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LA 다운타운 지퍼홀에서 열린 실내악앙상블 ‘카메라타 퍼시피카’의 연주회에서 베토벤 현악 3중주(1번) 1악장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객석에서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런 반응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 지점이어서 좀 놀랐고, 연주자들도 잠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문제에 언제나 민감한 음악감독 애드리안 스펜스가 얼마 후 무대로 올라와 이야기를 꺼냈다. “악장 사이에 박수 치는 일은 옛날에는 당연했던 일이다. 따라서 여기에 절대불변의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제발 한곡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박수치지 말아달라는 우회적인 부탁이었다.
클래식 음악회에서는 박수치는 문제가 은근히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박수 타이밍을 잘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신경 쓰이고, 아는 사람은 엄한 데서 박수가 터져 나올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박수를 언제 치느냐의 문제는 곡이 언제 끝나는걸 아느냐와 연관돼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안다’ 박수인데, 이 역시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연주가 끝났음을 알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마지막 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렬하게 치는 박수는 마지막 여운이 중요한 음악에서는 큰 실례이고 방해가 된다.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대표적인 곡이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6번 ‘비창’이다. 이달 초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패트리샤 코파친스카야가 LA필하모닉과 이 바이올린 콘첼토를 협연했을 때도 1악장이 끝나자마자 어김없이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2012년 서울시향이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했을 때도 3악장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갈채와 기립박수까지 있었다. ‘비창’은 절망과 체념으로 꺼져가는 4악장이 중요한 교향곡인데, 바로 전 3악장의 종결부가 행진곡 피날레처럼 대단하기 때문에 늘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곡을 그렇게 쓴 차이코프스키 탓을 해도 좋으리라)
악장 사이에 박수 치는 게 뭐 대수냐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수라면 대수다. 연주에는 흐름이 있고 악장 간에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그것이 연주자에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악장이 끝난 후의 잠시는 지난 악장의 여운을 음미하는 동안 지휘자와 연주자가 새로운 악장의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때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면 분위기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쉽고, 최고의 연주로 끌고 가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 악장이 끝난 후 박수치는 일은 당연했다. 당시는 교향곡의 전 악장을 연주하기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기 악장만 골라서 연주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 악장 연주가 보편화된 20세기 초에도 악장마다 박수 치는 일은 흔히 있었다.
악장 사이의 박수 금지가 관행으로 굳어진 것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설적인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의 영향이라고 전해진다. 1922년부터 오랫동안 베를린 필을 이끌었던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교향곡은 몇 악장으로 이루어졌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노래이며, 악장과 악장 사이에는 깊은 유기적 관계가 있다. 다음 악장은 이전 악장에서 파생한 것이다. 그러니 잠시 쉬는 동안 박수와 같은 잡음을 넣어 음악의 맥을 끊지 말라”
작년 5월 손열음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있었던 해프닝은 경우가 약간 다르다. 드림오케스트라의 초청으로 지퍼홀에서 열린 연주회의 후반부 프로그램은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op. 32)와 굴다의 ‘플레이 피아노 플레이’였다. 13곡의 프렐류드가 이어지는 긴 연주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전체가 다 끝난 줄 알고 ‘브라보’를 외치며 일동 기립박수를 보냈고, 한 아이가 무대 위로 올라가 꽃다발까지 증정했다. 이런 일을 전에도 겪었을 손열음은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퇴장했다가 다시 무대로 나와 그때까지 계속되는 박수에 화답하면서 마지막 곡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그게 앵콜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이날 해프닝의 문제는 청중의 대다수가 음악애호가들이 아니라 손열음 연주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는데, 손열음은 누구나 아는 곡들로 프로그램을 짜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회의 청중은 20~25%가 ‘초보’로 분류되지만 연주자가 유명할수록 그 비율이 올라간다. 서울시향이나 조성진이 오면 한인들이 몰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그러면 언제 박수를 치는 것이 좋을까? 위의 여러 예에서 보았듯이 옆 사람이 칠 때 따라 치는 것은 권할만하지 않다. 가장 좋은 타이밍은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릴 때, 혹은 연주자가 악기에서 손을 내릴 때이다. 조용히 끝나는 음악의 경우엔 지휘자가 감정의 파고에서 완전히 벗어나 몸에 긴장을 풀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예의다. 남보다 빨리 박수치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4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가끔 클래식 '크'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와서 박수만 치면 좋은 줄 알고, 시도때도 없이 엄청 짝짝거리고 박수를 치던데, 이런 분들은 그냥 가요무대 혹은 노래자랑이나 보러 가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린다. 가끔 박수소리 나는 쪽을 보고 한인이면 내가 다 얼굴이 화끈거리더만.. 언제는 헐리우드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러 갔는데, 뒤에 한인들(아마 전문직인듯 모두 정장을 했드만..) 웃고 떠들고 더군다나 발로 뒷 등받이를 툭툭쳐서 어떻게 신경이 쓰이는지 한번 쏘아붙일까 하다가 겨우 참은 적도 있다. 거 왜구래?
킄래식를 하루종일 듣고 싶으시면 KUSC app을 다운 받으세요. listeners supported music station 이라 광고 없이 프리로 즐길수 있어요^^
나는 클래식동호회를 만들고 싶어도 고전음악을 음악 자체로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보다는 '많이 안다'는 것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입니다. 소위 안다박수라는 것이 인간들의 경박한 과시욕의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졸부가 명품가방 들고 우쭐거리는 것과 비슷한 심리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