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개를 기르지 않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혼자 사는 사람이건, 아이들 키우는 집이건, 자녀들이 다 떠나고 노부부만 남은 가정이건, 애완견을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테크놀러지의 기계화된 일상에서 비인간성과 소외감의 위기를 겪는 현대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개의 존재는 어쩌면 이웃보다 더 절실하고 필요한 동반자일지도 모른다.
3만년전부터 사람 곁에 있었다는 개는 인간이 가장 먼저 길들인 동물이다. 고대로부터 가축을 몰고 지키는 목축견이었고 사냥터에서 활약하는 수렵견이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경찰의 탐지견과 수색견, 병원에서는 치료견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 바로 곁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개가 장애인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주는 도우미견이다.
오랜 지인 중에 칼스테이트 LA의 특수교육학과 김효선 교수가 있다. 김 교수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아 지체장애인이 되었으나 남다른 의지로 특수교육의 여러 분야를 선도한 독보적 인물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도우미견과 함께 살아왔는데 그가 이 충직한 개들과 함께 살며 모험한 이야기는 몇권의 책으로 써도 모자랄 만큼 무궁무진하고 흥미진진하다.
원래 김 교수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엄청난 노력으로 골프, 스키, 농구 등 온갖 스포츠를 즐기며 평생 독립적으로 살아온 여성이다. 그런 그가 20년전 집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그때 옆에 친구가 있어서 응급차를 부를 수 있었는데, 이 경험을 통해 처음으로 혼자 산다는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다치거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일 때 누군가 전화를 가져다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도우미견(service dog)에 대해 알게 돼 전문기관(Canine Companions for Independence)을 찾아 입양을 신청했다.
CCI는 유순하고 영리한 리트리버 종을 6개월 동안 맹훈련시켜 30~40개 단어의 기본적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보조견으로 양성하는 비영리기관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은 물론이고 청각장애인, 신체장애인,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해 각자 특화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도우미견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신청한지 2년이 지나서야 첫 도우미견 ‘주마’를 데려올 수 있었고, 10년 동안 충실한 동반자였던 ‘주마’가 은퇴한 후에는 두 번째 서비스 견 ‘주니어’와 9년을 함께 살았다. 그리고 지난해 세 번째로 ‘캐프리’를 맞이했다.
얼마전 만난 ‘캐프리’는 날렵하고 늠름하며 시선이 주인에게만 고정된 예쁜 서비스 견이었다. 유난히 영리하고 학구열이 왕성해 기본임무 외에도 많은 심부름을 익혔다고 자랑한 김 교수는 문 열고 닫기는 기본이고 전화, 리모콘, 안경 같은 소품을 가져다주며, 몸이 불편할 때는 양말도 벗겨준다고 대견해했다. 페트병 리사이클 하기, 수영이나 샤워할 때 타월 가져오기, 세탁물을 색깔별로 분류해 빨래통에 넣기… 이런 일들을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알아서 미리미리 한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박장대소하며 감탄했다.
서비스 견은 주인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행동을 훈련받았기 때문에 학교, 병원, 식당 출입은 물론 비행기도 함께 탈 수 있다. 하지만 김 교수가 처음에 ‘주마’를 데리고 다니던 시절에는 한인타운의 거의 모든 식당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시민교육에의 사명감이 남다른 김 교수는 그때마다 식당에 장애인 도우미견에 관한 법령 내용을 보내주었는데 이를 읽어본 후 ‘몰라서 그랬다’며 다시 오라고 초청하는 식당이 하나둘 생겨나더라고 했다. 그렇게 점차 서비스 독의 인식이 확산되어 ‘주니어’부터는 많이 나아졌고, 식당 주인이 몰라서 나가라고 해도 손님들이 나서서 ‘저 개는 괜찮은 개’라고 알려주는 일도 늘어났다. 그리고 ‘캐프리’와 함께 한 지난 1년 동안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니 서비스 견에 대한 인식이 이제는 확실히 자리 잡은 것 같다.
한 가지 힘든 것은 “한국사람들은 정이 너무 많아서” 지나친 관심을 표하는 일이다. 예쁘다며 다가와 개에게 말을 걸고 쓰다듬거나 먹을 것을 주면 ‘근무중’인 도우미견이 산만해지는데 차마 이를 말리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서비스 독은 장애인의 몸의 일부로 여겨 달라”면서 도우미견을 쓰다듬는 건 장애인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서비스 견의 존재는 물리적 도움도 중요하지만 심리적 및 정서적 효과가 더 클지도 모른다. 친구가 적고 사회생활이 한정된 장애인들은 외로움이 큰 문제이고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 곁에 도우미견이 있으면 말을 하게 되고 관계를 맺게 되면서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좋은 ‘네발 친구’의 존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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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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