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겔, 인정 투쟁의 역사 강조했듯, 남을 배려해야 자신도 존중받아
▶ 내 주장만 옳다는‘혁명적 삶’보다, 조화롭게 사는 법 끝없이 고민을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나이 마흔에 1,000억원을 번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나에게 특강을 해달라고 해 그 회사에 갔다. 강연을 다 끝내고 돌아오려고 하다가 ‘내가 이 사람을 언제 다시 만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왕 만난 김에 하나 물어봅시다. 당신은 어떻게 나이 마흔에 1,000억원이라는 돈을 벌게 됐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예, 저는 세 가지를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첫째, 약속을 지켜라. 둘째, 인사를 잘해라”라고 답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좀 들어본 말이다. 세 번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하아, 이렇게 돈을 벌었구나. 아, 나는 왜 이것을 진작 몰랐을까.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느꼈다. 사실 특강하러 가보면 가르치고 오는 경우보다 배우고 오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양반이 말한 세 번째 비결은 “저는 ‘저하고 거래하는 파트너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만 연구했습니다”였다. 간단한 정답이다.
일본에 한 생선가게 사장님이 계셨다. 이분은 좀 특이한 사람이다.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녁은 무조건 외식이다. 어딜 가시나 하고 따라가 보면 꼭 생선요릿집만 찾으신다.
가서 뭘 드시나 하고 봤더니 생선요리만 딱 드신다. 다 드시고 나서 주방장과 사장을 앞에 앉혀놓고 몇 마디 꼭 한다. 그러면 둘이 열심히 받아 적는다. 자, 퀴즈 들어갑니다. 이 사장님이 다니는 요릿집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뭘까. 참고로 말하면 ‘생선’은 정답이 아니다. 강연에서 이 질문을 던지면 재미있는 답이 많이 나온다.
“손님이 없는 집만 다닌다. 왜, 컨설팅해주려고”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집” “새로 문 연 식당. 뭐 하나라도 더 나오니까” 등등. 사실 오답들이 더 재미있다.
이 생선가게 사장님은 지금 자신이 생선을 납품하는 고객의 집을 찾아가 그 고객이 부자 되는 방법을 공동연구하고 있다.
이 생선가게 사장님은 부자가 됐을까, 안 됐을까. 3년 만에 매출 10배가 됐다. 혹시 이것이 좀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증명을 해보자. 여러분은 거래하는 상대방을 선택할 때 그 사람과 거래해 손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람과 하겠는가 아니면 그 사람과 거래해 부자가 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람과 하겠는가.
전자인가 후자인가. 내가 이때까지 만나본 사람 중 알고도 전자를 거래처로 선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증명 끝. 눈앞에 돈이 보이는가. 이것을 내 손으로 직접 가져가려고 하는 순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으로 변하고 만다. 그러나 내 고객이 이 돈을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주는 순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친구로 변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내 고객이 부자가 되면 그 사람이 날 부자로 만들어준다.
‘나와 거래하면 부자 된다’는 소문이 나면 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나와 거래하려고 올 것이다. 이것이 평판효과다.
받지 말고 주는 것이 잘하는 비즈니스다. 왜, 먼저 줘야 받을 수 있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것들이 많다. “인류 역사는 인정 투쟁의 역사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한 말이다. 누구나 남이 자기를 무시하면 그 사람이 자기를 인정할 때까지 싸운다는 것이다. 개인만이 아니라 계급 간에도,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을 종식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서러워하지 말라. 내가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는지를 염려하라”고 공자가 ‘논어’에서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상대방이 나를 인정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사람은 정말 한평생 투쟁하다 볼 일 다 볼 것이다.
혁명가들을 보라.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를 인정했는데 아직도 성에 덜 찬다고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자기를 인정하라고 떼를 쓰는 인간들이 있다. 이건 최악의 미성숙이다.
인간은 한평생 투쟁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가치 있게 잘 살아보려고 태어난 것이다. 인간사에서 갈등의 원인을 인정 투쟁에서 찾은 헤겔의 분석은 예리하다. 그러나 공자처럼 남을 먼저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책이다.
남에게 칭찬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기가 잘났다고 계속 선전하면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비웃음밖에 없다. 남을 먼저 칭찬해주는 것이 그나마 제일 낫다. 주의해야 할 점은 칭찬받으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칭찬해주다 보면 어느덧 상대방도 나를 칭찬하게 되는 것이다. 혁명보다는 너지(nudge)가 낫다. 더 자연스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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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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