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 끼여 주목받지 못하는 악기다. 화려하고 서정적인 고음역의 바이올린이나 굵고 부드러운 저음역의 첼로에 비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간 음역을 담당하는 비올라는 주선율보다는 보조적인 화음을 맡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음악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물론이고 현악 4중주 같은 실내악에서조차 비올라 소리는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에 묻혀서 구별해 듣기가 힘들다.
그렇게 존재감 없는 비올라의 숨은 매력을 우리에게 처음 알려준 사람이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이다.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의 빈 공간을 진하고 깊고 어두운 중간음색으로 채워주는 비올라의 아름다움은 용재 오닐의 연주로 생기를 얻고 활짝 피어나 우리의 귀를 더 풍부하게 열어주었다.
세상에 많은 비올리스트가 있지만 용재 오닐의 비올라 소리에는 특별히 사람의 혼을 어루만지는 애수와 아름다움이 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눈물 흘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전쟁고아이며 지적장애를 가진 입양여성의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 워싱턴 주 작은 시골마을의 유일한 아시안 소년이 백인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겪었을 정체성의 혼란, 숱한 차별과 소외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감수성이 남달리 예민한 그가 매일의 상처를 삭히고 이겨낼 수 있는 수단이 음악이고 비올라였다. 음악을 연주할 때만은 온전히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그의 비올라 소리, 아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자만이 낼 수 있는 그의 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대단한 이력을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벌써 40세가 된 그는 LA와 뉴욕, 서울을 세 꼭짓점 삼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데 3개의 중심축을 이루는 연주단체가 남가주의 ‘카메라타 퍼시피카’, 뉴욕의 ‘링컨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 그리고 한국에서 그 자신이 10여년전 창설한 ‘디토’ 페스티벌이다. 모두 실내악 앙상블로 명성이 높은 단체들이고, 이외에도 ‘에네스 쿼텟’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다.
용재 오닐과는 ‘카메라타 퍼시피카’를 통해 꽤 오래 개인적인 친분을 이어왔다.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을 단원으로 확보하고 있는 이 단체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틴 리와 마림바주자 정지혜 등 다른 한인 연주자도 기용하고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오래 후원해왔고, 지금은 모든 콘서트에 빠지지 않고 가는 열혈 팬이 되었다.
‘카메라타 퍼시피카’는 그동안 용재 오닐을 위한 신작을 3곡이나 위촉해 세계 초연했을 만큼 그의 특별한 재능을 아끼고 있다. 후앙 루오가 작곡한 ‘잊혀진 책’(2009)과 비올라협주곡 ‘인 아더 워즈’(2012), 그리고 레라 아우어바흐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24 프렐류드’(2018)가 그것으로, 이중 두 작품은 한인 음악애호가들이 십시일반으로 위촉비를 지원했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용재를 가까이서 만나고 인터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 인간의 고결한 아름다움이다. 한국에서는 스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유명인이지만, 그 명성과 인기가 손상시키지 못한 내면의 순수함와 진실성이 그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끊임없는 자기연마를 통해 빚어내는 음악, 무대에 오를 때마다 자신의 전부를 온전히 내어주려 최선을 다하는 연주자의 성실함이 늘 우리를 감동시킨다.
용재 오닐의 그 열정적인 비올라 연주를 실컷 들을 수 있는 음악회가 3월3일 샌타모니카의 브로드 스테이지(Broad Stage)에서 열린다. 브로드 스테이지의 2018/19시즌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로 초대된 그가 선사하는 3개 콘서트 중 두번째 음악회로, 작년 9월 ‘에네스 쿼텟’과 함께 했던 첫 콘서트나 오는 5월26일 있을 세번째 콘서트(피아노 4중주)와는 달리 그 혼자만의 비올라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리사이틀이다.
‘영국의 비올라’(British Viola)라는 제목으로 20세기 초 영국 작곡가들(벤자민 브리튼, 프랑크 브릿지, 요크 보웬, 엘리옷 카터, 레베카 클락)의 비올라와 피아노곡들이 레퍼토리다. 용재는 2년전 같은 제목의 음반을 내 호평 받았는데 그때 호흡을 맞춘 대만계 피아니스트 스티븐 린(Steven Lin)과 함께 이번 무대를 꾸미게 된다.
왜 영국의 비올라일까? “안개와 비가 있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있어서인지 영국의 작곡가들이 비올라 곡을 많이 썼고 그 스피릿을 잘 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 용재의 설명이다. 그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라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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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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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비올라 연주곡을 들으면 마음을 안정 시킵니다. 참 좋아요.
리차드 용재 오닐의 연주를 들으면 누구나 느껴질 그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그만 빠지게되져.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