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지난 3월22일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러시아의 공모에 관한 로버트 뮬러 특검의 최종 조사보고서가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 전달됐다. 이틀 뒤인 24일 바 장관은 뮬러 보고서의 결론을 요약한 서신을 미국 양원의 법사위원회에 전달하면서 트럼프 선거팀이 러시아와 2016년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공모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뮬러 특검은 자신들이 조사한 대통령의 행위가 사법 방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에 따라 취임 후 곤경에 처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적어도 러시아 커넥션 문제에서는 자유롭게 됐다. 문제는 바 장관의 요약 서신이 제출된 후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대립이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의 증폭 요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선 민주당은 바 장관의 네 쪽짜리 서신에 대해 불만이다. 뮬러가 직접 성명서를 낸 것이 아니라 뮬러 보고서에 대한 법무장관 해석 형식의 서신이 의회에 전달됐고 그 보고서에서 바 장관이 ‘사실상’ 대통령의 사법 방해 혐의마저도 벗겨준 것처럼 돼 민주당의 반발을 샀다. 민주당은 러시아 커넥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사법 방해 부분에 대해서는 바 장관의 처리 방식으로 속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반발하면서 뮬러 보고서 전문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전문을 공개할 것인지도 의문이고 공개한다고 해도 일정 수준의 삭제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정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위에서 지적했듯이 바 장관은 의회에 보낸 요약 서신에서 사법 방해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에 대해 그러한 혐의를 둘 만한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한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러시아 커넥션을 수사하고 있던 코미 국장에게 절대적 충성을 요구했고 그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해임됐는데 당시 코미 국장이 사임한 것을 과연 뮬러 특검의 보고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하는 점 등 역시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코미 전 국장 역시 의문을 표하고 있고 민주당은 법무장관을 불러 이에 대해 따질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뮬러 보고서가 등장한 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공모를 강하게 주장해온 민주당의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의 사임을 강도 높게 촉구하면서 보복 정치를 시작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뮬러 특검팀의 출범 후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조사를 ‘마녀사냥’이나 ‘사기극’이라고 줄곧 비난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혐의의 족쇄를 벗자마자 민주당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의 선두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조하는 정보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이러한 요구에 따르기라도 하는 듯 시프 위원장의 사임을 요구했으며 시프 위원장은 트럼프 선거팀과 러시아의 공모 혐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면서 이에 반박함으로써 사임할 의사가 없음을 단호하게 내비쳤다.
이와 같이 뮬러 보고서의 등장은 가뜩이나 양극화된 미국 정치의 갈등을 봉합하기는커녕 새로운 갈등을 몰고 올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로 등장했다. 러시아 커넥션에 대해 면죄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날의 수모를 보복하려는 듯이 연일 민주당을 비열한 반국가적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고 이러한 자신감의 연장선상에서 민주당의 상징적 업적인 오마바케어의 완전 폐지라는 주장까지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보고서의 전면적인 공개를 주장하고 사법 방해 문제를 끝까지 파헤치려고 벼르고 있다. 실제로 공화당, 무당파 유권자를 포함해 미국 여론의 절대다수가 뮬러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고 있어 공개와 공개 범위를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와 민주당 간의 갈등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보통 미국 정치를 요동치게 한 국내적 갈등은 당대의 정치제도와 관행이 부패할 때 이를 미국 민주주의의 이상에 부합하도록 하는 개혁 과정상의 진통으로 여겨져 왔다. 1860년대 중반의 흑인 노예제도와 남북전쟁, 1960년대의 인종차별과 민권운동, 1970년대 초반의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리처드 닉슨의 사임 등이 그러한 사례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연속적으로 터져 나온 정치적 혼란과 진통이 미국 정치의 자정(自淨) 전통을 지속해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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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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