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 대혼란. 파국적 상황…. 그 어느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없다. 그게 혼돈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오늘날 모습이다.
경제는 붕괴됐다. 연 1,0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물가상승률, 그 초(超) 인플레이션은 경제시스템을 파괴한다. 우고 차베스에서 니콜라스 마두로로 이어지는 독재자의 권력증대를 위해 국가제도는 해체되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 정치 질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무엇이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부국 베네수엘라를 이 상황으로 몰고 왔나. ‘좌파 포퓰리즘 독재체제다’- 정답으로 돼있다. 베네수엘라 사태가 제 2의 냉전시대를 맞아 자칫 대리전 양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다른 앵글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1959년 1월 23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쿠바 공산혁명에 성공한 피델 카스트로는 첫번째 공식적인 외국 나들이로 베네수엘라를 방문한다.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 로물로 베탕쿠르 역시 공산당 출신으로 혁명 전 카스트로의 게릴라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둘의 만남은 그러나 짧고 쌀쌀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각자 노선이 달라졌다. 그리고 베탕쿠르는 카스트로의 석유 무상지원 요청을 한마디로 거절한 것. 2년 후 쿠바와 베네수엘라 관계는 결국 단절된다.
“이 시점을 전후해 카스트로는 석유 강박증에 사로잡혔다.” 쿠바의 베네수엘라 민주체제 와해공작 역사를 다룬 ‘굴종의 나날들(Dias de Sumision)’의 저자 올란도 아벤다뇨가 그 책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그 만남 이후 카스트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산유국 베네수엘라를 지배하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이후 카스트로 지휘 하에 베네수엘라 민주체제 와해공작 장기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그 공작에 절대적 도움을 준 것은 베네수엘라의 강경 좌파세력이다. 그 수십 년의 집요한 공작 결과 베네수엘라는 오늘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쿠바를 상전으로 모시는 베네수엘라의 굴종, 그 프로세스는 차베스 집권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카스트로의 베네수엘라 지배 프로젝트는 3단계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굴종의 나날들’은 밝히고 있다. 폭동, 혹은 반란조장(Uprising)이 그 첫 단계. 두 번째는 침투(Infiltration), 굳히기 혹은 통합(Consolidation)이 세 번째 단계다.
6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 공산혁명을 수출하면서 카스트로는 베네수엘라의 최대 반정부 좌파 게릴라세력들과 연대를 꾀한다. 그 전위에 선 것이 베네수엘라의 민족해방전선. 그 Uprising전략은 그러나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자 카스트로는 전략을 수정한다. Infiltration 전략을 도입한 것. 쿠바혁명에 동정적인 인물들을 포섭해 군부 등 요소요소에 심어놓는다. 그들을 통해 보다 많은 세력을 규합해 훗날을 대비하는 것이다.
1992년 2월 4일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 그 주모자는 차베스 등 일찍이 쿠바가 군에 심어 놓았던 카스트로 숭배자들이다. 쿠데타는 군사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승리했다. 특히 사회주의 급진 좌파세력 입장으로서는.
경제는 날로 나빠지고 있다. 부패한 정권은 헛공약만 남발,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환멸감이 확산되면서 ‘군(軍)만이 구세주’라는 쿠데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 정황에서 쿠데타는 불발로 끝났지만 차베스는 영웅으로 부각된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쿠바는 3단계 전략(Consolidation)을 가동한다. 1994년 쿠바는 차베스를 아바나로 초청했다. 카스트로가 공항에까지 나가 영접할 정도로 환대를 했다. 그리고 근 5년 후 차베스는 선거를 통해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된다.
이후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진다. 문화교류, 사회교류 등의 이름 아래 아바나는 군부에서, 정보계, 경찰조직, 석유산업에 이르기까지 베네수엘라의 전 부문을, 하나둘 잠식해 들어간 것. 물론 카스트로 숭배자인 차베스. 그리고 그의 사후에는 마두로의 적극적 협조가 있었다. 그 도움의 하나가 쿠바에 대한 사실상의 석유 무상지원이다.
의료요원에서 스포츠코치에 이르기까지 베네수엘라에 파견된 쿠바요원은 최소 4만5,000여명에 이른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정보요원과 군 자문관들로 그 숫자는 1만5,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통령 경호에서 군부통제, 정보당국 심지어 석유산업까지 통제, ‘점령군’으로서 좌파 독재체제를 도우면서 베네수엘라를 사실상의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굴종의 나날들‘(Dias de Sumision)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다름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압도적으로 강한 나라가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휘둘릴 때 훨씬 작고 약한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고 또 소중히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체제도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해 한 가지가 문득 오버랩 되는 느낌이다. 날로 탈색돼가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것이다.
김정은 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탈북자들은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대통령 머리에는 온통 김정은밖에 없어 보인다. 그 대통령의 발언이 어느 틈에 ‘선언’형으로 바뀌었다. 소신에 투철한 혁명가를 닮았다고 할까. 그 사이 대한민국을 지탱해주는 권력기구들은 하나 둘 소리 없이 해체되고 있는….
‘굴종의 나날들(Dias de Sumision)’ - 결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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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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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1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Great Insight 에 감사합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장래에 대해서는 구도원도사에게 물어보자.
옥위원 논설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미 잘못된 체제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증명된 체제를 아직도 부등켜 안고 있는 쿠바와 베네수엘라,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김정은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전에는 북한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단지 고통당하는 자국민을 이용해서 원조받고 투자받고 그 정권만 더 지탱시켜 주는 멍청한 짓입니다.
"좌파 포퓰리즘..." 때문에 베네주엘라가 망한게 아니라 독재체제때문에 망한거죠. 좌파건 우파건 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그 나라의 리더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정해지는데 특히 독재체제에서는 한사람이 나라를 좌지우지할수있는 힘이있어 그 힘을 나쁘게쓰면 그 나라는 망하는겁니다. 민주주의는 리더의 힘을 어느정도 콘트롤하기때문에 좀 더 났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