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국 정치 철학자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제로로 돌아섰고 비핵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예상을 깨고 협상이 결렬되자 충격이 크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당분간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은 요원해졌다. 한쪽이 협상을 깨면 상대에게 있어서도 그 협상의 문은 닫히기 때문이다.
협상은 타협이다. 타협 없는 협상은 없다.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는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 북핵 문제를 풀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외면했다. 항간에서는 워싱턴의 코언 청문회가 회담 결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 다른 분석가들은 미 의회와 여론의 압력에 떠밀려 트럼프가 ‘빅딜’ 아니면 ‘노딜’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틀렸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그가 발표하고 시행하는 많은 정책들과 관련해 그 어떤 압력이나 반대 여론에 굴복하거나 항복한 적이 없으며 그만의 독특한 개인적인 방식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해 왔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실무협상 결과와 전혀 다른 제안을, 그것도 서명 직전에 불쑥 내미는 것은 협상의 반칙이다. 이것은 신뢰에 심각한 불신을 줄 수 있으며 외교상 무례한 결례이다. 트럼프는 그걸 스스럼없이 했다.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 의제를 내밀며, 골대가 너무 좁아 골을 넣기가 어려우니 골포스트를 넓히라며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고, 회담 결렬을 발표했다. 그에게는 비핵화나 정전·휴전협정 같은 정치적 선언은 의미가 없다. 제재를 완화해 주었을 때 이익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것이 트럼프의 거래방식이다.
트럼프는 분명히 대화와 협상을 구분하고 있다. 대화에서는 서로 이해하고 신뢰한다고 했다. 하지만 협상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협상의 갈등을 부추겨 코너로 몰린 자신의 국내의 정치적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으로 이번 회담을 이용했다. 애당초 실익이 없는 공허한 만남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협상 스타일에 모두가 춤을 추었을 뿐이다.
영변 핵시설은 오랫동안 미국과 북한 간 협상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있는 핵분열 물질 플루토늄 및 우라늄 농축에 관한 패쇄 조치를 북한에 요구했다. 북한은 부분적인 제재완화를 요구하며 이에 동의했다. 이것이 이번 2차 회담 개최의 동기이며 회담의 ‘기본 틀’(basics for a deal)이다.
북한은 영변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핵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양국 기술자들이 공동작업으로 영구적으로 폐기하고 핵·장거리 미사일 실험의 중단을 확약하는 문서를 제시했다. 반면 미국은 이 협상안을 수용도 거부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미 정보기관들이 확인하지 못한 또 다른 지역의 핵시설 의혹을 제기하며 판을 깨버렸다.
더 나아가 탄도미사일과 발사체·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폐기까지 포괄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상 ‘선 비핵화, 후 제재 완화’라는 과거 주장을 또다시 되풀이 하고 있다. 이런 시간적 퇴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국이 강요한 그리고 북한이 거부한 지난 25년 동안의 나쁜 베팅의 반복이다.
미국이 과도한 접근(overreached)을 했는지, 아니면 북한이 지나친 제재의 해제(too much sanctions relief)를 취하라고 했는지 서로 다른 주장을 하여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만약 AP 통신 보도대로 북한의 주장이 맞다면 2016년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의 민생분야 제재는 해제되었어야 했다. 어차피 15개월에 이르는 핵과 미사일 실험의 동결로 유엔 제재의 명분도 소멸했는데 제재는 하나도 해제되지 않는 현실이다.
북한은 미국과 맞서며 살아남기 위해 핵·미사일을 선택했다. 그 결과 미국 국제질서의 방해자, 위법자로 낙인찍혀 일방적인 제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딜’의 진정한 충격은 미국이 보인 모호한 주장과 의구심 가득한 소극적인 태도다.
하노이 담판 결렬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시험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 냉각기를 갖는 게 불가피하겠지만 교착 장기화는 위험하다. 북미가 궤도에서 일탈하지 않게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명운을 걸고 촉진자·중재자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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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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