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국군의 날, 변전소. 전혀 생뚱맞은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최근에 괴담에 휩싸인 사건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조선총독부의 설립일을 기념하기 위해 국군의 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고, 변전소에서 엄청난 전자파가 나와 주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지만 국회와 정치권, 국민들 사이에서 회자된 게 사실이다.
괴담이란 초자연·초현실적이며 듣는 사람에게 공포감이나 호기심을 일으키는 괴상한 이야기를 일컫는다. 일반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해 어떤 세력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제작·유포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이나 지적보다는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방의 주장에 자주 현혹돼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난다는 광우병 파동이 있었고 2016년에는 경북 성주군 사드기지를 둘러싸고 전자파 참외 소동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는 요즘 우리 주변 마트에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장바구니에 담기고 성주 참외는 지난달 농산물공판장에서의 판매액이 800억 원을 달성했다고 자축했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놓고 방사능 수산물 괴담이 돌면서 어민과 시장 상인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얼마 전 서울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1년간 2만 6772건을 검사했는데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그동안 일본 오염수 괴담에 맞서 방사능 점검 및 수산물 홍보 등에 1조 6000억 원을 투입해야만 했다. 이 모두가 국민의 혈세인데 괴담이 없었다면 굳이 1조 원이 넘는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지 않아도 됐음은 분명하다.
괴담의 주요 진원지를 보면 정치권이 깊이 연루돼 있다. 특히 요즘에는 야당발 괴담이 주를 이룬다. 이는 일부 편향된 시민단체 등과 결합돼 폭발력을 키우고 퍼져나간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은 야당과 시민사회의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비판이어야 한다. 일반 대중의 불안심리만을 노린 자극적인 여론 선동은 안 된다.
특히 밑도 끝도 없는 괴담은 더욱 위험하다. ‘아니면 말고’ 식 루머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게 사회적인 혼란이든, 경제적 비용이든 말이다.
요즘 시끄러운 경기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역시 마찬가지다. 2600만 명이 살아가는 수도권에 안정적 전력 공급은 물론이고 인공지능(AI) 시대에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건립과 반도체 생산 시설 등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산업에 변전소는 필수적인 전력 설비다. 하지만 이런 중차대한 사업에 ‘전자파 괴담’을 동원한 시민단체와 이에 동조한 야당 의원이 막무가내식 반대에 나서고 지방자치단체마저 이런 여론에 무릎 꿇는 것은 곤란하다.
편의점 냉장고 수준의 전자파를 마치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과대 포장하는 것은 괴담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하남시의 경우 전자파 괴담으로 변전소 건립 사업이 좌초되면 그동안 지역의 숙원이던 지하철 연장이나 대규모 K팝 공연장 건립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괴담을 퍼트리는 자는 진실이나 합리적 비판에는 관심이 없다. 그동안의 괴담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는 점이 이를 대변해준다.
단지 그 순간 특정 세력이나 정책을 공격하는 도구일 뿐이다. 나중에 사과나 자성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고 또 다른 소재로 아니면 말고 식의 이야기를 뿌린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비용 등 후과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괴담 사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다. 바로 왜 괴담이 퍼지고 여론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이다. 이는 바로 근본적으로 정부와 정책에 대한 불신과 소통의 부재를 괴담이 파고든다는 점이다.
지지율이 20%대에 불과한 대통령의 말은 괴담을 단박에 누를 수 없다. 결국 괴담의 가장 큰 적은 신뢰받는 지도자와 정책이다. 현 정부 역시 왜 괴담이 난무하느냐는 탄식을 하기 전에 정책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믿음을 주고 있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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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일 서울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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