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에서 흑인 예술이 꽃피운 시기가 두 번 있었다. 1920년대의 ‘할렘 르네상스’(Harlem Renaissance)와 1960년대의 ‘흑인예술운동’(Black Arts Movement)이 그것이다.
‘할렘 르네상스’는 흑인 대이동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당시 흑인 인구의 20%에 달하는 200만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남부에서 북부나 중서부로 이동했는데 뉴욕 할렘으로 모여든 작가, 예술가, 시인, 음악가 등 지식인들이 흑인의 긍지와 정체성을 일깨우는 예술문화의 부흥을 이끌었다.
6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년간 일어났던 ‘블랙 아츠 무브먼트’는 민권운동과 맞물려 정치성이 다분히 가미된 운동이었다. 예술을 통해 인종차별 및 불평등에 맞서 대항하려는 급진적 무브먼트로, 1965년 암살당한 흑인운동가 말콤 액스의 영향을 받은 ‘블랙파워’ 개념이 대세였다.
지금이 혹시 세 번째 르네상스는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요 몇년 사이 미술, 음악, 춤, 영화, 연극, 사진, 전반에 걸쳐 흑인 아티스트들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특히 공연예술계는 진작부터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힙합 뮤지컬 ‘해밀턴’은 순 백인들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조지 워싱턴, 알렉산더 해밀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을 모두 흑인들로 캐스팅해 초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 10월과 11월에 LA 필하모닉은 셰익스피어 연극에 음악을 입힌 특별한 공연을 두 번 가졌는데 극단 ‘올드 글로브’와 공연한 시벨리우스의 ‘템페스트’에서는 주인공 퍼디난도 왕자가 흑인배우였고, 현대무용단 ‘LA 댄스 프로젝트’와 함께 공연한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로미오가 흑인이었다. 또 지난 2월16~17일 열린 ‘윌리엄 그랜트 스틸과 할렘 르네상스’는 앞서 언급한 역사적 부흥운동을 기념하는 음악회로, 그 시기의 대표적 흑인 작곡가 스틸의 음악을 흑인 지휘자 토머스 윌킨스의 지휘로 LA 필하모닉이 연주했다.
지난 달 LA 오페라가 공연한 모차르트의 ‘티투스의 자비’에서는 6명의 주역 가운데 3개 역을 흑인 가수들이 맡았다. 티투스 황제 역의 테너 러셀 토마스, 세르빌리아 역의 소프라노 자나이 브루거, 안니오 역의 메조 소프라노 테일러 레이븐 등이 그들이다.
무용계도 예외가 아니다. 4년전 아메리칸 발레 디어터(ABT)에서 흑인 최초로 수석무용수가 된 미스티 코플랜드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불새’ 등에서 백인 발레리나들만이 차지했던 주인공역을 춤추며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다. 2015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의 한명으로 선정된 그는 바로 얼마전 OC의 시거스트롬 홀에서 있었던 ‘할레퀴네이드’ 공연에서는 ABT 역사상 처음으로 칼빈 로열과 함께 흑인남녀 무용수가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기록도 남겼다.
올 봄에는 미술계가 야단이다. 지금 LA카운티 뮤지엄(LACMA)에서는 20세기 중반 가장 중요한 흑인화가의 한명인 찰스 화이트(1918-1979)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지난해부터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와 뉴욕 모마(MoMA)를 거쳐 찾아온 전시다.
LA 다운타운의 더 브로드에서는 민권운동과 블랙파워 시기의 흑인작가 60여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형 기획전(The Soul of a Nation: Art in the Age of Black Power 1963-1983)을 열고 있다. 또 스커볼 문화센터는 흑인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은 크와메 브라스웨이트 사진전(Black is Beautiful: The Photography of Kwame Brathwaite)을 4월11일 개막한다.
바다 건너 프랑스의 오르세 뮤지엄은 지난주 ‘흑인 모델: 제리코에서 마티스’까지를 개막했다. 뉴욕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지난 200여년 동안 캔버스에 그려진 흑인들의 아이덴티티를 복원시키자는 의도로 기획됐으며, 실제로 마리 기욤 베노이스트가 그린 ‘흑인여성의 초상’(1800)은 모델의 실명을 찾아 ‘마들렌의 초상’으로 제목을 개명해 화제가 되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블랙 아트가 만개하고 있다. 100년전 ‘할렘 르네상스’가 처음으로 흑인 정체성을 찬미한 예술운동이었고, 50년전의 ‘블랙 아츠 무브먼트’가 민권 투쟁적 예술운동이었다면, 지금 일고 있는 움직임은 오랜 세월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을 주류예술계에 편입시키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성격이 강하다.
미주한인들에게 흑인예술이 얼마나 와 닿을지 모르겠다. 일체의 선입견 없이 바라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울림, 그 아름다움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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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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