 천장에 전시되었다. 투명한 낚시줄을 이용해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하늘거리는 입체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찾는다. 친구들에게 삼각형을 찾아보라고 주문한다. 보여지는 각도에 따라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존재하는 삼각형의 모습. 우리들의 삶도 누군가가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의 사물을 하나의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가 없다. 내가 모르는 수백가지를 외면한 채 내가 아는 한가지로 사람들을, 세상을 평가할 수 없듯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축제는 무르익어 가고 노을이 지기까지 천장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또 하나의 삼각형, 또 하나의 내가 흔들리고 있었다.
<SF 한문협 회원 김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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