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운타운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정면에 기다란 나무막대기들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설치물, 파이프오르간이다. 그 특이한 모양 때문에 흔히들 ‘프렌치프라이’라고 부르는데, 모양보다 소리에 놀란 사람이 붙인 별명은 ‘허리케인 마마’다. 디즈니 홀의 탁월한 음향시스템을 타고 천둥번개 치듯 웅장하게 퍼져나가는 소리에 흥분한 작곡가 테리 라일리가 “허리케인 마마!”라며 감탄했을 때, 그것이 그대로 애명이 되었다.
‘허리케인 마마’는 보기에도 특이하지만 전 미국에서 손꼽히는 음량과 음색을 자랑하는 오르간이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즈니 홀을 지을 때 함께 설계하여 외관을 디자인했고, 오르간 건축가 마누엘 로잘레스가 음향을 디자인했으며, 독일의 오르간 전문회사가 시공하여 만든 작품이다. 보통 안쪽에 배치하는 나무파이프를 앞으로 꺼내고 모양에 커브를 주어 살짝 휘게 만든 것이 독특해서 예술적 위용까지 자랑하는 설치작품이 되었다.
금관악기부터 목관악기, 각종 현악기 소리까지 모든 악기의 소리를 다 낼 수 있는 파이프오르간은 규모에 따라 수백에서 수만개의 파이프를 장착하는데 디즈니 홀에는 6,125개가 설치됐다. 파이프 조율에만 1년이 걸린 이 거대한 악기는 설치단계부터 화제의 대상이어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고, 15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오르가니스트들이 꼭 한번 연주하기를 꿈꾸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보다 큰 오르간이 적지 않지만 그 엄청난 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음향조건을 갖춘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최대의 오르간은 필라델피아의 메이시 백화점(파이프 2만8,482개)에, 아시아 최대의 오르간은 한국 세종문화회관(8,098개)에 설치돼있다.
파이프오르간은 모두 수제품인데다 건축물과 디자인에 따라 소리와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세상에 같은 것이 단 한개도 없다. 때문에 오르간 연주자들은 가는 곳마다 악기에 자신을 맞추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오르간의 구조와 건반의 단수, 스톱의 구조와 페달 커플링 등을 익혀야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건축비에 유지와 관리도 어려워 현대에 와서는 웬만한 규모의 교회나 콘서트홀은 파이프오르간을 생략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젊은 연주자들이 등장하면서 오르간의 인기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카메론 카펜터, 폴 제이콥스, 이베타 압칼나, 크리스토프 불, 올리비에 라트리와 그의 한국인 아내 이신영 등이 오르간세계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들이다.
이들 중에서도 세계 최고라고 각광받는 카메론 카펜터의 오르간 리사이틀이 지난 7일 디즈니 홀에서 있었다. 잘생기고 훤칠하며 천재적인 두뇌로 유명한 카펜터는 모호크 인디언처럼 머리 양옆을 삭발한 헤어스타일에 번쩍거리는 의상과 구두를 신고 신들린 듯 연주하는 비르투오소 오르가니스트로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별히 이날 프로그램은 전체가 바흐의 것이어서 평생 궁정과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했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오르간 음악의 진수를 실컷 감상하는 시간이었다. 첫 음이 울려 퍼지자마자 수천가닥의 전율이 나의 몸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찬란한 금빛의 소리를 잦아내는 연금술사처럼 카펜터는 두 손과 두 발을 4단 61개 손 건반과 32개의 발 건반, 128개 스톱 위로 상하좌우 날쌔게 옮겨 다니며 수천 개의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소리로 300년전 바흐의 음악을 현대 콘서트홀의 무대로 길어내었다.
바흐의 오르간 곡 중 가장 유명한 토카타와 푸가에서는 32피트 800톤짜리의 가장 큰 베이스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최저음의 진동이 연주장 전체를 가득 채우면서 내가 앉아있는 의자와 바닥까지 울리고 지나갔다. 소리를 보고, 듣고,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의 경험이었다.
모차르트가 ‘악기들의 제왕’이라고 했던 파이프오르간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악기, 심지어 사람의 청력을 넘어서는 데시벨의 소리까지 내는 유일한 악기이다. ‘허리케인 마마’의 그 우레와 같은 소리를 듣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LA 필하모닉은 한 시즌에 몇 차례의 오르간 연주회를 꼭 포함하고 있고, 바로 오는 5월14일에 이베타 압칼나의 리사이틀이 예정돼있다. 또 오렌지카운티의 시거스트롬 홀에도 꽤 훌륭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있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