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마약이라는 소재가 다양하게 눈에 들어온다. 먼저 천만 관객을 훌쩍 넘어섰다는 영화 ‘극한 직업’. 경찰 마약 소탕팀을 둘러싼 가벼운 코미디였다. 작년엔 재벌가 자녀들의 마약 복용과 범죄를 힘없는 약자에게 뒤집어씌우는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결코 가볍지 않은 드라마 ‘리턴’도 보았다.
올 초부터는 ‘내부자’ ‘더 킹’과 같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마약과 성접대 관련 기사가 한국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버닝썬 클럽 폭행사건. 한 술집에서 마약과 술에 취해 폭행이 있었는데 출동한 경찰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폭행하고 구속한 것이 발단이다. 항간에는 그 술집 주인과 전 대통령과의 인연, 유명 국회의원과 관련된 이가 가해자라는 등 무수한 소문이 떠도는데 실체는 건드리지 않은 채 연예인의 성접대 뉴스로 둔갑해 덮어지려 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김학의 전 법무차관 별장 성 접대 의혹, 오래도록 원혼이 풀리지 않는 장자연 사건 등등.
마약, 성범죄와 경찰과 공권력의 유착을 지켜보며 한국이 남미와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닌 가 심히 염려스럽다. 이코노미스트 기자로 2010년부터 3년간 멕시코 통신원이었던 톰 웨인라이트가 멕시코 및 남미의 마약 카르텔을 다룬 책 ‘나르코노믹스(Narconomocs)’가 떠오른다. 경제전문지 기자답게 그는 경제학적으로 마약 카르텔을 분석하고, 이제까지의 문제해결 방식이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한 후 대안을 제시하였다.
먼저, 그동안은 공급차단에 주력해왔지만 경제학적으로 접근해 수요를 줄이는 대책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 마약 소탕하면 영화 ‘극한직업’에서처럼 공급자를 막는 데 집중되지만,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강한 물질은 일단 수요가 형성되면 매우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공급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난다. 특히 공급이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 집단을 포함해 이루어지는 경우 상납을 통한 먹이사슬이 형성된다. 사슬은 검은 거미줄처럼 뻗쳐나가 온 사회를 집어 삼킴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교육과 재활시설 및 치료를 통해 수요를 줄이고 시민들의 인식과 참여를 유도해 마약의 먹이사슬에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
둘째로, 범죄자 검거에 집중된 현 체제에서 예산과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예방에 힘쓸 것. 미국의 예를 들면, 예산축소란 이유로 수감시설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수용소는 마약유통 범죄자를 키워내고 확산해내는 기관이 되어왔다.
혹 있을지 모를 범죄와 폭력에 대비한다는 구실로 소도시에 불필요한 최신 장비 및 전투장갑차를 배치하는 예산을 수용자의 인성교육과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한 직업훈련 등에 재분배해 범죄의 예방에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마약의 유통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 선택은 마약이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이 아니라 마약이 정부와 의료계의 규제 하에 통제되느냐 마피아에 의해 통제되느냐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범죄자들을 통해 확산되는 마약은 검은 돈의 힘으로 공권력과 유착해 사회의 뿌리를 갉아 먹는다. 성범죄, 인신매매 등 다른 범죄로 연결되고, 마약의 중독성이 훨씬 강력하게 뻗쳐 나간다. 하지만, 약물용 처방 및 레저용 일정 한도액을 신분증 확인 후 판매하는 등 제도권 감시 하에 두면 마약의 사회적 부작용이 현저히 줄어듦은 많은 곳에서 입증되었다. 그렇기에 유럽,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남미 등지에서 채택하고 있다.
한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를 하라고 지시했지만, 지도자나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사회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다. 한국은, 아니 한국인은 김지하 시인이 반세기 전에 노래한 ‘오적’의 시대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오적은 구한말 조선이나 현재 남미 혹은 아프리카 곳곳에서처럼 자신들의 이권만을 위해 나라가, 온 세상이 초토화되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개개인이 열심히 생각하며 맡은 직분을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하며 개인의 이익에 매몰된다.
기자는 사건의 실체를 뿌리까지 파헤치고, 법조인은 정의와 약자를 보호하며, 경찰은 사회규범을 위해, 의사는 생명을 위해, 교사는 학생을 위해, 각자의 삶의 사명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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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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