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셰프이자 작가, 쇼 호스트인 앤서니 보댕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 그는 유년 시절 프랑스로 떠난 가족 여행에서 음식에 관심을 품기 시작해 대학에서 요리를 공부하고(2년 만에 중퇴했지만), 주방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프렌치 레스토랑 ‘레 알(Les Halle, 파리의 시장에서 이름을 따왔다)’의 주방장이었던 2000년, 레스토랑 주방의 험난한 세계를 그린 책 ‘키친 컨피덴셜’을 펴냈다. 특유의 입담이 빚어내는 생생한 주방의 풍경 덕분에 책은 미 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는 ‘셀러브리티 셰프’가 됐다. 이후 ‘쿡스 투어(2001)’, ‘노 리저베이션(2005~2012)’ 등의 후속 저서 및 텔레비전 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여행과 음식을 한데 아우르는 기행 프로그램을 일종의 장르로 정착시켰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베트남에서 포(쌀국수)를 먹는다거나 한국의 가정에서 식사하고 김치를 받아오는 일화 등 많은 이들이 텔레비전 속의 보댕의 모습을 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또 나만의 방식으로 그를 기억한다. 바로 ‘마늘맨’으로서 보댕이다. ‘키친 컨피덴셜’에서 그는 ‘마늘은 쓸 때마다 껍질을 벗겨 준비한다. 안 그러면 요리할 자격이 없다’며 식재료로서 마늘의 중요성과 요리에 임하는 태도 등을 강조했다. 그의 부고를 듣자마자 마늘에 대한 엄한 가르침이 바로 떠올랐다. 언제나 마늘은 그때그때 껍질을 벗겨 준비해 쓰라고 그는 말했지.
세계 마늘 소비 1위 한국
하필 마늘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식재료 말이다. 수치도 뒷받침해준다. 2004년 자료지만 한국의 1인당 연간 마늘 소비량은 7.72㎏이다. 중국이 2위지만 고작(?) 4.14㎏이고 3위부터는 1㎏도 채 안 되는 미미한 양을 먹는다. 괜히 마늘 강국 대한민국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압도적인 현실에서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을까. 있다면 오히려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달리며 마늘을 부지런히 먹는데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고민을 내려 놓지 못하다가 마늘 강국의 진한 마늘 사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무슨 말인가. 우리가 쏟는 사랑만큼이나 마늘의 맛은 진하다. 맛이 진해서 사랑을 받는 것인지 먹다 보니 맛처럼 사랑도 진해진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강렬한 맛과 향의 생마늘 말이다. 마늘 강국으로서 한국의 입지는 대체로 생마늘이 일구고 또 유지한다. 일단 맛을 보태는 양념의 차원에서 마늘은 거의 100% 생으로 쓰인다. 빠지면 음식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김치가 있고, 나물 등에도 열을 가하지 않은 채로 다져서 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즉 반찬의 차원에서 마늘을 먹는 경우에도 강력한 생마늘을 그대로 먹는다. 나름의 일리도 있다.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강력한 아린 맛이 고기의 느끼함 쯤은 가볍게 압도해 버린다. 생마늘을 익혀 먹는다고 해봐야 촛물에 담가 매운맛을 살짝 빼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익힌 마늘은 어떤가. 입지가 확고하다고 할 수 있는 몇몇 맥락이 있지만 무엇보다 잘 익히기 어려운 환경의 제약이 아쉽다. 생마늘만큼이나 고기 직화구이에서 사랑 받는 구운 마늘은 고기도 오래 못 버티는 1000℃의 숯불에서 불판에 낼름 달라붙거나 가장자리가 기다릴 새도 주지 않고 홀랑 타버린다. 물론 괜히 마늘 강국이 아니므로 예외는 있다. 공기에 기름과 함께 담아 불판에서 삶듯 익히는 방식인데, 공교롭게도 프랑스식 조리법인 ‘콩피(confit)’와 흡사하다. 한편 인삼처럼 이름에는 지분을 내밀지 못하지만 빠지면 섭섭한 삼계탕(혹은 닭백숙)의 마늘도 있다. 다만 직화구이와는 반대로 너무 익어 숟가락을 쓰지 않으면 건져 먹기 힘들 정도로 푹 익어 버린다. 곤죽이 되어 버렸지만 그나마 익은 마늘 특유의 단맛이 살짝 감돌아 위안을 준다. 그렇지만 두 경우 모두 마늘이 최적의 상태로 익었다고 볼 수 없을뿐더러 너무 뜨거워 편하게 먹기가 어렵다.
살펴보니 그림이 뚜렷해진다. 한국이 비록 마늘 강국이지만 생마늘에만 엄청나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익힌 마늘의 세계는 뭔가 조금 아쉽다. 그래서 오늘은 강국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다지기 위해 익힌 마늘 잘 먹는 법을 살펴보자. 보댕의 유지를 받들자면 마늘의 정도를 걸어야 한다. 통으로 사서 쓸 때마다 껍질을 벗겨 썰든 다지든 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존기간이 짧은 식재료도 아니니 통으로 사다가 그늘진 곳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한두 쪽씩 쓰면… 참 좋겠지만 난관이 있다. 김치를 담그는 등, 생마늘을 대량으로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제 아무리 강한 마늘이라도 엄청나게 많이 쓰기가 어렵다. 결국 쓰일 차례를 기다리다가 아까운 마늘이 말라 비틀어져 버린다.
그렇다고 정말 편한 길을 걷자니 마늘 강국 국민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 미리 다져 놓거나, 한 술 더 떠 냉동까지 해 놓은 마늘 말이다. 다지는 순간 세포벽이 파괴되면서 마늘의 매력을 품은 향 화합물은 곧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이후의 마늘에는 가장 독한 맛과 향만 남는다. 마늘을 쓴다고 썼는데 아리고 매운맛만 잔뜩 난다면 미리 좋은 화합물을 날려 보낸 우리의 책임이다. 따라서 재료의 위상을 헤아릴 때 정도를 걸어야 마땅하나 그야말로 먹고 살기 바쁜 현실에서 향 정도는 그럭저럭 지킬 수 있는 타협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깐마늘이다. 껍질은 벗겨 놓았으니 일정 수준의 향 손실은 감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진 것처럼 세포벽이 파괴된 것은 아니므로 아리고 매운맛만 감당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 말하자면 정도와 편한 길의 중심에서 전자 쪽으로 훨씬 더 많이 기운 타협안이다.
깐마늘은 집 앞 마트부터 백화점 식품코너까지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데, 자체의 맛도 중요하지만 표면의 상태가 결국 품질이다. 까는 과정에서 표면에 상처가 난 것은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사온 뒤에는 과채 세척제로 씻어 물기를 말려 밀폐용기에 담아 둔다. 냄새가 배는 것을 감안한다면 플라스틱보다 유리가 아무래도 낫다.
익힌 마늘 다양하게 활용하려면
이제 본격적으로 익힌 마늘의 세계를 살펴보자. 일단 마늘을 간다. 이름처럼 깐마늘이니 꼭지부터 그냥 갈아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지만 아무래도 뾰족한 부분부터 강판에 갈다 보면 처음 3분의 1까지는 미끄러지기가 쉽다. 따라서 너무 귀찮아서 도저히 못하겠다 싶은 상태가 아니라면 마늘을 쓸 만큼만 덜어 뿌리 쪽을 썰어준다. 잘린 면이 평평하므로 갈기가 사뭇 수월해진다. 간 마늘은 공기에 한데 모아 담고 논스틱팬에 바닥을 완전히 덮을 정도로 기름을 둘러 약한 불에 올린다. 결과물의 어우러지는 맛은 올리브기름이 훨씬 낫지만 식용유도 괜찮다. 그리고 차가운 팬에 간 마늘을 바로 올린다.
거의 모든 식재료가 기름에 지지거나 볶을 때 예열을 거쳐야 하지만 마늘은 예외이다. 워낙 타기도 쉽고, 타면 쓴맛이 강해지는 한편 이에 달라붙을 정도로 끈적일 수 있다. 이런 식재료를 곱게 다지기까지 했으니 평소처럼 기름 두른 팬을 예열한다면 마늘을 더하자마자 탈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차가운 기름에 더해 함께, 천천히 온도를 올려준다. 약불보다도 더 약하게, 꺼지기 직전까지 약한 불길이어야 한다. 그렇게 약한 불이더라도 곧 마늘이 지글거리며 익기 시작하면 스패출라 등으로 팬에 최대한 고르게 펴주면서 상태를 확인하다가 마늘이 반투명해지면 불에서 내려 기름과 함께 공기에 담는다.
익힌 마늘의 준비는 이것으로 끝이다. 이제 강국의 기상을 활짝 펼쳐보자. 시작은 역시 한식이다. 요즘 한창인 봄나물을 무칠 때 양념장의 바탕으로 기름에 천천히 익힌 마늘이 제격이다. 익으며 살아난 단맛이 생마늘처럼 나물을 윽박지르지 않으며 감싸준다. 익힌 마늘에 간장만 섞으면 충분하고, 입맛에 따라 후추, 식초, 참기름 등을 더해도 좋다. 데쳐 물기를 걷어낸 나물에 그대로 버무리면 정말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인 ‘밥도둑’이 되어 버린다. 한편 그대로 식초의 비율을 적절히 잡아주면 비니그렛(원래 기름과 산, 즉 식초의 비율이 1:2~3이다)이 되니 샐러드 드레싱으로도 쓸 수 있다.
한편 마늘을 기름에 볶은 그대로 기본 중의 기본 파스타인 알리오올리오도 만들 수 있다. 마늘 옆에서 면을 삶아 물기만 빼고 그대로 팬에 더해 마늘과 기름을 살짝 기분으로 가볍게 버무려 준다. ‘치즈의 왕’인 파르지미아노 레지아노나 그 대용으로 적합한 그라나 파다노 등을 솔솔 뿌려주면 끝이다. 혹시 파스타만으로는 아쉬워 마늘빵이라도 곁들이고 싶다면 볶은 마늘로 ‘버터’편에서 다룬 적 있는 맛버터(compound butter)를 만든다. 상온에 두어 적당히 부드러워진 버터에 볶은 마늘을 더해 잘 섞는다. 수평으로 반 가른 바게트나 치아바타에 골고루 펴 발라 오븐이나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마늘빵을 만들고도 맛버터가 남았다면 플라스틱 랩으로 옮겨 모양을 잡아 냉장실에서 다시 굳힌 뒤 구운 스테이크 위에 얹어 쇠고기에도 마늘의 은총을 하사한다.
마늘을 기름에 볶기는 했으나 나물도 샐러드도 파스타도 마늘빵도 먹고 싶지 않다면? 빵을 찍어 먹으면 된다. 종종 빵과 더불어 올리브기름을 내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원리는 같지만 익힌 마늘의 맛과 향을 한 켜씩 더했으니 느낌이 새롭다. 치아바타나 바게트같은, 설탕과 지방을 쓰지 않은 빵들과 잘 어울리는데, 둘 다 없다면 ’밀가루’편(본보 4월6일자)에서 소개했던, 오븐 없이도 구울 수 있는 무반죽 납작빵이 아주 잘 어울린다. 기름에 천천히 볶은 마늘 한 가지 만으로 여러 갈래에 걸쳐 마늘 강국의 입지를 새삼 굳혔다. 이렇게 앞으로도 마늘 강국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다져 나가자. 이 일천한 음식평론가도 평생의 과업으로 삼겠다.
생마늘 잔뜩 쓰고 싶다면 피클로 만들어 보세요생마늘을 좀 더 적극적으로 쓰고 싶은데 김치는 안 담근다면 오이 피클이 마늘 소비 갈증을 충분히 해소해줄 수 있다. 한국만큼 많이 쓰지 않는 서양권에서조차 발효 피클 레시피에는 마늘의 수량을 특정하지 않고 ‘엄청 많이 넣는다’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많으니 부담 없이 양껏 쓰자. 통마늘을 그대로 넣어도 좋고, 일말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면 도마에 올려 놓고 눕힌 칼날로 눌러 으깨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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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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