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이 넘자마자 갑자기 자신이 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전 주말에 골프게임 스코어 기록을 깼을 뿐 죽은 자를 살려낸 적도, 다른 어떤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신이란 믿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수염을 기르고 즐기던 술과 시가를 삼가고 행동도 조심했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주위 사람들은 물론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기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가끔 자신이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이란 믿음은 떨칠 수 없었다.
직장 일이 잘 풀려 기분이 좋았던 어느 날 퇴근 후 아내와 동침 중 엉겁결에 자신이 신이란 사실을 말해 버렸다. 아내는 농담 말라며 웃었으나 그가 밤새도록 설득하려 하자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남편의 언행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던 터라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에도 남편의 생각이 변하지 않은 걸 알고 정신과의사를 만나지 않으면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겠다는 아내의 통첩에 그는 할 수 없이 오피스 방문을 했다.
자신이 신이나 예언자라는 사람을 만나면 강박증, 망상증, 양극성 장애의 조증상태, 정신분열증, 그리고 술이나 마약에 취한 상태 등을 점검해야 한다. 강박증은 황당한 생각- 과대망상을 제외하곤 대부분 부정적 생각- 이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뜬금없이 지속적으로 떠올라 두렵고 불안해서 이를 떨쳐 버리려고 거의 자동적으로 어떤 행동이나 의식 등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증상이다. 보통 증상이 심하지 않아 살아가는데 별 불편이 없지만 갑자기 악화되면 가정, 사회,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끼치게 된다. 결국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의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반면 망상은 상식에 어긋나고 일반사람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 대개 갑자기 떠오른 후 누가 뭐래도 그 생각을 굳게 믿게 되는 병적증상이다. 강박증과는 달리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그런 생각을 없애려는 행동도 하지 않고 스스로 의사도 찾지 않는다.
정신분열증과 양극성 조증상태는 심한 강박이나 망상 이외에도 환각과 이상한 말과 행동양상을 수반한다. 술 마약으로 취한 경우에는 증상이 오래 가지 않고 곧 정상으로 돌아온다.
질병의 증상들은 돌에 새겨진 듯 고정된 게 아니다. 어느 상황과 순간에 맞게 유동적이다. 고열 환자도 항상 고열이 아니라 열이 내려 정상일 수 있듯, 강박증도 아주 심한 순간에는 잠시 망상 속으로 빠져 들고 망상증이 좋아 졌을 때는 단순한 강박증세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의 정신의학은 강박증과 망상증을 한 범주장애(Spectrum disorder)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진단을 붙일 때도 한 순간의 단면적 증세에 의하지 않고 어떤 증세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오랜 임상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망상증은 얼핏 정신분열증으로 오진하기 쉽다. 특히 피해망상과 질투망상 케이스가 그렇다. 일반적으로 망상증은 한 두가지 잘못된 확고한 믿음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다른 영역의 믿음체계로는 확산되지 않는다. 그리고 망상증상 자체가 가정, 직장,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기능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정신분열증은 망상, 환각 증세가 딴 영역으로 퍼져 환자의 모든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사회인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망상환자는 직장동료가 자기를 음해한다는 생각에 사표를 내거나, 아내가 부정을 저지른다며 이혼하지 않는다.
가끔은 망상증이 오래 계속되면 정신분열증으로 가는 케이스도 있다.
강박증과 망상증 치료는 립 서비스가 아니라 환자와 의사 사이에 공감을 토대로 이루는 신뢰관계가 우선이다. 일단 신뢰가 형성되면 강박증의 경우 뇌 속의 신경전달 물질의 하나인 세로토닌과 관계가 있을 거란 추측 하에 세로토닌 계통의 항우울제를 사용하고, 망상증은 도파민 신경전달 물질의 이상으로 보아 항정신제 약물을 투여한다. 약물치료 이외에도 정신치료, 대화치료 등 다른 여러 방법으로 환자를 도와줄 수 있다.
정신병동에는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 혹은 자신이 신이란 환자들이 종종 있다. 대개 교육을 덜 받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소수계들이다. 그런데 앞의 환자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마치고 전문직을 가진 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라는 점에서 드문 케이스였다.
그 환자가 한 말이 있다. “ 내가 신이 아니라는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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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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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