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카운티미술관(LACMA)의 신축 프로젝트에 드디어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 9일 LA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는 새 설계안의 최종환경평가보고서를 승인하고 1억2,500만달러의 지원을 확정했다. 그런데 이를 희소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남가주의 미술계와 건축계는 라크마 신축안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했고, 지금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남가주의 가장 대표적 미술관인 라크마는 1961년 창립 이후 규모와 위상이 크게 확장되면서 이에 걸맞은 새 건축물을 지으려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실제 신축안이 제시되고 추진된 것은 마이클 고반 관장이 취임하고 난 이후로, 고반은 취임 2년째 되던 2008년 피터 줌터(75)에게 신축 설계안을 위촉했다.
경쟁이나 입찰과정 없이 관장 혼자서 건축가를 선택했다는 점에 대해 처음부터 건축계는 크나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더구나 줌터는 유럽에서만 활동해온 스위스 건축가로서 미국 내 건축 경험이 전무하며, 절제된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점에서도 우려의 소리가 컸다.
2013년 줌터가 처음 내놓은 디자인은 타르피트에서 타르가 흘러나온 듯한 모양의 검은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잉크 엎질러진 모양이라고 해서 잉크얼룩(inkblot)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 건축안은 그러나 생태계 평가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새로 변경해 2014년 내놓은 디자인이 지상에서 30피트 띄운 베이지색 단층 건축물로, 윌셔가를 넘어서 반대편 부지로 확장되는 설계안이다. 이 도안 역시 많은 사람이 ‘프리웨이 고가도로’ 같다거나 ‘톨 부스’ ‘커피테이블’ ‘공항터미널’이냐며 비아냥거릴 정도로 지금껏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건축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 역시 그 디자인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6억5,000만달러나 들여 새로 짓는다는 뮤지엄이 너무 평범하고 재미없으며 볼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요즘 웬만한 뮤지엄은 유명 건축가를 모셔다 천문학적 경비를 들여 기념비적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뮤지엄의 건물 자체가 작품이라, 여행자들과 관람객들 가운데는 전시나 컬렉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축물을 보러 찾는 사람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지어진 뮤지엄 건물들은 사진만 보아도 기상천외하고 환상적인 위용에 놀라게 되는데 그에 비하면 라크마 신축안은 평범하다 못해 보통 실망스런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LA카운티 수퍼바이저위원회의 표결을 앞두고 지난 3월말 제출된 새로운 건축안이 뇌관을 건드렸다. 이번에는 그 모양이 아니라 건물 규모가 10%나 감축된 것이 밝혀져 문제가 됐다. 수년 사이 건축비가 상승했다는 이유로 오리지널 디자인의 38만7,500스케어피트에서 34만7,500으로 줄었고, 전시공간은 17~20만에서 11만스케어피트로 대폭 축소됐다. 이것은 곧 허물게 될 라크마 4개 건물의 전시공간보다도 1만스케어피트나 작은 것이다.
그런데도 건축비용은 스케어피트 당 1,873달러로, 4년전에 지은 더 브로드(1,260달러)나 작년에 개관한 휴스턴의 메닐 드로잉 인스티튜트(1,327달러)에 비해 500달러 이상 비싸다. 그 차이는 전체예산이 1억7,000만달러나 오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극장은 객석이 300석으로 현재 빙 디어터(600석)의 절반 크기이고, 14만점의 방대한 소장품을 보관할 수장고나 직원들의 사무실 공간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 길 건너편 빌딩의 5개 층을 임대해 큐레이터를 비롯한 모든 전문 인력이 거기서 일한다는 것이다.
4월초의 열흘 동안 LA 타임스와 건축계, 미술계는 한 목소리로 새 라크마 신축안을 성토했다. “수억달러를 모금해 확장은커녕 더 작은 뮤지엄을 짓는 일은 세상천지에서 보지 못했다”며 비난이 쏟아졌고, 특별히 LA 타임스의 건축 담당과 미술 담당 기자 및 비평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 심지어 미술비평가 크리스토퍼 나잇은 표결 바로 전날 이 안을 부결시키라고 강력하게 촉구하는 기사를 내보냈을 정도다.
공격이 이어지자 고반 관장은 인터뷰를 통해, 또 오피니언 기고를 통해 “2008년에 BCAM을, 2010년에 레스닉 파빌리온을 새로 지어 10만스케어피트를 더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줌터안을 변호했고, 결국 5명의 수퍼바이저들은 만장일치로 고반의 손을 들어주었다.
닻은 오르겠지만 순항이 될지 난항이 될지 모르겠다. 뮤지엄은 한번 지어놓으면 50년 이상 그 자리에 서있는 건축물이다. 부디 줌터의 디자인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창의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만슨, 해머, 아메리카스 빌딩과 빙 디어터의 철거는 2020년 초 시작되고 새 건물의 개관은 2024년으로 예정돼있다. 건축하는 4년반동안 소장품 전시는 없고, 기획전은 레스닉 파빌리온과 BCAM에서 계속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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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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