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조, 가야해요 미오 마요. 장대 배를 저어저어 강어귀로, 넘 이뻐 사랑스런 이본과 함께, 친구들아 정말 신나겠지? 잠발라야, 크로피시 파이, 필레 검보우~ ”
정월 대보름을 맞아 쥐불놀이 하던 어릴 적 추억을 더듬고 있는데 서울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휘영청 밝은 대보름달 사진들을 올려주었다. 우리가 살던 돈암동의 재개발된 아파트 베란다 등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고향생각에 잠시 상념에 젖었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가 올려준 이 노래를 오랜만에 들어보니 이내 신바람이 나며 건들건들 어깨춤을 추게 되었다.
친구들이 이역만리 떨어져 쓸쓸히 대보름을 보내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돌이켜보면 그 신났던 쥐불놀이를 나는 겨우 한번밖에 못 해보았다. 동네 형이 분유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숭숭 뚫어 철사 줄에 매달고 나뭇가지를 잘게 분질러 넣은 다음 신문지로 불을 붙여서 빙빙 돌리니, 깡통은 풍로라도 된 듯 그 속의 나무들이 맹렬한 기세로 탁탁 타오르며 밤하늘에 아름다운 불꽃 원을 그려내었었다.
70년대 미성 듀오 카펜터스 남매가 부른 이 노래 ‘잠발라야’를 밤새 4번이나 듣고도 출근 후 책상에 앉아 따뜻한 랍스터 수프를 떠먹으며 또 들었다. ‘영혼의 치킨 수프’라는 시리즈가 베스트셀러였을 때는 왜 하필 치킨수프가 영혼과 관련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따뜻이 데운 수프를 한 스푼 두 스푼 먹어보면 곧 알게 된다. 17년째 미국에 살면서 이제야 맛을 알게 된 아침 수프를 차분히 떠먹으면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며 나는 더없이 인자한 성자라도 된 듯 영혼마저 평온해지는 느낌이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수프에 중독돼 버린 듯, 엄마 젖을 도저히 떼지 못하는 아이가 된 듯 나는 앉은 자리에서 한통을 다 비웠다.
한국서 어릴 적 먹어본 수프의 기억은 죽이다. 심한 감기에 들었을 때 어머니가 멀겋게 끓여서 참기름 간장 몇 방울 넣고 떠먹여 주시던 쌀죽이다. 좀 더 자라서는 더욱 고소한 전복죽도 먹게 되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먹어본 수프는 감기 등을 앓던 중에 기운을 차리라며 어머니가 특별히 해주시던 사랑과 치료의 죽이었다. 이렇게 평상시에도 먹는 따스한 치킨수프나 랍스터 수프와는 달랐다.
그냥 노래의 추임새일 뿐으로 알았던 ‘잠발라야’를 위키피디아로 찾아보니 음식이었다. 훈제 소시지와 함께 고기, 해산물을 넣고 요리한 정말 맛있게 보이는 루이지애나식 고기야채 덮밥이 아닌가.
노래에 나오는 ‘필레 검보우’ 역시 파일(File)이라고 하는, 싸사후라스 나무의 잎을 말려서 간 향료를 넣고 끓인 강한 맛의 육수에 고기, 조개 등을 소위 삼위일체라 하는 셀러리, 피망, 양파 삼총사와 함께 넣고 끓인, 김치찌개 비슷한 색깔의 스튜였다.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에 가면 아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두꺼워져만 가는 나의 버킷 리스트에 뉴올리언스를 추가한다.
‘탑 오브 더 월드’, ‘예스터 데이 원스 모어’, ‘싱’ 같은 주옥같은 곡으로 카펜터스는 최근까지 1억장 이상의 음반과 테이프를 판매해 전설의 반열에 올랐지만 카렌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짧은 삶을 살다갔다. 30세에 결혼해 불과 3년의 결혼생활 후 33세에 거식증으로 그녀가 요절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나는 정말 내 귀를 의심했었다. 여성이 낼 수 있는 최저의 음역이라는 콘트랄토의 미성가수 카렌 카펜터스. 하느님도 정말 야속하시지, 그토록 아름다운 가수를 그리 빨리 데려가시다니.
아마도 이 세상에서 부대끼며 곤고히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을 위로해 주려 하느님이 천사의 음성을 잠시 들려주곤 천국으로 훌쩍 데려갔다는 생각이다.
밤비가 며칠간 계속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올겨울 최저기온이라고 한다. 저 멀리 산호세의 4,300피트 최고봉 마운트 해밀턴의 9부 능선은 온통 은백색의 눈에 덮여 아침 해를 받고 반짝이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5시간 정도 차를 타고가야 레이크타호에서 눈 구경을 하고 스키도 탈 수 있는 이곳에서 눈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과 같다.
섭씨로 영하1도. 겨우 몇도 내려갔을 뿐인데 보통 추운 게 아니다. 영하 10도를 예사로 내려가는 서울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도 천국의 날씨를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에 살다보니 나약해져 이렇게 엄살인가 보다.
따스한 수프 한 그릇으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해진 나는 나지막이 속삭인다. 고국의 친구들아, 다시 만날 때 까지 잘들 지내고 있어.
<
김덕환 실리콘밸리부동산중개업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해당 글은 삭제처리 되었습니다.
마음에 닿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말 오래전에 미 팔군에서 노래할때그냥 뜻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였는데 거의 40여년이 지난 후에렇게 이 곡을 요청했는지도...항상